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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권력층이 만든 범죄

『팩트와 권력』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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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사건을 취재할 때마다 '진실'과 '국민에 대한 국가의 본분'을 둘러싼 질곡을 파헤쳐 밝은 빛 아래 드러내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2019.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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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왜 하필 어둡고 칙칙한 주제만을 좇아다니며 사서 마음고생을 하는가?”


30년 언론인 생활 동안 주변 동료 기자들에게 심심찮게 들었던 말이다. 그때마다 “그러게 말야, 나도 밝고 아름다운 사연을 다루고 싶은데, 뭐지 모를 숙명 같은 것이 발길을 그쪽으로 인도하는 것 같아”라고 받아 넘기곤 했다. 그런 나에게 한 선배는 ‘빙의 기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끈질긴 탐사보도 후 권력자들의 미움을 받아 소송 등에 휘말려 마음고생을 하는 나에게 억울한 원혼이 주변을 맴돌며 수호해준다는 별명이었다.


14년 전에 나는 탐사 보도 분야에서 끈질기게 추적해온 사건들을 모아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대한민국의 함정>이라는 책으로 펴낸 바 있다.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였기에 직업 인생의 정수가 담겼다고 할 만한 이슈들이었다. 비록 기자로서는 고달픈 행군이었지만 한국사회 공동체의 진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의제 설정’이 필요한 주제들이었다. 그런 사명감을 무기 삼아 끈질기게 추적해 세상에 볕을 쪼인 결과 몇 가지 이슈는 출판 이후 어느 정도 사회적 공론화와 대안 마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김훈중위사건(김훈중위 순직처리)과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사건(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 그리고 이완용?송병준 등 친일 매국노 재산상속(반민족행위자진상조사관련법 및 친일재산조사위원회) 등이 그런 범주였다.


이 책은 당초 <대한민국의 함정> 증보 개정판 논의에서 출발했다. 그러다가 ‘글공장’ 최빛, 강청 두 작가가 달려들어 1년여에 걸쳐 새로운 이슈를 중심에 두고 힘을 보태면서 거의 별개의 단행본으로 탈바꿈했다. 기존의 <대한민국의 함정>에서 유신정권 시절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암살사건을 제외하고 어느 정도 제도적 해법이 마련된 앞서의 몇 가지 주제는 이번 책에서 제외했다. 대신 그간 사회적으로 파문이 크게 인 내 탐사보도 가운데 아직도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나 팩트가 왜곡돼 알려진 이슈들을 추가했다. 사회 지도층의 비호 속에 ‘단군 이래 최대 사기범죄’라는 수식어를 연거푸 갈아치운 제이유 주수도 및 조희팔 사기 사건이 대표적이다. 또 2013년 불거진 이래 아직도 피해 여성들의 애끓는 절규가 계속되는 김학의 원주별장 성폭력 의혹 사건과 나경원 의원 억대 피부클리닉 출입 사건의 전말 등도 처음부터 내가 공론화했던 이슈였기에 새롭게 구성해 엮었다. 일부 이슈는 오랫동안 <시사저널>과 <시사IN>에서 나와 호흡을 맞춰온 후배 주진우 기자와의 공동 취재 산물이다. 그래서 이 사건들을 최초 보도, 또는 심층 후속 보도를 할 때마다 주진우 기자와 나는 권력 측이 진실을 감추려고 기를 쓰는 이런저런 치졸한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5가지 주제는 개별적으로 보면 다소 이질적인 이슈들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의 맥이 있다. 바로 팩트를 왜곡하고 죽이려는 권력의 존재다. 각 주제는 현재 실체적 진실이 가려진 채 수면 아래서 꿈틀거리는 ‘활화산’같은 사건들이다. 제이유 사건과 조희팔사건 등 사상 최대 다단계 사기 사건의 배후에는 그들을 비호하고 심지어 한배를 탄 권력 핵심층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공동체를 파괴하는 이런 악질 범죄에 추상같은 법을 집행해야 할 검경 등 수사기관 종사자와 간부들마저 복마전처럼 얽혀 있다.


김학의 성폭력 의혹사건은 기소독점권을 쥔 검찰 권력의 추악한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검찰은 2013년 있었던 초동 수사 당시 김학의 씨가 원주별장 등지에서 여성들을 상대로 성 접대를 넘어 성폭력을 행사했다고 볼만한 뚜렷한 증거와 증인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해줬다. 최근 간신히 재수사에 나선 검찰도 그 나물에 그 밥 꼴이다. 김학의 씨의 특수강간 혐의 등 성폭력 의혹사건에 대한 부분은 ‘공소시효’ 운운하며 발을 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 검찰총수까지 나서서 날선 반발을 마다하지 않는 오늘날 김학의 성폭력 의혹 사건은 검찰의 아킬레스건이다.


