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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본 TV] 삶과 죽음에 대해 질문하는 드라마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

드라마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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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말하는 일은 참 요상하다. 하고픈 말이 가득 찼을 때도, 다 말라버렸을 때도, 마음껏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죽음에 대해 말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아직 죽음이 멀리 있다고 느낄 때'다. (2022.09.08)


나이가 들수록 부고를 접하는 일이 많아진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내가 어른이 되어서 그런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아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죽음을 경험하는 일이 쌓여간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면,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지 죽는 일은 일상다반사라는 것. 그에 더해 '죽음을 말하는 일이 참 요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삶에 죽음이 침습해올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그 두 글자를 떠올리기만 해도 성큼 다가와서 달라붙을 것 같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죽음이 비켜 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지기도 한다. 그때는 몸 안에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고인다. 자꾸자꾸 차올라서 퍼내지 않으면 질식할 것만 같다. 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한없이 말하고 싶다. 내가 경험한 상실에 대해, 아픔에 대해, 두려움에 대해. 그러나 죽음의 이야기를 달가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달갑지는 않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줄 사람도 적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지난 뒤에, 죽음의 기억이 흐릿해져 갈 때, 그때는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마치 간신히 빠져나온 구덩이가 여전히 등 뒤에 있는 것처럼 절대 뒤돌아보기 싫었다. 사실 이건, 다 개인적인 이야기다.

다시 말하지만 죽음을 말하는 일은 참 요상하다. 하고픈 말이 가득 찼을 때도, 다 말라버렸을 때도, 마음껏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죽음에 대해 말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아직 죽음이 멀리 있다고 느낄 때'다. 한 마디로 '평소에'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때를 놓친다. 드라마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에 관해 쓰는 이유다.

첫 화면을 채운 건 다음의 짧은 글귀였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보고 싶어..." 

시한부 환자 이송 중 그의 마지막 소원을 들은 네덜란드 구급차 운전자 키스 벨드보어는 곧바로 바다로 향했다. 

그는 은퇴 후 2007년, 앰뷸런스 소원 재단(Ambulance Wish Foundation)을 설립하고 수많은 환자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있다. 

드라마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은 네덜란드에 실재하는 '앰뷸런스 소원 재단'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어졌다. (2021년 한국에도 '앰뷸런스 소원 재단'이 창립됐다) 작품의 배경은 '우리 호스피스 병원'으로 이곳에는 환자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팀 지니'다. 삶에 미련이 없는 청년 '윤겨레'(지창욱)는 교도소에서 출소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호스피스 병원에서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는다. 그는 팀 지니를 도와 환자들의 소원을 이뤄주면서 '죽기 전에 한 번은 행복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은 강추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소원 앰뷸런스'라는 소재는 참신하지만 전개 과정에서 작위적인 부분들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회차를 더해가면서 비중이 늘어가는 '하준경(원지안)'의 서사가 작품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반가웠다. 이야기가 품고 있는 삶과 죽음에 관한 화두 때문이다. 한 번쯤 품어봐야 할 질문들, 하지만 자주 접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지기 때문이다. 

끝까지 묵직하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생의 끝에서 이루고 싶은 소원은 무엇일까. 나는 그리고 내 곁의 사람들은 무엇을 간절히 바라게 될까.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이 보여주는 것이 정답은 아닐 테지만 많은 보기들 중 일부일 수는 있을 것 같다. 인물들이 마지막까지 원한 건, 그리워하거나 꿈꾸거나 이어가고 싶은 순간들에 머무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또 다른 질문을 안겨준다. 살아가는 동안 지켜야 하는 것과 놓아버려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만 생각하다 불현듯 깨닫는다. 그게 참... 별것 아니구나. 

죽음은 항상 침묵으로써 우리를 깨우친다. 먼저 떠나간 이들은 소리 없이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말한다. 죽음 그 자체로 '나의 생이 그러했듯 너의 생에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의 가르침을 애써 잊는다. 혹은 시간에 묻히기를 바라며 짐짓 모른 체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더 많은 죽음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잘 죽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곧 잘 사는 방법을 찾는 길이니까.


시청 포인트

# 힐링 드라마가 필요하다면 추천합니다 

# 잘 죽기 위해 잘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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