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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 칼럼] 우주가 죽기 전 남기게 될 최후의 존재는?

<월간 채널예스>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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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라진 그 먼 미래의 우주는 우리가 남기게 될 양분을 활용해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게 될까? (2021.04.05)

이시간이 흐르면서 중력을 통해 초기 우주 속 질량이 모이면서 거대 구조를 형성하는 과정을 구현한 시뮬레이션 ⓒPhysics Frontier Center of the National Science Foundation

우주는 태초의 혼돈에서 시작해 점차 복잡하게 얽혀있는 우주 거대구조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복잡하게 돌아가는 생체 기계, 생명체까지 만들어냈다. 그런데 얼핏 보면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우주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구조체들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주가 더 무질서해지며 엔트로피가 항상 증가한다”고 이야기하는 열역학 제2법칙에 모순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주가 거대구조를 완성하고 별과 행성을 만들어내고 생명체를 만드는 모든 과정은 열역학 제2법칙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다. 은하가 만들어지고 별이 태어나고 생명체가 탄생하는 모든 과정에서도 여전히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는 꾸준히 증가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바로 중력 그리고 핵력 덕분이다.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에서 물질을 끌어당기는 두 가지 힘, 중력과 핵력의 노고 덕분에 우주 속 물질이 모이고 뭉치는 과정에서도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마치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는 과정과 같다. 얼핏 보면 어질러진 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건 방 안의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열역학 법칙에 위배되는 과정처럼 보일지 모른다. 물론 국지적으로 보면 침대의 엔트로피가, 책꽂이의 엔트로피가 줄어들 수 있다.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은 『엔드 오브 타임』을 통해 이렇게 국지적으로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과정을 “엔트로피 2단계 과정(entropic two-step)”라고 정의한다. 방을 정리하는 동안 방을 쓸고 닦으면서 발생하는 마찰열, 열심히 방을 정리하느라 몸에서 나오는 뜨거운 체열과 땀, 후끈해진 방 안의 공기로 인해 더 빨라진 공기 분자의 움직임... 이 모든 것은 방이 질서 정연하게 정리되더라도 방이라는 우주의 전체 엔트로피는 결국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하나의 작은 물리계 안에서는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 있지만 결국 그 외부로 방출된 엔트로피 증가량이 감소량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는 아무 문제 없이 계속 커질 수 있다. 결국 내 방이 어지럽혀진 이유는 우주의 엔트로피 탓이 아니다. 그냥 내가 게으른 탓일 뿐이다. 아쉽게도 열역학 제2법칙은 나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 되지 못할 것 같다. 

“엔트로피 2단계 과정”을 통해 우주의 모든 별과 생명체는 유용한 에너지를 활용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며 부산물로 쓸모없는 에너지, 찌꺼기를 뱉어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사실 “똥 만드는 기계”라고 볼 수 있다.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과정에서 앞선 우주가 남긴 그 “똥”을 거름 삼아 그다음 세대의 우주가 성장하며 계속해서 우주의 “엔트로피 2단계 과정”을 밟아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수십 억 년 전 우주에서 중력을 통해 빚어졌던 1세대 별은 중력 수축과 핵융합 반응이라는 “엔트로피 2단계 과정”을 통해 초기 우주에는 없었던 보다 다양하고 무거운 중원소라는 ‘똥’을 남겼다. 이 별들이 남긴 초신성 잔해와 별 먼지들은 이후 다음 세대의 별과 행성이 태어날 수 있는 비옥한 거름이 됐다. 

과거에 존재했던 별들이 미래의 우주를 위한 초신성 잔해, 별 먼지라는 거름을 남겼다면, 지금의 우주를 살아가는 생명이란 존재,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다음의 우주를 위해 대체 어떤 거름을 남기고 있는 걸까? 생명이라는, 인간이라는 이 연약한 초신성만이 남길 수 있는 초신성 잔해는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가 사라진 그 먼 미래의 우주는 우리가 남기게 될 그 양분을 활용해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게 될까? 우주의 다음 세대에 남게 될 유훈이 무엇인지 브라이언 그린이 제시하는 놀라운 스포일러가 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사실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진화”라는 말은 특정한 방향을 내포하지 않는다. 흔히 진화라고 하면 더 복잡하고 뛰어난 쪽으로 나아가는, 진취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즉 진화의 반대말이 퇴화, 퇴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진화는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진화는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설령 시간이 흐르면서 아름다웠던 우주가 해체되고, 생명체가 더 단순해지고 ‘퇴화’하더라도, 생명이 사라지더라도 그것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우주가 변화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 역시 우리는 우주의 진화라고 부를 것이다. 

즉 진화의 반대말은 퇴화, 퇴보가 아니다. 진화의 진짜 반대말은 ‘정체’다. 진화란 우주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이야기해줄 뿐이다. 즉 진화적 관점에선 미래가 과거에 비해 더 뛰어나다고, 과거는 미래에 비해 투박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진화는 그저 과거와 미래가 다르다는 것만 이야기해줄 뿐이다. 



엔드 오브 타임
엔드 오브 타임
브라이언 그린 저 | 박병철 역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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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지웅배(과학 칼럼니스트)

우주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알리는 천문학자. 『썸 타는 천문대』, 『하루종일 우주생각』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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