나경원 억대 피부클리닉 출입 사건은 “나경원 의원이 억대 회원제로 운영되는 강남 청담동의 한 피부클리닉에 가족회원으로 드나들었다”는 명백히 밝혀진 팩트에도 불구하고 MB 권력이 총동원돼 덮은 사건이다. 이명박 정권은 경찰을 시켜 이 사건의 전말을 추적한 나와 후배 허은선 기자, 그리고 주진우 기자를 형사 고소해 재갈을 물리는 한편 ‘나경원 일병 구하기’ 거짓 수사 발표까지 했다. MB 경찰은 나의원측과 피부클리닉의 변명을 대대적으로 보수언론들에 공개한 뒤 마치 나와 주진우 기자가 생사람을 잡았다는 듯이 몰아갔다. 그러나 제값(공식 회비)을 냈건, 특혜성 할인을 받았건 나경원 의원이 강남 호화 피부클리닉을 다녔다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팩트다. 심지어 나의원은 이 일로 극심한 홍역을 치르고도 그 뒤 세상 사람들 눈길을 피해 강남 청담동의 또 다른 피부클리닉으로 갈아탔다가 내 추적에 다시 꼬리가 잡혔다.


이 책은 내가 언론계에 발 디딘 이래 지난 30년 간 숙명처럼 부딪쳤던 팩트와 권력 사이의 투쟁 기록이다. 매 사건을 취재할 때마다 '진실'과 '국민에 대한 국가의 본분'을 둘러싼 질곡을 파헤쳐 밝은 빛 아래 드러내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여러 탐사 보도를 하는 과정 뒤에는 이를 불편해하는 해당 권력자나 권력 기관과 힘겨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30년 탐사기자 활동 과정에서 권력 고발성 기사로 인해 50여건에 이르는 민?형사 제소를 당했다. 어떤 권력기관 실력자로부터는 뒷조사 운운하는 공갈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아직까지 보도와 관련된 소송에서 패소한 적은 없다. 저널리즘의 한 기능이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적 사회적 사건을 발굴해 볕을 쪼여 공동체의 진화에 도움을 주는 데 있는 한 나는 앞으로도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 길을 고집할 것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는 내가 부나방처럼 국가권력의 오만과 진실 왜곡에 대항해 달려들다가 소송과 협박 등으로 상처입고 마음고생을 할 때 기꺼이 앞장서서 지지?격려하고 대응해 준 수많은 <시사IN>선후배, 동료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소설가인 김훈 전 편집국장과 취재 현장에서 오랫동안 까칠한 선배랑 호흡을 맞춰온 후배 주진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 탐사 보도 후 닥친 국가기관의 역공 앞에 몸부림칠 때 곁에서 묵묵히 남편의 고통을 위로하고 지켜준 아내 최복례에게도 감사드린다.


끝으로 졸저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되기까지는, 이제는 늙은 기자가 되어 현업에 쫓겨 꾸물거리던 나를 채근하고, 1년여에 걸쳐 보강 지원 취재 및 원고 정리를 도왔던 ‘글공장’ 최빛, 강청 작가의 각별한 노고가 숨어 있음을 밝힌다.

 

2019년 5월 정희상

 

 

* 추천사


진실을 쫓는 집요함과 논란을 두려워하지 않는 뚝심. 정희상 선배는 독보적이었다. 탁월한 취재 능력과 돌파 능력에 언제나 감탄했다. 그런데 그 집념을 가끔 후배한테 쏟는다고 생각해보라? 그는 인기 있는 선배는 아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정 선배가 마감을 다그치고 있다. 도망치고 싶다. <시사 IN>을 그만 두어서 이제 정 선배의 눈치를 보지 않아서 좋다.(자기 검열. 정 선배는 후배에게 눈치 주는 분이 절대 아니다.) 비교당하지 않아서 기쁘다. 무엇보다 정희상 기자가 아직도 들개처럼 현장을 누비고 있어서 신난다. 그리고 최고의 기자에게 배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주진우(전 시사I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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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팩트와 권력

    <정희상>,<최빛> 공저13,5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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