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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 도청으로 이웃하고, 정(情)으로 사촌 되다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신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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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은 지금은 잊힌 가치가 된 감정을 이웃 개념으로 접근하여 향수를 자극하고 지금 우리 주변을 살피게 하는 작품이다. (2020.11.12)

영화 <이웃사촌>의 한 장면

제목이 정감 간다. ‘이웃사촌’이란다. 집의 담이 낮아 왕래가 쉬었던 예전에는 이웃끼리 서로 친해 가족 같은 경우가 많았다. 언젠가부터 전국 곳곳에 아파트가 늘어서고 먹고사는 일이 팍팍해지면서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몰라도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이웃사촌>은 지금은 잊힌 가치가 된 감정을 이웃 개념으로 접근하여 향수를 자극하고 지금 우리 주변을 살피게 하는 작품이다. 

때는 민주화를 향한 국민의 요구가 빗발치는 1980년대 중반, 대권(정우)은 평범한 가장으로 위장한 ‘프락치’다. 학생운동 하는 이들을 ‘빨갱이’라 혐오하며 뒤를 캐거나 도청한다. 그의 행보를 주목한 무소불위의 권력 김 실장(김희원)은 대권을 불러 집 한 채 값을 주는 대가로 일을 맡긴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차기 대권 후보 이의식(오달수)의 먹고 싸고 자고 하는 등의 모든 것을 감시하라는 명령이다. 

자택 격리된 이의식의 바로 옆집에 감시 본부를 차린 대권은 도청팀을 꾸려 이의식의 일거수일투족을 김 실장에게 보고한다. 가족과 함께 감금되어 있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의식을 보면서 대권은 흔들린다. 머리에 뿔(?) 달린 ‘빨갱이’는 가족애와 같은 개념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권위적인 대권 자신보다 가족과 더 화목하게 지내는 게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담이 낮은 2층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대권에게 옆집의 이의식이 담배 한 대 나눠 필 수 있느냐며 말을 걸어온다. 

<이웃사촌>은 <1987>(2017)을 <써니>(2011)처럼, <써니>를 <1987>처럼 연출한 작품이다. 이의식 의원의 감금 상황을 취재해야 하는 언론인과 윗분들의 호통이 두려워 이를 막아야 하는 경찰들의 대치 상황을 묘사하는 데 있어 <이웃사촌>은 당시 유행하던 디스코 계열의 음악을 배경으로 준비한다. 상황의 위급함이 주는 긴장감 대신 엄혹했던 시절을 향수할 수 있게끔 가져간 연출은 <써니>의 특정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이웃사촌> 공식 포스터

그 아픔이 곳곳에 배어 있는 30여 년 전의 기억이라 너무 가벼운 연출이 아닌가 싶긴 해도 <이웃사촌>은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데 있어 웃음으로만 접근하는 작품은 아니다. 엄하고 모진 역사의 시간 앞에서 이념과 계급의 이분법으로 담을 쌓은 이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지, 그 승리의 역사를 결말로 삼아 달리는 <1987>과 닮았다. 

시대의 배경은 같아도 연출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영화를 마치 대권과 이의식처럼 가깝게 세워 놓아 손을 잡게 하는 <이웃사촌>의 연출론은 의도한 전략은 아니다. <이웃사촌>을 연출한 이환경 감독은 전작 <7번방의 선물>(2013)에서 시대적으로 예민한 사건을 가져와 논리 비약의 상황으로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고 뒤로 갈수록 눈물을 흘리게 하는 대중영화의 공식으로 많은 관객을 모았다. <이웃사촌>에서 <1987>과 <써니>를 가져온 배경에는 감독 개인의 정치적 신념과 연출자의 야망보다 흥행에 성공한 두 영화의 장점을 취하는 데 더 큰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독창성은 떨어져도 감정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감독의 연출은 이번에도 여러 순간 적중한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오면 바로 휘발하는 감정의 ‘찐’ 여부와 상관없이 마지막 장면의 ‘식사는 하셨는가?’ 대사 한 마디가 주는 울림은 크다. 음식을 나눈다는 건 상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이를 ‘이웃사촌’이 품고 있는 정(情)과 연결하여 민주화를 이룬 지금에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자기주장만 앞세워 반목하고 그럼으로써 상대와 등을 돌린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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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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