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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경, 드림팝의 꿈결 같은 낭만

신해경 - <속꿈, 속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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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은 무조건적 답습이 아닌 슈게이즈의 태생적 한계인 '자가 반복' 프레임을 극복하려는 태도를 전면에 드러낸다. (2020.08.26)


푸른새벽,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검정치마. 한국 인디 신에서의 드림 팝은 다양한 해석을 거치며 그 유대를 이어 왔지만, 그중 2017년 발매된 신해경의 EP <나의 가역반응>만큼 긴밀하고 끈질기게 파고든 작품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둔중한 슬로코어(Slowcore) 배열과 짙은 잔향을 지닌 슈게이즈(Shoegaze)의 결합, 이에 강박 수준으로 통일된 구성은 마치 몽환경의 권능에 도전하는 바벨탑과 같았으니. 한 명이 만든 한 장의 음반이 곧 하나의 장르가 된 사례다.

그 후속작이자 첫 정규작인 <속꿈, 속꿈>의 첫 트랙 「회상」은 전작 <나의 가역반응>의 마지막 트랙 「화학평형」의 바통을 넘겨받는 구조다. 이는 속편보다는 전작의 의도를 보완하고 완성하려는 감독판 역할에 가깝다. 두 앨범의 교두보인 싱글 「명왕성」과 「담다디」가 동일 작법으로 외전을 자처하며 정규작의 실루엣을 어느 정도 예고한 셈이지만, 이처럼 끝과 시작을 직접적인 연결고리로 매듭짓는 것은 확고한 의지에서 나온 자신감이다.

그럼에도 앨범은 무조건적 답습이 아닌 슈게이즈의 태생적 한계인 '자가 반복' 프레임을 극복하려는 태도를 전면에 드러낸다. 전작의 다채로운 기타 라인과 현작의 부드러운 기조를 적절하게 녹여낸 「그대는 총천연색」, 그리고 특유의 신비주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면서도 명료함이 특징인 「독백」이 그렇다. 겹겹이 쌓은 기타 사운드와 높은 가성을 대비시키며 극적인 효과를 얻던 방식은 차분한 악기 편성이라는 거름종이를 거쳐 더욱 담백한 질감과 직관적인 형태로 여과된다.

그러나 뿌연 안개를 걷어내는 경량화 과정 속 가려져 있던 선배들의 아우라가 불가피하게 연상된다. 가벼움을 도모한 「어떤날」은 밴드 9와 숫자들의 곡 「그대만 보였네」의 산뜻한 진행이 아른거리고 「크로커스」와 같이 보컬의 리버브를 줄인 곡은 검정치마 조휴일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게다가 몇몇 곡은 변화 이후에도 <나의 가역반응>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화학평형」의 후반부 멜로디 라인을 따와 부드러운 조율을 시도한 「그 후」는 무던한 탓에 반복을 택하면서까지 트랙 수를 늘린 의의를 찾기 힘들다. 평범을 피하기 위한 시도가 도리어 다른 영역의 평범을 가져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햇빛을 고루 받아 개화를 거친 <속꿈, 속꿈>은 해가 영영 들지 않던 <나의 가역반응> 시절에 비해 바이블적 잔향과 탐구 열기의 농도가 낮다. 흐릿한 해상도를 선명하게 교체하자 입체감이 사라지고 상상력이 개입할 공간마저 삼킨 것만 같다. 다만 이 작품이 신해경이 구축한 세계관에 있어 입문하기에 가장 친절하고 편한 작품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트레이드마크이자 동시에 일반 청자에게 장벽으로 작용하던 거친 텍스처를 제외하고도, 독보적인 그의 사운드 메이킹과 꿈결 같은 낭만이 여전히 넘실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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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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