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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해에도 기억할게

영화 <당신의 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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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의 일상에서 우리는 늘 슬퍼할 수는 없지만, 4월 16일은 매년 돌아온다. 그 슬픔을 다 헤아릴 수 없겠지만 조금 더 다가가면 된다. 그 다음해에도, 그 다음 다음해에도. (2021.04.30)

영화 <당신의 사월> 공식 포스터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어디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막연히 무거운 마음으로 4월 16일을 보내던 내게,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의 사월>은 실마리가 되어 주었다.

다큐멘터리가 사회적 사건을 다루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날의 진실을 추적하고 권력자들을 고발하는 르포,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하며 그들이 겪은 체험을 따라가는 방식 등. 그러나 영화 <당신의 사월>은 사건이 은폐된 현장과 당사자들을 메인으로 하지 않고, 직접 겪지 않았으나 일상에 '세월호'를 기꺼이 접속시킨, 주변의 인물에게 다가간다. 배가 가라앉은 바다보다 광화문 광장, 서촌, 오늘도 그 거리들을 오가는 사람들의 친근한 모습이 더 많이 담기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인터뷰이들의 일상에서 시작하며, 그 일상을 스쳐 지나간 2014년 4월 16일의 기억을 따라간다. 어떻게 당사자가 아님에도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되는지를 지켜본다.

이 영화가 좋았던 건 슬픔과 기억을 '당사자 외에는 접근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변의 인물을 비추는 이 영화는 사건이 공동의 트라우마였음을 짚고 시작한다. 첫 장면에서 제시되는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의 한 구절은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 사건을 간접적으로 목도한 사람들 역시 트라우마를 지닌다는 사실을 알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세월호를 체험한 채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스러운 기억이기 때문에, 그 슬픔으로부터 달아나기도 한다. 물론 매일 슬픔에 빠져 지내는 건 불가능하고, 사건을 겪은 당사자에게 슬퍼하는 모습을 '피해자다움'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감정을 때로는 버거워하고 잊으려 하고, 그것이 좀더 뾰족하게 나아가면 '이제는 잊으라' 하며 혐오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유독 세월호는 슬퍼할 시간에 인색한 사건이었다. 단식 투쟁을 하는 유가족 앞에서 폭식을 하고 온갖 혐오 표현들이 쏟아졌고, 여전히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댓글이 달린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에 비껴 있었던 사람에게 기억의 기회와 방법을 제안하는 이 다큐멘터리가 취하는 방식은 더욱 사려 깊고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 <당신의 사월>의 한 장면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세월호가 자신의 일상을 바꾼 것을 담담히 말한다. 세월호 가족들이 청와대로 행진하는 길목, 우연히 컵라면을 끓일 따뜻한 물을 제공하게 됐던 카페 사장님, 세월호 사건 당시 고등학생이었고 기록보관소 자원봉사를 하며 기록학을 공부하게 된 대학생, 인근 학교에서 세월호에 대한 교육을 계속해가는 교사, 사건 당일 바다에 있었던 어업종사자, 구술기록 봉사에 참여하면서 기쁨과 슬픔을 나눈 분 등. 이들이 많이 받는 질문은 '사건을 직접 겪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기억하려고 하세요'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을 보고 난 후에 그 질문을 이렇게 바꾸고 싶어졌다. 기억하지 않을 방도가 있냐고.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스쳐지나간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며,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기꺼이 기억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어떻게 기억하지 않을 수 있어?'라고 힘주어 다그치기보다, 그날과 그후의 일상을 공유하고 싶다. 그건 가벼운 이야기일수도 한없이 슬픈 이야기일수도, 무기력한 이야기일수도, 무심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각자의 방식이 모여 우리는 매년 돌아오는 4월을 함께 웃고 울며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억만 한다면. 

엔딩크레딧에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다 올라간 후, 마지막으로 뜨는 이름은 '그리고 당신'이다. 결국, 제목 '당신의 사월'에서 '당신'은 복수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우리'에 가깝다. '우리의 사월'을 보는 내내, 작은 상영관 안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현장을 영상으로 송출하기 위해 아이들의 영정사진이 차례로 나가는 것을 찍던 아버지가 결국 돌아서서 울고야 마는 것과 아이들을 기다리는 교실의 짐들이 치워지는 것을 보면서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다들 마스크를 적시면서 숨죽여 울었다. 

그럼에도 다시 영화관 밖 일상으로 나올 때, 막연히 무거웠던 마음에 조금은 힘이 생겼다.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우리는 늘 슬퍼할 수는 없지만, 4월 16일은 매년 돌아온다. 그날을 특히 더 슬퍼할 사람이 있을 것이고, 우리는 그 곁을 함께하면 된다. 그 슬픔을 다 헤아릴 수 없겠지만 조금 더 다가가면 된다. 그 다음해에도, 그 다음 다음해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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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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