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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면서도 쓴맛이 고이는 스토리텔링, 큐엠의 <돈숨>

큐엠(QM) <돈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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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면서도 입안에 쓴맛이 가득 고이게 하는 스토리텔링이 절정에 이르렀다. (2021.01.26)


잘 나가는 힙합 레이블에 인기 있는 아티스트만 있는 건 아니다. 탄탄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주목받는 뮤지션과 달리 '회사 식구 사진 속 저 맨 끝'에 서 있는 래퍼도 있다. VMC 소속 래퍼 큐엠은 2016년 <NAZCA>를 시작으로 정규작 <WAS>와 <HANNAH>를 차례로 발매하며 튼튼하고 컨셔스한 랩으로 힙합 애호가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지만, 여전히 대중에게는 무명에 가깝다. 2년 만에 발매한 신보 <돈숨>은 그러한 쓸쓸하고 고독한 정서를 노래한다. 과감한 패기 대신 개인의 에피소드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WAS> 보다는 <HANNAH>와 닮았으며, 30대에 접어든 래퍼가 삶에 느낀 회의와 불안을 솔직하게 저술한다.

'숨만 쉬어도 달에 200'이 나가는 사회 속 자신의 위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조소한다. '마이크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스스로에 좌절하기도('36.5'), '너희가 내 걸 들어줘야 벌잖아'라며 격앙된 감정을 내비치기도 한다('카누'). 작품의 어감이 말끔하고 직선적인 덕에 청자에게 즉각적으로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것이 최대 강점이다. 또한, '섬'이라는 장치를 메타포 삼아 자신이 갇힌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다가('Island phobia') 끝내 제자리로 돌아오는('다시 섬') 유연한 전개 과정, 전 애인과 관련한 진술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며 사실성을 부각하는 후반 트랙들에서는 작가적인 면모도 극대화한다. 간결하면서도 입안에 쓴맛이 가득 고이게 하는 스토리텔링이 절정에 이르렀다.

메시지뿐만 아니라 음악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정직한 붐뱁 위주였던 <HANNAH>와 달리 프레디 카소(Freddi Casso), 버기(Buggy), 반 루더(Van Ruther) 등 VMC 인하우스 프로듀서들이 지휘한 본작의 사운드는 한층 입체적이다. 공격적인 전자음을 마찰시킨 'Island phobia'와 트랩과 붐뱁을 성공적으로 연결한 '돈숨', 둔중한 베이스 라인이 귀를 잡아끄는 '만남조건'은 대표적인 곡이다. 무엇보다 듣는 맛의 절정은 넉살과 함께한 '뒷자리'. '인생 역전'이라는 주제로 음반에서 유일하게 호기로운 기운을 내비치는 이 곡은 앞뒤로 밀고 당기는 드럼과 베이스의 그루브에 귀에 잘 들어오는 랩과 훅(Hook)을 무기 삼아 킬링 트랙으로서의 존재감을 강하게 피력한다.

주인공의 내용 전개가 명확해 피쳐링에 참여한 래퍼 넉살, 화지, 쿤디판다, 타이거 JK는 안정적인 활약으로도 존재감이 다소 옅게 다가온다. 보컬진 저드와 비비가 노래한 후렴구가 곡의 무드에 충실히 일조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것과 반대로 말이다. 그만큼 <돈숨>의 핵심은 아티스트의 자전적 서사에 있다. 화려한 조명 속 각광받는 랩스타들에 가려진 힙합 신의 이면에서 자신을 연민하다가도 긍지를 지키고자 하는 뮤지션의 긴 한숨을 듣는다. 그는 자신을 '직업이기에는 부끄러운' 래퍼라 칭하지만, 역량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음반을 듣는 이들은 모두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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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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