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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써니>, 대중의 유행 코드를 다시금 작동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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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돋는 재미를 선사하는 “걸 파워”에 덧붙여 영화의 시대적 감성을 관통하는 음악은 영화의 화룡점정이라 할 만하다. (2021.08.20)


2008년 822만 관객이 극장을 다녀간 <과속 스캔들>로 대중성을 확보한 감독 강형철의 두 번째 작품. 이 영화 <써니>(2011)로 그는 다시 한번 흥행감독의 면모를 발휘했다. 그야말로 연타석 홈런인 셈. 745만여 명 관객동원이라는 흥행기록이 말해주듯 영화는 대중 친화적인 메시지들로 가득하다.

오래전 학창 시절, 지난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고, 영화 속 내용에 푹 빠지게 하면서 '7080'세대들의 마음을 훔친다. 강형철 감독은 극 중 인물과 설정, 대사 등 여러모로 이전 명화들에서 익숙한 면들을 인용하고, 때론 경의를 표하면서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된 기억들에 접속한다. 영화의 두 중심인물의 이름을 아예 '(임)나미'와 '하춘화'로 설정한 것부터 그러하다.

한국 가요계의 대모 격인 가수들의 이름을 영화의 인물에 접목해냄으로써 영화가 복고적 이미지를 지향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복고풍을 최대한 활용한 이 영화는 이야기의 구성이 최대강점, 그 흐름이 가히 압권이다. 이름만 대면 바로 떠오르는 스타 배우는 없지만, 출연진들의 실감 나는 연기가 매우 구성지다.



'나미' 역의 성인과 어린 시절을 연기한 유호정과 심은경, 춘화 역의 성인 버전과 소녀 버전을 보여준 진희경과 강소라, 이 두 핵심인물을 비롯해 주연과 조연 따질 것 없이 이야기 속 인물과의 매칭이 기막히다. 심은경과 강소라의 연기도 인상적이지만, TV 드라마를 통해 친숙한 유호정과 7공주 '써니'의 영원한 '짱'으로서 오랜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진희경의 호흡은 그 중력을 더한다. 그 외에도 여고 시절과 성인 역을 제각기 소화한 다른 배우들도 예사롭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하긴 마찬가지. 본드 걸 상미 역의 천우희마저 소위 미친 연기로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추억 돋는 재미를 선사하는 “걸 파워”에 덧붙여 영화의 시대적 감성을 관통하는 음악은 영화의 화룡점정이라 할 만하다. 7공주 멤버들의 주제가처럼 영화의 엔딩에 사용된 보니 엠(Boney M.)의 'Sunny'는 단연 최상의 선택. 신나는 디스코 송이지만, 졸업 후 흩어졌던 멤버들이 춘화의 장례식장에 모여, 물심양면으로 서로를 챙기며 정감을 나누는 장면에 이어지는 노래는 극적 감동의 절정을 선사한다. 데모 진압으로 아수라장이 된 극장 앞 쌈박질 장면에 사용된 그룹 조이(Joy)의 'Touch by touch'와 함께 1980년대 유로 디스코(Euro Disco)의 향수를 불러내는 선곡, 당시 롤러스케이트장 최고 인기곡의 감흥이 여전하다.


춘화의 유언으로 보니 엠(Boney M.)의 'Sunny'에 맞춰 다함께 춤을 추는 장면


데모 진압 장면

신나는 유로 디스코 송의 여세를 몰아 나미의 로맨스를 대변하는 1980년 <라붐>(La Boum)의 주제가 'Reality'(현실), 마돈나(Madonna)와 함께 1980년대 여성 팝의 경쟁 구도를 형성한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Time after time'(시간이 흘러도 계속해서)과 'Girls just want to have fun'(여자애들은 그냥 재밌게 놀고 싶어요) 등, 친 라디오 성향의 올드 팝송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돼 그때 그 시절로의 회춘을 거든다. 참고로 신디 로퍼의 '타임 애프터 타임'은 턱 앤 패티(Tuck & Patti)의 가창과 반주로 영화의 도입부에 사용되었고, 종영인물자막(End Credits)과 더불어 나오면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나미의 '빙글빙글'과 '보이네', 조덕배의 '꿈에', 마그마의 '알 수 없어',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과 같이 1980년대를 수놓은 우리 가요들의 등장도 여고시절의 향수를 불러내는 선곡, 팝송 팬과 가요 팬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준다. 특히 '나가수'나 '불후의 명곡' 등 세대를 아우르는 TV 예능프로그램들에 익숙한 대중들의 감성을 파고들기에 충분한 포석이다.

<말죽거리 잔혹사>(2004), <클래식>(2003)과 같은 전례에 비춰, <써니> 성공의 1등 공신이 탁월한 음악 선곡에 있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과속스캔들>에 이어 음악을 연출한 김준석 음악감독의 공이 크지만, 그 공력을 자신의 시각적 연출 안에서 발휘할 수 있게 한 강형철 영화감독의 극적 통찰력에 더 무게가 실린다.



지난 시대를 관통한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와 대중의 유행 코드를 대중의 기억 속에 다시금 작동하게 한 영화 그리고 음악, 둘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긴밀하냐에 따라 흥행력 폭발과 복고 열풍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영화 <써니>는 음악으로 입증했다. 그리고 이후 <응답하라> 시리즈와 2010년대 후반부터 뉴트로(Newtro=New Retro) 또는 신복고 유행 현상을 배태하기까지, 그 중심에 <써니>의 여파가 공존하고 있음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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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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