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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 글쓰기에 관한 세 가지 오해 (1)

'문지혁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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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예술이기 이전에 기술입니다. 원칙과 규칙을 지니고, 훈련과 연습을 필요로 하며, 처음 하는 사람과 숙달된 사람의 결과물이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글쓰기는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2023.06.08)


격주 목요일, <채널예스>에서
소설가 문지혁의 에세이 ‘소설 쓰고 앉아 있네’를 연재합니다.


언스플래쉬

우리는 지금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무언가를 알아가려고 할 때 보통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된 접근법을 사용합니다. 하나는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A는 무엇이다. 흔히 사전에 쓰이는 방식이죠.



글쓰기


[명사] 생각이나 사실따위를 글로 써서 표현하는 일.



이 방식은 쉽고 분명한 장점을 지닙니다. 하지만 동시에 빈틈이 없고 일방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죠.

그렇다면 다른 방식은 뭘까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A는 무엇이 아니다. 귀납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고, 소거법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가능한 실수, 오해, 오답, 시행착오들을 따라가면서 올바른 정의에 도달하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 같지만, 연역적이고 사전적인 방식보다 더 풍부하고 깊은 이해를 돕는 장점을 지닙니다.

오늘 우리는 두 번째 방식으로 글쓰기를 알아보겠습니다. 질문을 바꿔보죠. 글쓰기란 무엇이 아닐까요?


글쓰기는 예술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래된 오해를 하나 꼽아보자면 아마도 이 문장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Life is short, art is long)

이 말을 한 사람, 정확히는 이 문장을 책에 쓴 사람은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입니다. 그가 쓴 <잠언집(Aphorisms)> 서두에 나와 있지요.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왜 하필 예술을 두고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그것은 여기서의 아트(art)가 예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히포크라테스는 눈앞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는 모습을 의사로서 고통스럽게 보아야만 했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인생이란 덧없고 짧은 것이었어요. 소중한 생명들이 너무 쉽게 죽어갔죠. 그러나 이들을 살리기 위해 의사로서 배워야 하는 기술(art)은 너무 많았습니다.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멀고 길었죠. '아트'가 지닌 두 가지 뜻이 이 오해의 원인입니다. 다시 말해 여기서의 아트는 예술이 아닌 기술, 정확히는 의술인 것이죠.

이걸 글쓰기에 적용해 볼까요? 글쓰기는 아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아트는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에요. 글쓰기는 예술이기 이전에 기술입니다. 원칙과 규칙을 지니고, 훈련과 연습을 필요로 하며, 처음 하는 사람과 숙달된 사람의 결과물이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글쓰기는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잘 쓴 신문 기사나 문학 작품, 혹은 연설문이나 설명서라면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한글을 처음 배운 어린이가 쓴 글은요? 아무렇게나 메모한 글은요?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보내는 문자와 카톡은요? 어떤 글쓰기가 기술인 것은 맞지만 모든 글이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글쓰기의 본질이 조금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해요.

글쓰기는 노동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우리가 쓰는 모든 글에는 어떤 노동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게 종이든 수첩이든 벽이든 스크린이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쓰는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글쓰기는 예술이고, 어떤 글쓰기는 기술이지만, 모든 글쓰기는 노동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말로 글쓰기 전체를 부를 수는 없을 거예요.

다만 한 가지,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글쓰기에서의 이 노동-기술-예술의 층위는 계단식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모든 글쓰기는 노동이지만 거기서 잘 쓰면 기술이 되고 더 잘 쓰면 예술이 되는 그런 식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만 예술적인 가치가 없는 글도 있을 수 있고(전자 제품 설명서), 예술적인 가치는 있지만 기술적으로 구멍이 나 있는 글(문학)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평생 다리가 네 개인 의자를 만들어온 사람을 가리켜 장인(匠人)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의자가 박물관에 전시되는 예술 작품이 되지는 않아요. 예술이 되려면 기본적인 노동과 기술에 어떤 마법적인 순간이 더해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다리가 열일곱 개인 의자를 만드는 것처럼요.


글쓰기는 재능이다?

또 다른 오해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글쓰기에 관한 두 번째 오해는 글쓰기가 재능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아마 자라오면서 이런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걔는 참 글쓰기에 재능이 있어.', '쟤는 왜 이렇게 글 쓰는 재주가 없을까?' 때로는 칭찬으로, 때로는 상처로 다가왔을 이 말들의 공통점은 바로 재능의 관점에서 글쓰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 들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좀 억울하지 않던가요?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누가 글쓰기를 제대로 가르쳐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국어도 배웠고 문학도 배웠지만 그건 글쓰기 자체가 아니죠. 정확하게 '글쓰기'만을 배운 적은 없어요. 단지 우리가 언어를 읽고 쓸 수 있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글을 쓰라고 요구받았던 거죠. 그래놓고서 그 결과물을 가지고 평가하는 겁니다. 너는 재능이 있구나. 너는 없고.

상황을 바꾸어보면 이해가 더 쉽습니다. 어느 날 누가 여러분에게 나타나 바이올린을 건네줍니다. 그리고 연주해 보라고 하는 거죠. 연주할 수 있을까요? 아마 대부분은 제대로 소리 내기도 어려울 겁니다. 당연하죠. 우리는 이 악기를 지금 처음 만져봤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악기를 건네준 사람이 '당신은 바이올린에 참 재능이 없군요'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납득할 수 있을까요?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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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지혁

2010년 단편소설 「체이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중급 한국어』 『초급 한국어』 『비블리온』 『P의 도시』 『체이서』, 소설집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사자와의 이틀 밤』 등을 썼고 『라이팅 픽션』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등을 번역했다. 대학에서 글쓰기와 소설 창작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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