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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크> 풍차에 덤벼들어 승리한 현대판 돈키호테

데이빗 핀처 감독의 연말 화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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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처의 필모그래프는 과장하자면 어둠의 미학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었다. 이에 자유를 준 건 넷플릭스였다. (2020.12.10)

영화 <맹크>의 한 장면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1941)은 영화 역사상 최고의 작품을 꼽을 때면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1958)과 수위를 다투기(?)로 유명하다. 한마디로 걸작이다. <시민 케인>이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에 앞서 <시민 케인>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작품인가. 데이빗 핀처의 <맹크>는 이를 오슨 웰스가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 허먼 J. 맹키위츠의 시각으로 풀어간다. 

맹크(게리 올드먼)는 높은 주급을 받았을 정도로 작가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지금은 아니다. 알코올 중독에, 진보주의자로 보수 친화적인 메이저 영화사와 갈등을 빚어 퇴물 취급을 받고 있다. 그때 RKO 픽처스는 재정 악화 상태를 타개하려고 스물네 살의 애송이 오슨 웰스(톰 버그)에게 영화 만들기의 전권을 위임한다. 웰스는 크레딧에서 이름을 빼는 대신 후한 대가를 약속하며 맹크를 찾아 시나리오를 의뢰한다. 

맹크는 친분이 있어 잘 아는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찰스 댄스)를 모델로 각본을 집필한다. 막대한 부를 상속받아 언론사를 사들여 황색 저널리즘의 시초가 된 허스트를 자신의 왕국에서 외롭게 죽어간 왕으로 묘사했다. 맹크의 최고 작품이었다. 하지만 허스트와 그의 측근들이 영화 제작을 막으려고 맹크를 압박했다. 맹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크레딧에 이름을 올려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는데 반발하는 웰스 때문에 더 마음고생을 했다. 

시나리오의 오리지널리티를 두고 맹크와 웰스 사이에 있었던 알력 관계는 전설적인 평론가 고(故) 폴린 카엘이 쓴 에세이 <레이징 케인 Raising Kane>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에 따르면, 인물을 달리해 플래시백을 활용하며 극 중 케인을 회상하는 <시민 케인>의 서술 방식은 맹크의 아이디어였다. 케인이 죽기 전 남긴 마지막 말 ‘로즈버드 Rosebud’가 뜻하는 바가 무언지 관객의 관심을 유도하여 영화 끝까지 집중하게 한 구조도 그랬다. 

인물에게 입체성을 부여하고 해당 삶에 해석의 여지를 불어넣는 서술법과 구조는 획기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메이저 영화 산업에서는 관객을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흥행의 걸림돌로 치부되고는 한다. 하물며 <시민 케인> 기획 당시의 인식이란 <맹크>의 대사를 빌리면, 군밤 튀듯 현재와 과거가 산만하게 오가고 그럼으로써 케인을 통해 허스트를 인식하게 하는 방식은 관객을 가르치는 것만 같아 각본의 수준을 낮춰야 하는 정도였다. 

<맹크>는 현실에서 꿈꾸지 못하는 이미지의 그 이상(以上)을 구현하는 할리우드에서 이상(理想)을 실현하려 애쓰는 이들에 주목한다. ‘꼬마 천재’로 불린 웰스는 데뷔작에서부터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허스트를 풍자했고, 허스트는 노아의 방주를 건설하듯 저택을 왕국으로 꾸몄다. 맹크는 자신의 이름과 성과를 지우려 한 두 거물, 웰스와 허스트로부터 작품을 지키고 자존심을 세우려 싸웠다. 데이빗 핀처가 보기에 맹크를 비롯하여 웰스도, 허스트도 ‘풍차에 덤벼드는 정신 나간 귀족’, 바로 돈키호테였다. <맹크>는 현대판 돈키호테 이야기다. 

핀처는 <맹크>를 <더 게임>(1997)의 차기작으로 생각했었다. 이에 대한 구상을 밝히자 제작사가 보인 반응은 맹크의 <시민 케인> 시나리오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과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흑백으로 영화를 찍겠다는 핀처의 야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흑백 촬영에 대한 할리우드의 거부 반응을 경험한 핀처는 <패닉룸>(2002)을 만들면서 화면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기의 조도를 어둠에 가깝게 맞췄다. 제작자는 몰래 화면 조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는데 애초에 핀처가 계산한 어둠의 밝기였다. 


영화 <맹크> 공식 포스터

핀처의 필모그래프는 과장하자면 어둠의 미학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었다. 이에 자유를 준 건 넷플릭스였다. 연출의 전권을 보장받은 핀처는 흑백 촬영은 물론 맹크의 서술법 그대로 극 중 사건을 진행했고, 전경과 후경의 선명도를 똑같이 가져가 관객이 화면에서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하게 한 ‘딮 포커스 deep focus’ 등 <시민 케인>의 스타일을 현대의 디지털 기기로 고스란히 구현했다. 시대가 변했어도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였다면 단 1원의 제작비도 받지 못했을 프로젝트를 핀처는 자신의 의도대로 ‘마침내’ 실현했다. 

허스트 측의 견제에도 끝내 완성된 <시민 케인>은 걸작의 평가에 상관없이 흥행에 실패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단 하나의 오스카를 받는 데 그쳤다. 각본상이었다. 각본 크레딧에 올랐던 맹크와 웰스는 모두 시상식에 불참했다. 대신 오스카를 전달받은 맹크는 각본의 지분이 없는 웰스에 관해 묻는 기자를 향해 그것이야말로 영화의 신비라는 말로 비판을 우회했다. 맹크는 자신의 창작권을 지키려고 끝까지 싸운 사람이었고 ‘끝내’ 성과를 쟁취하고 인정받았다. 핀처 또한 오랫동안 꿈꿨던 <맹크>로 이상을 실현했다. 핀처가 <시민 케인>에 관한 영화를 만들면서 오슨 웰스가 아니라 허먼 J. 맹키위츠에 이입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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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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