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나겠다고? -『태양, 바람 그리고 사막』김영주
지난 7월 21일 홍대에 위치한 ‘더 갤러리’.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네바다, 캘리포니아를 가로지르고 돌아온 ‘머무는 여행자’ 김영주를 만났다.
201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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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고 길 위를 달리고 돌아온 저자는 또 다시 새로운 길 위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일까. 저자는 지금 여기에 있는 독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했다. 도시에 사는 이 분들이 어떻게 자신의 여행서적을 찾아 읽고 이렇게 홍대까지 왔는지. 그러나 조명은 저자 쪽으로 향했고, 많은 물음이 차곡차곡 그녀 앞으로 쌓였다. 저자의 바람과는 달리 독자가 묻고 저자가 답했다.
나는 사막에 갔고 그곳에서 자신을 만났다. 메말라 버린 황무지에서 생명을 보았다. 지평선이 훤하게 드러난 벌판에서 인내를 배웠다. 비워진 땅은 삶의 섭리를 노래하고 야생의 자연은 세상의 이치를 일깨워 주었다. 그곳에서 인생의 한편을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태양 빛을 쏘이며 하루를 열고, 별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이들이 있었다. (p.12)
이번 여행이 그 동안의 여행과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나이 오십이 넘어가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더라고요. 세상을 보는 가치와 척도가 확 달라졌어요. 항상 무언가를 보고 두근거리고 에너지가 솟는 그런 것들이 있었어요. 영화를 봐도, 음악을 들어도 깊은 진동을 느끼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요즘 영화가 재미없고, 음악이 별로인가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제가 변한 거였죠. 머무는 여행이 아닌 길 위의 여행을 하게 된 계기였어요. 이번 여행으로 다시 두근거림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하자면, 가장 화끈한 여행이었죠. 길이 저에게 주었던 화끈한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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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해주신다면.
“먼저 말씀드릴 점은 이 책은 여행지에 대한 소개는 배제하였어요. 과정에 대한 여행서입니다. 여행지에 대한 소개가 별로 없는 책이니 사놓고 후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미국 서부의 여섯 개 주를 가는 여정입니다. 미국이 대공황 때 캘리포니아를 향해 가던 꿈의 길을 따라갔다고 할 수 있겠어요.”
프롤로그에는 치밀한 계획과 우연한 동기가 함께한 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계획이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적도 있었을 거 같은데요.
“너무 많습니다. 저는 떠나기 전에 무지하게 준비를 하는 사람이에요. 오랫동안 잡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한 달 마감이라는 속성이 베어서 구간마다 생각을 하고 계획을 합니다. 밥을 몇 시에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도 미리 계획할 만큼. 그러나 항상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반도 맞지 않는 게 여행인 거 같아요. 이제 그걸 알죠. 저는 여행을 세 번 간다고 생각해요. 떠나기 전에 한 번, 떠나서 한 번, 그리고 다녀온 뒤에 한 번.”
보통 직장인들이 직장을 관두고 여행을 가야지라는 생각을 부지기수로 하죠. 저자 분은 그러한 생각을 실행에 옮긴 케이스인데 그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 인가요.
“요즘 출판사에 투고된 원고의 상당수가 여행기라고 하더라고요. 첫 문장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나는 나이 서른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났다’ 나이 서른에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렇게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런 마음이라면, 현실을 등지고 여행을 가려면 손에 쥐고 있는 걸 잃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그 각오가 되어 있는지 물어야 하죠. 그리고 지금 그걸 꼭 놓아야 하는지를 물어야 하고요. 아시다시피 사는 게 녹녹하지 않잖아요. 특히 회사를 다니시는 분들, 짜증나는 상황과 불편한 관계가 얼마나 많으시겠어요. 그 상황을 여행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심신이 가장 편하고, 안정적일 때 버리고 여행을 떠나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의 경우는 마흔 다섯이 되어서, 이제 원 없이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두었어요. 아마 ‘버리는 순간’은 본인이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참아낼 수 있는 순간인지, 참아낼 수 없는 순간인지를 판가름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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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언어문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언어는 여행에 있어서 어떤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여행을 가는 것이지, 이민을 가는 게 아니니까요. 우리가 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말을 못해 고생은 할지언정 창피한 건 아닙니다. 여행객이기 때문이죠. 젊음은 언제 어디서나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데스벨리에 갔을 때 가장 감동을 받긴 했었어요. 당시에는 여러 명이 같이 갔었고, 남자들이 운전을 했었죠. 동행자가 있으면 있는 대로 좋고, 또 누군가 운전을 해주면 그대로 좋았습니다. 그런데 신기 한 건, 혼자 다닐 때는 두려움이 있는데 두려운 만큼 미묘한 흥분과 즐거움이 있어요.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거나 해봤을 거라 생각합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저자에게 여행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금 전까지 다음 여행지인 이탈리아의 여정을 꿈꾸면서 어떻게 하면 싸고 좋은 숙소를 구할까 알아보았어요(웃음). 저의 고민은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기도 해요. 점점 시력이 안 좋아져요. 스마트폰으로 문자메시지 주고받는 것도 힘들고(웃음), 체력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몸과 마음이 여행지를 돌아다니고 다녀와서 책을 쓸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하려고 합니다. 저의 원초적인 고민은 이 다음에 뭘 할까이죠. 직장을 다닐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해야지, 때려 치워야지. 하고 싶은 거 하면 행복하겠지, 생각했었죠. 그런데 그 이후의 고민이 더 힘들어요. 원하는 걸 찾아가야 되는데. 감동적인 영화가 줄어들듯. 이 다음은 뭘까,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이 한 말이 있어요. ‘여행은 삶을 해결하는 전략이다’라고 여행을 정의 했더라고요. 맞아요. 여행은, 제 삶을 풀어가는 방법이죠. 하루키는 여행을 다니고 왔는데 달라진 게 없다, 는 것 때문에 고민을 했었다고 해요. 한참 고민 후에 결론을 얻었죠. ‘더 나빠지지가 않았다’ 지금 그대로, 더 나빠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여행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여행에 대해 너무 기대하시지 마세요. 여행은 삶을 해결하는 전략이긴 하나 그 것이 전부 다는 아닙니다. 저에게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삶의 도구입니다.”
