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윤덕원 칼럼] 세상이 끝나는 일에 대한 상상력(Feat. 이이언)

심너울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 이이언 ‘세상이 끝나려고 해’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세상이 정말 끝나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준비하는 일은 왠지 부질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지금은 조금 다른 마음이다. 세상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세상이 끝나는 일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2020.08.19)

언스플래쉬

해당 채널예스 기사에 한줄평 댓글을 달아주세요!
선착순 1000명에게 YES포인트 100원을 드립니다.


늘 지나던 곳이고 늘 하던 일이었는데도 뭔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주말 연휴 동안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예정되어 있던 일들을 취소하고 집에만 있다가 나온 참이었다. 저기 옆 건물에 확진자가 생겨서 폐쇄될 예정이고 또 어떤 확진자가 병원을 탈출해서 이 지역을 돌아다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밖에서 요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가게에 들어섰는데, 사람은 거의 없었고 거리두기를 위해 테이블을 옆으로 치워 두었다. 이상하게 더 휑한 거리를 보니 마치 좀비영화 속에 들어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했던 때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한동안 거리두기를 유지한 채로 나름의 생활을 잘 유지해 왔었던 상황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곁에 있을 땐 잘 모르다가 그의 부재를 통해서 존재감을 느꼈다는 노래 가사처럼, 소중했던 일상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날들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다.

심너울 작가의 단편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정적’,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신화의 해방자’, ‘최고의 가축’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담고 있는 소설집이다. 수록된 단편들은 SF 소설이지만 그 배경과 시간이 가상의 공간이 아닌 현대의 서울을 다루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정적’ 은 마포구와 서대문구, 신촌을 중심으로 갑자기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는 사건으로부터 이야기가 진행되고,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 는 일산과 홍대 서교예술실험센터, 경의중앙선 열차와 백마역이 등장한다. ‘신화의 해방자’ 와 ‘최고의 가축’에서는 관악산에 용이 살고 있다는 설정인데, 이 모든 장소들을 다 가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소설 속의 이야기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이야기 속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이 가까워서일까, 이야기 속 SF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찐’ 현실인 것처럼 느껴진다. 

최근 한국 SF소설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작품들도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나 역시 즐겨 읽고 있다. SF소설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는가 생각해 보면 가상의 세계에 우리의 삶을 올려놓았을 때, 이전에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력이 당연히 존재하는 것처럼 나에게 여러 물리적 제약이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상황에서 벗어난다면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을 테니까. 천동설에서 지동설을 믿게 되는 정도의 거대한 변화가 아니라도 일상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왠지 과학적으로 조금 지식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상상해 보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현실과는 멀리 있는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신기하게도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눈을 흐리게 뜨고 매직아이를 바라보면 그 속에 있는 글자가 떠오르듯 말이다. 

그러나 오늘 나는 SF소설의 인기 비결이 우리 앞의 현실이 더 SF같아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장 요즈음만 하더라도 바이러스에 무너지고 있는 인류의 모습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웃픈 헤프닝들과 이기적이고 반지성적인 사람들의 행동을 볼 수 있다. 그 와중에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영웅들의 존재를 깨닫기도 한다. 점점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환경문제 또한 그렇다. 예전에는 SF소설을 읽으며 ‘아주 말도 안 되는 농담 같은데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느꼈다면, 지금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소설보다 뉴스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이이언의 ‘세상이 끝나려고 해’를 선곡해 보았다. 세상이 정말 끝나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준비하는 일은 왠지 부질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지금은 조금 다른 마음이다. 세상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세상이 끝나는 일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세상이 끝나려고 해

누구의 무슨 잘못인지

세상이 끝나려고 해

이 노래가 끝날 때쯤엔 아마도

너와 나도 세상도 아무도 없겠지

너도 나도 세상도 아무도 없겠지

bye bye bye bye bye bye bye bye bye bye

아직 미안하다 말하지 못해 미안해요

bye bye bye bye bye bye bye bye bye bye

아직 미처 다 알지 못한 내가 아쉬워요

마음껏 술을 마셔요

숙취의 내일은 없을 테니

마음껏 술을 마셔요

이 노래가 끝나기 전에

어쩌면 우리 모두 다시 만나겠지

어쩌면 우리 모두 다시 만나겠지

bye bye bye bye bye bye bye bye bye bye’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심너울 저
안전가옥
이이언 (eAeon) - 미니앨범 : Realize
이이언 (eAeon) - 미니앨범 : Realize
이이언
SonyMusic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08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윤덕원

뮤지션. 인디계의 국민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1대 리더. 브로콜리너마저의 모든 곡과 가사를 썼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심너울> 저10,800원(10% + 5%)

왕성한 창작열이 돋보이는 장르문학계의 ‘라이징 스타’ 심너울 작가의 첫 번째 단편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자, 심너울 작가의 첫 번째 단편집이다. 2018년 6월에 첫 작품을 쓴 작가는 이후 1년 반 동안 무려 21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ebook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심너울> 저8,190원(10% + 5%)

데뷔 1년 6개월 만에 SF어워드 2019 대상 수상 심너울 작가의 첫 번째 단편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자, 심너울 작가의 첫 번째 단편집이다. 2018년 6월에 첫 작품을 쓴 작가는 이후 1년 반 동안 무려 21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이이언 (eAeon) - 미니앨범 : Realize

9,700원(19% + 1%)

실험적인 디지털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웠던 앨범 [GUILT-FREE]의 이이언이 이번에는 어쿠스틱 앨범으로 돌아왔다. 어쿠스틱 악기들만으로 녹음된 미니 앨범 [REALIZE]는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 콘트라 베이스, 드럼의 정제된 편성으로 팝과 재즈와 모던락을 넘나드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번 앨범에는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법정 스님의 죽비 같은 말씀 모음집

입적 후 14년 만에 공개되는 법정 스님의 강연록. 스님이 그간 전국을 돌며 전한 말씀들을 묶어내었다. 책에 담아낸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가르침의 목소리는 고된 삶 속에서도 성찰과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전한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길로 인도하는 등불과도 같은 책.

3년 만에 찾아온 김호연 문학의 결정판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소설가의 신작. 2003년 대전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에서 중학생 시절을 보냈던 아이들. 15년이 흐른 뒤, 어른이 되어 각자의 사정으로 비디오 가게를 찾는다.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모험을 행했던 돈키호테 아저씨를 찾으면서, 우정과 꿈을 되찾게 되는 힐링 소설.

투자의 본질에 집중하세요!

독립 리서치 회사 <광수네,복덕방> 이광수 대표의 신간. 어떻게 내 집을 잘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다. 무엇이든 쉽게 성취하려는 시대. 투자의 본질에 집중한 현명한 투자법을 알려준다. 끊임없이 질문하며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행동하도록 이끄는 투자 이야기.

건강히 살다 편하게 맞는 죽음

인류의 꿈은 무병장수다. 현대 의학이 발전하며 그 꿈이 실현될지도 모른다.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세계적인 장수 의학 권위자 피터 아티아가 쓴 이 책을 집집마다 소장하자. 암과 당뇨, 혈관질환에 맞설 생활 습관을 알려준다.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에 필요한 책.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