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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자의 결혼식

곽민지의 혼자 쓰는 삶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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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셋쯤이었나. 결혼하지 않기로 명확히 정했다고 말했을 때, 친구가 물었다. 그동안 뿌린 축의금이 있는데, 그걸 회수하지 못하지 않느냐고. (2020.09.01)

일러스트_응켱


“축의금 내기 아깝지 않아?”

서른 셋쯤이었나. 결혼하지 않기로 명확히 정했다고 말했을 때, 친구가 물었다. 그동안 뿌린 축의금이 있는데, 그걸 회수하지 못하지 않느냐고. 

그 생각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식에서 축의금을 주고받는 것에 대해 부여한 각자의 의미가 다를 테니까. 어떤 사람은 함께 일하거나 식사 자리에 동석한 경험이 있어서 서로 맞팔하는 사이기만 해도 결혼식에 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처럼 아주 가까운 친구나 동료의 결혼식에만 참석하기도 하니까. 결혼식에 가서 축의를 하는 것이, ‘지인 존’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하면서 그 원칙 속에서 관계를 돌보던 사람이라면 자신의 결혼식 방명록을 보면서 누락된 이름들을 감지하고 서운할 수 있으리라. 경조사도 관계의 영역이기에 내가 생각하는 거리감을 상대에게 강요해서도 안 되지만, 내가 느끼는 서운함이 평가받는 것도 그것대로 억울할 테니까.

사실 나에게 축의금은 굉장히 심플하다. 내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데, 내가 축하의 의미로 술 한 잔을 사도 어차피 쓸 돈. 아주 많이 친밀하다면, 친구에게 새 가족이 생기고 삶의 모양이 바뀌려는 이 순간 거기 내가 사 넣어준 가전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돈. ‘고생했어, 오늘 내가 한턱 쏠게!’ 하는 마음을 봉투에 담아 전하는 편지 같은 것. 그래서, 돌려받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다. 앞으로 내 삶에도 반짝이는 순간들이나 소소한 축하받을 이벤트는 생길 것이고, 내 사람들은 시간과 회비(!)와 선물 등으로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유형의 축하를 할 테니까.

그래서, ‘환갑잔치 왔다 생각하고 그냥 내요.’라고 편리하게 대답하기도 했다. 친구가 살면서 큰 잔치 한 번 벌이는데, 가서 수고했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하고 기분 좋게 내놓는 마음으로. 거꾸로 말하면, 우리가 현재 환갑이라면 무조건 서로의 잔치엔 가겠지 싶은 친구들의 결혼식을 가는 편이기는 하다. 한 번 일을 했거나, SNS에서 서로의 안부를 말없이 확인하는 사이라고 해서 결혼식까지 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간 결혼한 수많은 동료 여러분, 한 번이라도 저와 스친 적 있는 지인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결혼식 불참과 축의금 미납부로 서운하셨다면 지면을 빌려 미안함을 전합니다. 하지만 축의를 하는 온도의 다양성을 생각해주세요. 그래도 서운하시다면, 대신 저의 결혼식에 오시지 않아도 된다는 효율을 생각해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결혼식엔 오지 않은 관계라도, 우리가 나중에 서로의 삶에서 어떤 사이가 될지 어떻게 알아요? 서로와 시간을 보내느라 축의금 몇 배의 돈을 턱턱 내놓게 될지요. 지금은 서로 환갑잔치 오갈 정도로 친밀하진 않아서 그랬다고 치고, 앞으론 모르니까요. 결혼식 참석 여부만으로 서로를 포기하지 맙시다, 결혼식은 배우자와 함께 하는 서약이지 삶의 모든 관계와 함께하는 서약은 아니니까요. 늦었지만 결혼 축하드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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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곽민지

작가. 출판레이블 <아말페> 대표. 기성 출판사와 독립 출판사, 기타 매체를 오가며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 등이 있다. 비혼라이프 팟캐스트 <비혼세>의 진행자, 해방촌 비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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