마음의 고향지로 삼고 있는 여행지가 있다면 어디인가요.
“이번 책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산타모니카. 그리고 뉴욕이에요.장소가 특별해서라기보다 장소에서 쌓았던 기억이나 추억이 묶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죠. 그래도 가장 좋은 곳은 서울인 거 같아요. 서울에 올 때 가장 좋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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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정은 어떻게 잡으시나요.
“매번 달라요. 하지만 이번 ‘길 위의 여행’만큼은 일정을 정했어요. 사전 답사를 배제하고 첫 느낌을 담으려고 했어요. 4주에서 5주로 잡았죠. 일반적인 여행을 기준으로 말씀 드리면, 장소와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일주일 가지고 뭐 되겠어, 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석 달 다녀와도 아무 기억 없는 경우도 있고 하루를 다녀와도 두고두고 생각나고 가치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행의 특별함이죠. 기억과 상상. 가장 중요한 건, 자기가 왜 가느냐, 어떻게 가느냐, 인 거 같아요. 여행은 사가지고 올 수 없으니까요.”
여행지에서 일정이 바뀌기도 하나요.
“물론입니다. 여행에 가장 큰 적은 몸이 아픈 때죠. 여행은 예측할 수가 없어요. 그것마저도 받아들이는 것이 여행 일정이 되어야 하죠.”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여행을 떠나세요(청중 웃음).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에는 한동안 매니저에 가까운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풀 메이크업을 하고 반듯하게 옷을 챙겨 입어야 했죠. 여행을 시작하면서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맨 얼굴로 다니면 피부가 좋아지더라고요. 다른 게 필요 없었습니다. 여행을 다니면, 땀을 많이 흘리게 되니 그런 게 효과적이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웃음).”
여행 가방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꾸릴 수 있을까요?
“화장품은 평소에 샘플을 모아두었다가 여행갈 때 활용하면 좋아요. 무게와 부피를 줄일 수 있는 걸 고민하고, 트렁크는 하드케이스는 좋지 않습니다. 구겨서 쓸 수 있는 게 좋죠. 일주일 이상 갈 경우라면 짐을 가방 몇 개에 나눠가지고 가세요. 잘 마르는 셔츠, 가벼운 옷이 좋습니다. 필수품이 몇 개 있는데, 젓가락과 나침반, 손전등이에요. 꼭 오지가 아니더라도 필요해요. 비닐 지퍼백은 굉장히 유용합니다. 다양한 크기로 챙겨 가면 좋아요. 여행을 처음 할 때는 신발 문제를 겪지 않은 분들이 없죠. 특히 유럽에 가면 정말 많이 걷게 됩니다. 트래킹 신발을 신는 게 좋아요. 가벼워야 하죠. 도시에서는 되도록 배낭을 메지 않는 게 좋습니다. 크로스 가방을 품에 안고 다니는 게 좋아요. 이렇게 말로 하는 것보다 여행을 하면서 스스로 터득을 해야만 기억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사막과 벌판과 바위산과 계곡, 인디언 마을과 선인장과 모래언덕을 지나, 태양과 구름과 비와 바람을 따라 달려온 4천 킬로미터의 기록. 누군가에게는 사소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지구 한 바퀴를 돌아온 것만큼이나 뿌듯한 숫자다. 나만의 역사이자 나를 위한 인내였다. 영영 꿈의 세상에서 머무를 뻔했던 길 위의 여행이 온전히 내 삶으로 들어온 순간이었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실컷 누리고 싶다. 나에게 축하를 보내고 싶다.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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