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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혜의 꽤 괜찮은 책]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 『너라는 생활』

<월간 채널예스> 2021년 2월호 – 김혜진 『너라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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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너’와 ‘나’에 대응할만한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책장을 덮고 그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그러다 거울 앞에 서 본다. 혼란스러운 눈빛을 지닌 한 사람이 우두커니 거울 안에 서 있다. 거울 속의 그에게 가만히 묻는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2021.02.04)


몇 년 전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이런 저런 게시물을 하릴없이 구경하던 중 문득 한 페이지에서 마우스가 멈추었다. 예전에 노동운동을 하던 사람이 운영하는 블로그였는데 두서없는 글이 장기간에 걸쳐 드문드문 적혀 있었다. 혼잣말 같은 포스팅의 대부분은 그런 내용이었다. 남편은 한때 같이 노동운동을 하던 동지였다고. 지금은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은 본인 대신 남편 혼자 운동을 하고 있지만 이제 그에게서 자신의 존재는 지워진 것 같다고. 결혼 이후 남편과 대화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고. 그는 집에서는 하루종일 휴대폰만 본다고. 그런고로 남편이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누구를 만나는지 알려면 그의 페이스북을 들여다 보아야만 한다고. 자신은 남편에게 휴대폰보다 못한 존재 같고 그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기계처럼만 느껴진다고. 그런 이야기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당시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밤에 잠을 거의 자지 못하던 나는 그 글을 읽고 매우 분노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블로그 주인의 삶이 안타깝게 느껴졌고, 그의 배우자란 사람에게 화가 났다. 그가 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같이 사는 가족과 대화할 만큼의 짬도 내지 못할 정도의 운동이라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정작 곁에 있는 중요한 사람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인물이 다른 이들의 삶은 어떻게 돌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 그때까지 숱하게 보고 들었던 ‘대의 타령’들이 생각나면서 더욱 화가 치솟지 않았나 싶다. 저러고선 스스로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고 씩씩거리며 인터넷 창을 닫는데 문득 어떤 질문 하나가 메아리처럼 남겨졌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사람인가. 가정까지 희생시키며 평생 노동운동에 헌신한 그는....나쁜 사람인가?



기억 저편으로 잊혀진 줄 알았던 그 날의 일이 다시금 떠오른 것은 김혜진의 『너라는 생활』을 읽으면서부터다. 이 책의 첫머리에 실린 단편 「3구역, 1구역」에는 길고양이들에게 몹시도 헌신적인 ‘너’가 등장한다. 부동산에서 일하는 ‘너’는 재개발에 항거하는 지역 주민들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참 이기적이라고, 어떻게 일일이 다 사정을 봐주느냐고, 빠른 결단이 결코 쉽지만은 않겠으나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될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그런 ‘너’에게 졸지에 터전에서 내쫓겨야 하는 상가 사람들이나 돌연 새로 살 집을 구해야 하는 세입자들은 아무런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재개발을 둘러싼 경제적 이익에 몹시도 민감한 ‘너’는 동시에 길고양이를 위해서라면 금전과 시간과 마음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1백만 원을 훌쩍 넘어서는 병원비를 아낌없이 결제하고, 빈 저택을 구해 집 전체를 길고양이들의 터전으로 삼기도 한다.

그런 ‘너’를 바라보며 화자인 ‘나’는 혼란에 빠진다. 길고양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따뜻한 사람으로 여겼다가, 재개발 문제 앞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모습을 보며 아주 낯선 사람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너’는 누구인가. ‘너’는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나쁜 사람인가. 그리고 그런 ‘너’에게 반감을 느끼면서도 끝내 거부하지 못하고 조금씩 빠져드는 ‘나’, 그런 자신에 대해서도 질문은 계속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나쁜 사람인가. ‘나’는 정의로운 사람인가, 나약한 사람인가. ‘나’는 도덕적인 사람인가, 비윤리적인 사람인가. ‘나’는 ‘너’를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 ‘나’는 ‘너’를 선망하는가, 경멸하는가.

「3구역, 1구역」에서 시작된 이러한 질문들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어진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모두 ‘너’라는 대상에 대한 입체적인 시각을 담아냈다. 8편의 단편소설 속 ‘너’와 ‘나’는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존재라는 지점에서 하나같이 닮아있다. ‘너’는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을 만큼 섬세하게 마음을 쓰지만 그래서 종종 공과 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사람, 마음을 지나치게 쓰는 까닭에 일과 생활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사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느라 그런 ‘너’를 지켜보는 ‘나’의 마음이 망가지는 것에는 무심한 사람, 환경과 인간을 고려한 ‘윤리적’으로 생산된 제품만을 고집하지만 정작 그것을 사오는 과정에서의 나의 수고와 피로에는 무심한 사람, 모든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의 목소리는 무시하는 너라는 존재,

이 작품집의 미덕은 인간이 얼마나 복합적이고 입체적인지를 그려내는 동시에, 결코 완전히 동등해질 수는 없는 ‘관계’의 본질적인 모순을 보여주었다는 데에 있다. 연인관계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마는 힘의 격차, 권력 관계. ‘너’라는 인물의 온갖 모순과, 머리로는 그런 ‘너’를 거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본능적으로 이끌리고 마는 ‘나’. 하지만 소설 속 ‘나’의 말처럼, 결국 모든 관계는 본질적으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모순으로 시작하여 모순으로 끝나는, 모순과 차등한 권력이 아니었더라면 애초에 시작조차 못했을 그런 관계들. “그러니까 그 밤에 내가 실감한 건 너와의 간극이었고 격차였다. 그러나 네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될 수 있었을까.” ‘너’가 그토록 모순적인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너’가 그토록 ‘나’와 다르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애초에 존재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너’와 ‘나’에 대응할만한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책장을 덮고 그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그러다 거울 앞에 서 본다. 혼란스러운 눈빛을 지닌 한 사람이 우두커니 거울 안에 서 있다. 거울 속의 그에게 가만히 묻는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너라는 생활
너라는 생활
김혜진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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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승혜(작가)

작가. 에세이『다정한 무관심』,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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