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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의 자신

<월간 채널예스> 201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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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안에 네가 하나 더 생기는 거라고 말하던 웅이의 말이 이제는 내 마음을 아주 복잡하게 한다. (2019. 07. 05)

일러스트 손은경.JPG

 일러스트 손은경

 

 

우리 집에 처음 컴퓨터가 생긴 건 내가 일곱 살이던 1998년 무렵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동안엔 집 전화를 쓸 수 없었다. 수화기를 들면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아빠 웅이는 나랑 찬이를 컴퓨터 앞에 불러서 인터넷 창을 켰다. 이제는 없어진 포털 사이트 ‘야후! 코리아’가 펼쳐졌다. 웅이는 우리에게 아이디라는 것을 만들자고 했다.

 

“왜?”

 

그럴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 내가 묻자 웅이가 대답했다.

 

“아이디랑 비밀번호를 만들면 컴퓨터 안에 네가 하나 더 생기는 거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이디는 영어로만 만들 수 있어서 더욱 먼 얘기로 느껴졌다. 알파벳의 조합을 어려워하는 내게 웅이는 임의로 아이디를 지어 주었다.

 

seula1

 

인생의 첫 아이디였고, 본격적인 기계기의 시작이었다. 인문학자 이영준의 책  『기계비평』 에 따르면 인간의 성장 발달에는 기계기(machinic stage)라는 단계가 있다. 프로이트가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생식기로 분류하며 사용한 정신분석학 용어를 이영준은 ‘기계기’라는 개념으로 패러디했다. “기계의 효용이나 매력이 인간의 심리적, 신체적 존재 속에 각인되어 인성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는 기간”을 말한다.

 

나는 사춘기 훨씬 이전에 기계기를 겪었다. 거실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한 커다란 데스크톱과 인터넷 모뎀과 프린터라는 하드웨어, 그리고 한컴타자연습과 한글97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양손으로 활용하여 삶을 텍스트화하는 연습을 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날마다 일기를 써 오게 시켰고, 나는 반에서 컴퓨터로 일기를 써 가는 몇 안 되는 학생 중 하나였다. 프린터가 고장 난 날에는 디스켓에 한글 파일을 담아 제출하기도 했다. 기계들은 내 일기의 형식뿐 아니라 내용에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한글97 이후 애용했던 소프트웨어는 ‘버디버디’였다. 거기서 나와 친구들은 날마다 엄청난 양의 텍스트를 주고받았다. 하교하자마자 컴퓨터 앞에 달려가 버디버디에 접속한 채로 게임을 하거나 노래를 다운로드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내 절친의 이름은 소담이였다. 그때는 절친이라고 안 했고 베프라고 했는데 너무 베프인 나머지 나는 버디버디 아이디를 ‘forever소담’이라고 설정하기에 이른다. 소담이의 아이디는 물론 ‘forever슬아’였다. 두 개 다 끔찍한 아이디어였다. 아이디에 영어를 넣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들이 우리 둘뿐은 아니었지만, 그중에서도 왜 하필 forever였을까. 2019년에 풍문으로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소담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소담의 인생에서 영원한 것은 무엇일까 문득 생각해 본다. 그게 내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forever소담과 슬아를 생각할 때마다 웃겨 죽겠다. 정말이지 무색하다. 소담을 만나면 서로 그저 웃기만 할 것 같다.

 

이후에도 몇 번의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며 계속해서 흑역사를 써 나갔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도 꾸미고 이제는 웃음만 나오는 배경 음악도 틀어 놓았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남들 보라고 쓴 일기’라는 장르를 학습했다. 좋아하는 언니나 오빠가 쓴 문장들을 참고하며 공개 다이어리를 썼다. 그 결과 어떤 우스운 순수함들이 답습되었다. 다들 인터넷 안에서 혼잣말을 할 때 어떤 포즈를 취할지 소심하게 연구 중인 것 같았다.

 

나는 짬짬이 나모웹에디터를 배워서 직접 홈페이지를 만들며 웹상에서의 내 공간을 설계하는 일에 심취했다. 그러다가 중학생 때부터는 네이버 블로그에 정착했다. 이웃을 만들기도 쉽고 긴 글을 쓰기에도 적합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는 블로그 글의 문법이라는 것을 체화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와는 또 달랐다. 블로그에 특화된 글을 청소년기 내내 쓰다가 20대가 되자 블로그 포스팅 같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지금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창구로 두고 글을 쓴다. 발표하는 매체는 신문과 잡지, 그리고 메일링 서비스인 <일간 이슬아> 지면이다. 오프라인에서도 내 글을 읽을 수 있지만 결정적인 연결감은 거의 온라인에 있다. 아주 편리하고 빠르고 비용도 덜 든다. 종이라는 물질 없이도 멀리까지 가며 재고도 남지 않는다. 누군가가 공유되거나 유명해지는 속도에 깜짝 놀라곤 한다. 그 확산력은 나에게도 좋은 일을 가득 안겨 주었다. 비슷한 크기의 불안과 혼란도 함께 찾아왔는데 아직도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하겠다. 역시 너무 쉽게 복제되고 박제되는 게 문제일까. 이렇게나 불완전하고 수시로 변하는 나라는 인간의 조각을 인터넷 안에 여러 개 늘려 놨다니 어리석고 간도 크다.

 

“컴퓨터 안에 네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라던 웅이의 말이 이제는 내 마음을 아주 복잡하게 한다. 지금 남기는 모든 텍스트가 이전의 아이디처럼 부끄러워질 미래를 상상한다.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과거의 자료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날도 그려 본다. 그럼 seula1이라는 아이디를 만들기 이전을 떠올리게 된다. 최초의 아이디조차 없는 우주에서 살아가는 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좋아진다. 그는 나보다 덜 여러 개의 자신을 겪을 것이다. 겪더라도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 정도만이 알아챌 것이다. 웹의 불특정 다수와 함께 겪지는 않을 테고 기계가 그의 신체와 정신을 앞서가는 일도 잘 없을 것이다. 다른 종류의 혼란과 슬픔을 겪는 그겠지만 이 우주의 나라서 짐작도 못 하겠다. 적어도 seula1과 이슬아 사이의 괴리 같은 건 없을 그에게 안부를 전한다. 언젠가는 어떤 계정 없이도 잘 지내 보겠다고 미래의 나에게 약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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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슬아(작가)

연재노동자 (1992~). 서울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 <이슬아 수필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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