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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북커버러버] 얼굴이 나오는 표지 - 『아몬드』

8화 - 『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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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세 개의 버전이 동시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 버전 중에 나는 어떤 책을 집어들었을까? 답은 2번. 나는 뒷모습이 좋다. 기술이 좀 더 발전하면 이런 방식의 책표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뒷모습이었던 책표지의 인물은, 독자가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서서히 구체적인 인물로 변해간다. (2023.08.10)


격주 목요일, 소설가 김중혁이 좋아하는 북커버를 소개하는 칼럼
‘김중혁의 북커버러버’를 연재합니다.


『아몬드』 책표지

새 소설을 준비할 때면 등장인물들의 얼굴부터 그려본다. 나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생겼을까?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써 나가는 것만큼이나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건 힘든 일이다. 정성껏 그리고 나면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 것 같다. 소설을 써 나가는 동안 그림은 계속 수정된다. 이야기에 따라 표정이 변한다. 대사에 따라 생김새가 변하기도 한다. 소설이 완성될 때쯤이면 더이상 등장인물의 얼굴은 필요 없다. 소설의 문장에 주인공의 얼굴과 표정과 감정과 주름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대신 실제 배우들의 사진을 이용한 적도 있다. 인물 관계도에다 배우들의 사진을 붙여둔다. 가상 캐스팅을 통해 캐릭터에 딱 맞는 배우를 선택하면 이야기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내가 잘 아는 배우들의 모습이 소설 속으로 고스란히 들어온다. 단점도 있다. 너무 선명해서 상상력이 치고 들어가야 할 영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완성된 책을 읽는 사람은 배우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하겠지만 소설을 쓰고 있는 내 눈앞에 배우들이 자꾸 어른거린다. 아, 진짜, 중간에 캐스팅을 바꿀 수도 없고, 내가 소설을 쓰는 동안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을 한 배우에게 소송을 걸 수도 없고..., 이래저래 고충이 많은 방법이다.

북커버를 대할 때의 내 마음도 비슷하다. 주인공의 얼굴이 커다랗게 그려진 표지나 배우의 사진이 적나라하게 인쇄된 표지(대체로 영화의 원작 소설인 경우가 많다)를 보면 책을 집어들기가 망설여진다. 소설을 읽는 내내 표지의 얼굴 표정이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더 고약한 것은 얼굴의 특정 부분을 클로즈업한 사진이다. 주인공을 떠올리면 입술만 생각난다거나 목덜미나 속눈썹만 기억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 뒷모습이 낫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출판사에는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소문이 하나 있다. 북커버에 사람의 뒷모습이 등장하면 독자들도 돌아서 가버린다는 말이다. 비슷한 얘기가 하나 더 있는데, 표지에 사람 얼굴을 실을 거면 정면을 응시하게 하라는 것이다. 표지의 주인공이여, 하늘을 지그시 올려다보거나 눈을 아래로 내리깔지 말고, 정면을 응시하라. 정면을 응시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에밀리 M. 댄포스의 『사라지지 않는 여름』의 표지 그림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어쩐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고, 앤디 위어의 『마션』의 정면 얼굴은 단순한 선만으로 이뤄져 주인공의 당혹스러움이 느껴지고,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는 무서운 눈이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어서 시선을 피하게 된다. 어떤 모습이든 서점 매대에 깔린 책을 구경하는 독자의 눈과 마주치게 하여 구매 의욕을 고취하라는 얘기일 것이다.



이런 소문들은 대체로 '이러쿵저러쿵 그럴 수도 아닐 수도 그럼 좋고 아님 말고 헛소문 클럽'의 회원들이 심심할 때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재미삼아 얘기할 수는 있어도 믿을 필요는 없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뒷모습에 그림자까지 그려져 있는데 100만 부 넘게 팔렸다.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는 얼굴을 감춘 옆모습만으로 수많은 독자의 선택을 받았다.



물론, 표지의 인물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어서 눈길을 피하기 힘든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도 100만 부 넘게 팔렸다. 『아몬드』의 북커버를 보면서 '이런 식이라면 사람의 얼굴 그림을 넣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야기와 표지 그림이 몹시 찰떡이어서 떼어놓기가 힘들다. 정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 곳도 보지 않는 것 같기도 한 그림은,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긴다. 대체로 사람의 눈동자를 그릴 때면 빛이 반사된 하얀 점을 그리게 마련인데, 『아몬드』에는 빛 반사가 없다. 소설 속 주인공은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데, 모든 빛이 소멸되고 마는 어둠 속에 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얼마 전 『아몬드』는 새로운 출판사에서 새로운 표지로 재출간됐다. 붉은 피부에 머리카락이 삐쭉빼쭉 튀어나와 있는 사람의 뒷모습 그림이 표지에 담겼다. 청소년판 『아몬드』의 표지는 옆모습의 실루엣 그림이다. 나중에는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로 주인공 윤재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은 아닐까 기대하게 된다. 만약 세 개의 버전이 동시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 버전 중에 나는 어떤 책을 집어들었을까? 

답은 2번. 나는 뒷모습이 좋다.

기술이 좀 더 발전하면 이런 방식의 책표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뒷모습이었던 책표지의 인물은, 독자가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서서히 구체적인 인물로 변해간다. 책표지의 인물이 고개를 조금씩 돌리면서 앞모습을 보여준다. 독자가 책을 통해 얻게 된 정보가 그림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뒷모습이었던 책표지는 자신만의 주인공 그림으로 변하고,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책이 된다. 이름하여 '내 표지는 내가 직접 만들어요, 끝까지 책을 다 읽어야 표지의 그림을 확인할 수 있어요' 에디션이다. 그 정도의 기술력이 힘든 것이라면 그냥 책표지를 비워둔 상태로 출간하여 독자가 책을 다 읽은 다음 직접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좋겠고.



사라지지 않는 여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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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중혁(소설가)

소설 쓰고 산문도 쓰고 칼럼도 쓴다. 『스마일』,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뭐라도 되겠지』, 『메이드 인 공장』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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