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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의 하루] 우리의 죽음 – 김영

에세이스트의 하루 4편 – 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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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있어, 라고 당신은 말하곤 했다. 정확하게는 그런 것 같다고. 그건 아마 죽는 느낌과 비슷할 거라고 당신은 확신을 했다. (20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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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있어, 라고 당신은 말하곤 했다. 정확하게는 그런 것 같다고. 그건 아마 죽는 느낌과 비슷할 거라고 당신은 확신을 했다. 

2월의 춥고 건조한 겨울이었다.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과 달라붙은 머리카락, 어떻게든 고통을 참으려 치아로 꽉 깨문 입술은 허옇게 변해 금방이라도 터져 피가 날 듯했다. 보이는 물건마다 잡으려 안간힘을 쓰던 당신은 자주 괴성을 질렀다. 반나절이나 지속되고 있는 진통 때문이었다. 

시야는 계속해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당신은 쨍한 수술실 조명 때문에 앞이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어지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는 당신의 착각이었다. 당신은 결국 아악- 하고 내지른 비명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열 개의 손가락과 열 개의 발가락 끝에서 피가 주욱 빠져나가는 것만 같은 상태. 당신은 순식간에 처음 느껴보는 모든 종류의 고통과 멀어진 채 땅속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계속, 계속, 아래로, 아래로. 그 세계는 차갑고 서늘하게 추웠으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했다. 그렇게 온통 검은 세상 속에서 홀로였다. 당신은 어두컴컴한 곳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붙잡고 있는 것들을 하나둘 놓치는 느낌을 받았다. 가끔 붙잡고 싶은 것들이 불현듯 떠오를 때마다 안 된다고 발버둥을 치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당신은 이상하게도 점처럼 작아지는 저 자신을 보았다. 분명 어떤 절정의 순간이었는데, 엄청 아팠던 것 같은데, 아, 이렇게 끝이 나는 거구나, 생각했다.

아득히 멀어지는 자신을 보면서 떨리는 눈꺼풀을 덮으려는 순간. 갑자기 훅, 숨이 차오르면서 당신의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기저기서 다급한 소리가 들렸고 당신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그에 부응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힘을 주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없는 힘을 다 내게 했고, 으악- 하는 비명은 까까머리 갓난쟁이였을 나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다.

태몽은 다이아몬드 반지라고 했다. 두 손으로도 들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고모가 당신에게 주는 꿈이었다고, 그 태몽을 꾼 고모가 당신에게 일러주어서 나를 품은 줄 알게 되었다고 당신은 내게 말했다. 큰 사람이 될 거라고 했다. 나의 미래가 궁금하여 보러 간 점집에서, 주인은 내가 나라를 빛낼 사람이라고 좋은 소리를 했다고 당신은 내게 말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리는 사람인지, 훗날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어느 것 하나 확신이 들지 않는다. 당신의 고통에 비하면 아플 것 하나 없는 삶을 살면서도 나는 자주 힘들다고 주저앉아 버리고 있다. 당신의 땀과 눈물에, 부른 배와 부은 다리에 내가 무사할 수 있었음에도 나는 종종 없는 눈물을 펑펑 흘리고 싶고 뱃가죽이 들러붙을 때까지 꼼짝 않고 누워있고만 싶다고 생각을 한다.

바라지 않는 삶이었다고 못된 생각을 하던 찰나, 당신은 내 팔의 맨살을 쓰다듬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바라봤던 그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당신은 내가 웃기만 해도 빛이 난다고 말했다. 내가 날 낳을 때 왜 땅속으로 꺼지는 것 같았냐고 묻자 당신은 모르겠다, 그냥 흙냄새가 났던 것 같아, 라고 대답했다. 당신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나는 당신의 손이 왔다 간 내 팔의 맨살을 보면서,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라도, 무기력한 나날이 반복되고 있을지라도, 언젠가 꼭 당신에게 값비싼 커피를 아까워하지 않고 마실 수 있는 미래를 선물해줘야지, 다짐한다.

나란히 앉은 우리는 죽음을 떠올린다. 동시에 살아있음을, 또 살아가야 함을 느낀다.



*김영 

글을 읽고 쓰며 조금씩 전진하는 대학생입니다. 하던 가락대로 즐거웁게 헤쳐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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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영(나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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