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특별해질 오늘에 어울리는 맛

엄마와 아이스크림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왜 어른들은 어김없이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걸까.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내내 여행지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던 이순재 배우도 아이스크림 앞에서는 표정이 풀어졌다. (2019.12.20)

효녀병_191220_사진.jpg
언스플래시

 

 

왜 어른들은 어김없이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걸까.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내내 여행지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던 이순재 배우도 아이스크림 앞에서는 표정이 풀어졌다. 우리 엄마도 아이스크림이라면 하드 바든 소프트 콘이든 퍼먹는 통이든 종류 상관없이 좋아하는데. 이순재 배우나 엄마의 어린 시절을 보지는 못했으니 어른이 되어 좋아하게 되었는지 어릴 적부터 쭉 좋아했는지 알 순 없지만, 어른들이 대체로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는 명제는 만 25년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아직까지는 참이다.

 

그중에서도 엄마의 취향은 부라보콘이나 누가바, 투게더처럼 전통(?)을 자랑하는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이다. 내게 가장 강력한 수능 금지 CM송은 ‘열두 시에 만나요 부라보콘’인데, 엄마 대학 시절에 부라보콘을 먹으며 자신도 열두 시에 누군가를 만날 거라며 설레했다는 이야기를, 부라보콘의 껍질을 뜯을 때마다 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아이스크림이란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인가 보다.

 

하지만 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다. 요즘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사람 좀 몰린다는 장소에는 순(純) 우유 아이스크림이 아닌 바닐라 향이 첨가된 듯한 다소 인공적인 색과 맛의 소프트 아이스크림 기계가 있었다. 맛은 주로 세 가지였다. 바닐라, 초코, 그리고 바닐라와 초코가 반반씩 나오는 맛. 요즘처럼 컵이나 콘을 선택할 수 없고 무조건 콘으로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빨리 먹지 않으면 녹아내려서 금방 손이 찐득찐득해지곤 했다.

 

엄마는 나와 둘이 외출하는 날에는 자주 그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특히 놀이공원이나 백화점처럼 평소에는 자주 가지 못하는 곳에 갔을 때나 치과 치료를 마친 날에는 어김없이 사주어서, 그런 아침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아이스크림 생각에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도 백화점에 간 날이었다. 나는 조금 설레 있었고, 엄마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엄마의 상태를 모른 척하고 있었다. 회전문을 밀고 들어가서 에스컬레이터로 향하는데,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멈춰 섰다. “정연아, 엄마 안 되겠어. 몸이 안 좋아.” 엄마는 사람이 많은 닫힌 공간에 가면 자주 힘들어했다. 우리는 다시 백화점에서 나왔다. 엄마는 바깥 공기를 좀 쐬더니 다시 들어갈 수 있겠다고 말했다. 다시 회전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나왔다. 몇 번 반복하면서 나는 조금 성질을 냈고, 엄마는 몇 번 더 시도했고, 우리는 결국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아니었지만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는 공황장애 비슷한 증상을 보였던 것 같다.

 

며칠 전, 오랜만에 엄마와 백화점에 갔다. 내가 필요한 것을 말해보라고 하자 엄마는 됐다면서도 파운데이션 쿠션과 눈썹 그리는 펜슬 같은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머쓱했는지 내게 필요한 것 없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답했고, 실제로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계속 무언가를 사주고 싶어했다. “네가 힘들게 일해서 버는 돈인데, 엄마가 이렇게 써서 어떡해. 너 오늘 돈 너무 많이 쓴 거 아냐?” 나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며 엄마에게 팔짱을 꼈다. 꼭 아이스크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원한 것이 먹고 싶기도 했다. 우리는 백화점 지하로 내려가서 아이스크림 매장을 찾아 헤매다가, 최근에 리뉴얼하면서 아이스크림 매장이 빠졌다는 직원의 안내를 듣고 나서야 백화점을 나섰다. 요즘엔 사람들이 백화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안 사 먹나 봐 따위의 대화를 하며 역으로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발견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바닐라와 내가 좋아하는 녹차, 두 가지 맛을 골랐다. 다 먹고 남은 빈 통에 스푼 두 개를 담으니 왠지 충만한 기분이었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엄마도 그런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정연(도서MD)

대체로 와식인간으로 삽니다.

오늘의 책

법정 스님의 죽비 같은 말씀 모음집

입적 후 14년 만에 공개되는 법정 스님의 강연록. 스님이 그간 전국을 돌며 전한 말씀들을 묶어내었다. 책에 담아낸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가르침의 목소리는 고된 삶 속에서도 성찰과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전한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길로 인도하는 등불과도 같은 책.

3년 만에 찾아온 김호연 문학의 결정판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소설가의 신작. 2003년 대전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에서 중학생 시절을 보냈던 아이들. 15년이 흐른 뒤, 어른이 되어 각자의 사정으로 비디오 가게를 찾는다.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모험을 행했던 돈키호테 아저씨를 찾으면서, 우정과 꿈을 되찾게 되는 힐링 소설.

투자의 본질에 집중하세요!

독립 리서치 회사 <광수네,복덕방> 이광수 대표의 신간. 어떻게 내 집을 잘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다. 무엇이든 쉽게 성취하려는 시대. 투자의 본질에 집중한 현명한 투자법을 알려준다. 끊임없이 질문하며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행동하도록 이끄는 투자 이야기.

건강히 살다 편하게 맞는 죽음

인류의 꿈은 무병장수다. 현대 의학이 발전하며 그 꿈이 실현될지도 모른다.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세계적인 장수 의학 권위자 피터 아티아가 쓴 이 책을 집집마다 소장하자. 암과 당뇨, 혈관질환에 맞설 생활 습관을 알려준다.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에 필요한 책.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