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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원작으로 한 영화 <화차>가 좋은 반응을 얻으며 극장가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변영주 감독, 이선균, 김민희, 조성하가 주연한 영화 <화차>는 속도감 있는 전개로 긴장감을 잘 살린 스릴러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영화로 7년 만에 관객을 만나고 있는 변영주 감독을 향한 관심도 이어지고 있다. <낮은 목소리> <밀애> <발레교습소>를 연출한 변영주 감독은 영화 개봉 이후 예능 프로그램 등에 출연해 영화와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걱정하지 마, 잘 안될 거야. 설사 안 되더라도 나한테 부끄럽지 않게, 내가 좋아하는 일 하다 망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자. 좋아하는 일 만큼은 완전연소하자.(KBS 이야기쇼 <두드림> 중)”는 메시지로 청춘을 격려했다. 때론 무심해 보일 만큼 겸허하지만, 애정을 가진 대상을 향해서는 단단한 열정을 보여주는 변영주 감독의 매력적인 모습은, 영화 <화차>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비가 오는 저녁, 압구정 CGV에서 변영주 감독과 CBS 정혜윤 피디가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이렇게 비 오는 밤, 오늘처럼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좋은 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로 이날의 대화가 시작됐다.
휴게실에서 갑자기 사라진 약혼녀 선영(김민희 분). 그녀를 찾는 문호(이선균 분)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가 선영에 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과연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왜 달아났을까? 문호는 관객을 이끌고 그녀를 향해, 비밀을 향해 달려간다.
정혜윤 피디는 대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관객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제 우리는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겼을 때, 전당포에 가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갖고 싶은 걸 가질 수 있나요? 행복해지고 싶어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억울한 일을 당해서 벗어나고 싶어요. 복수를 꿈꾸는데, 이런 얘기를 털어놓고 말할 사람이 있나요? 이 질문들에 각자 마음속으로 답해보고 이야기를 나눠봐요.”
“원작 보고, 혼마 형사 제일 먼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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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이하 ‘정’): “7년 만에 영화 만들었는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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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이하 ‘변’): “<발레 교습소>가 2004년 12월 말에 개봉했고, 다음 해 4월까지는 ‘멘붕’상태였어요. <발레 교습소>의 주연이었던 윤계상이 개봉 날 군대에 갔어요. 훈련소 있다가 최전방 GP 수색대로 배치됐는데, 이 친구가 어느 날 두툼한 군사우편을 보내왔어요. 화장실 불빛에 의지해 몰래 쓴 편지였어요. 영화를 촬영하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20여 장에 다다르는 편지를 읽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어찌됐건 영화를 만들고 얻은 손톱만 한 성공과 허벅지만 한 실패는 나의 몫인데, 이 배우는 나 때문에 더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군대에 갔구나 싶어서요. 공부하고 싶다,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 무렵 저도 마흔 살이 됐어요. 그러다 일본 소설 『화차』를 영화로 만들려는 팀에서 제안이 왔고, 3년의 시나리오 작업, 2년의 투자와 캐스팅 작업을 걸쳐 영화를 만들었어요.” -
정: “『화차』를 왜 영화로 만들고 싶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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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저는 화차를 이렇게 읽었어요. 어떤 여성이 자기하고 비슷한 처지의 다른 여성에게 ‘너 힘들지, 내가 옆에 있어줄게.’하고 그녀를 먹어버리는 얘기라고요. 거기에서 오는 비애, 서글픔에 매료됐어요. 여성의 욕망이 스스로 주체화되면서 벌어지는 범죄. 그 냄새를 가장 가져오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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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원작에서는 혼마 형사가 주인공인데, 영화에서는 문호가 사건을 이끌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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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원작을 영화화하면서 제일 먼저 버린 것은 주인공 혼마 형사였어요. 버블 경제 붕괴라는 일본 안에서의 상황에서만 현실성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거든요. 소비가 미덕이라는 게 한순간 무너져버린 일본 사람들을 대변하는, 성찰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이죠. 하지만 우리나라로 배경을 옮겼을 때, 사진 한 장만으로 그 사람이 누군가를 찾는다는 설정이 설득력이 약하다고 생각했고요.”
그저 사람들 속에 섞여 살고 싶었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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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문호는 자기가 알던 여자가 아닌데도 선영을 계속 사랑합니다. 문호의 사랑관에 관해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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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선영에게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느냐고 물었을 때 ‘남들처럼 사랑하고 행복하고 싶어서’라고 말하잖아요. 문호로서는 그 행복한 얼굴을 봤잖아요. 그런데 ‘고작 그건가, 그 얼굴을 원해서 괴물이 된 건가’ 싶었을 거예요. 문호가 선영을 해석해주는 게 아니라, 함께 그녀를 체험해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왜 이 남자는 이렇게 행동했을까? 마지막에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런 건 이선균과 의논해가면서 만들어진 부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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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소설 『화차』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말이 행복입니다. ‘행복해지고 싶어요’의 행복이란,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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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마지막 장면에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텐데, 카인과 아벨에서 카인을 예로 들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상 밖으로 쫓겨났지만, 세상 안으로 들어오고 싶었다.
사람들 안에 섞여 있고 싶었다는 거죠. 잘 살고 못살고가 아니라 그저 사람들 안에 섞여 살고 싶었다는 게 아닐까. 민희에게 연기를 디렉팅 할때는 ‘연기를 하지 말고, 그저 마음속에서 죄의식을 품어보면 어떠니?’라고 얘기했어요. -
정: “두 배우와의 작업은 어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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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민희씨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정말 얼굴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클로즈업한 얼굴조차도 이 얼굴을 다 본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녀는 단절된 감정을 연기해야 했는데도 언제나 저를 믿어주어서 즐겁게 작업했고, 털털한 스타일 때문에 모든 스텝이 ‘우리는 김민희를 좋아해’라는 분위기였고요.
조성하 씨는 저와 동갑인데, 정말 예쁘게 생긴 얼굴이에요. 선영을 이해할 것 같은 남자로 만들고 싶어서, 분장팀에게 붕괴된 남자의 얼굴을 요구했죠. 예전에 노숙자 역할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얼굴이 후져졌다고.(웃음) 제일 먼저 캐스팅이 됐던 선균씨는 이 영화를 만든 동지나 마찬가지였어요. 6개월 동안 변영주라는 감독의 신용 때문에 투자가 되지 않을 때도 기다려줬고, 극 중에서는 관객들의 손을 잡고 가는 위험한 역할인데 저 개인적으로는 정말 잘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요.”
“뱀은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실은 목숨 걸고 하는 거래요. 그러니 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하겠죠. 그런데도 허물을 벗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목숨 걸고 몇 번이고 죽어라 허물을 벗다보면 언젠가 다리가 나올 거라 믿기 때문이래요. 이번에는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 하면서.” (소설 『화차』 본문 중) | ||
“각자의 게임값을 어떻게 물 것인가”
이어 관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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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1: “첫 장면에서 강물 등 자연 풍경이 많이 나옵니다.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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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토막 난 시체가 나올 영화잖아요. 바람, 강물 풍경 등 너무나 일상적인 공간에 무언인가 숨어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걸 당신들은 이제 발견하게 될 거야, 이런 느낌이었고요. 촬영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어떤 느낌의 영화를 원하느냐고 했을 때 “뜨겁고 축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저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런 습한 느낌을 담으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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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2: “백화점에서 선영이 강선영의 환영을 보는데, 강선영이 웃고 있었어요. 원망스러운 표정일 것 같았는데 웃고 있어서 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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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강선영 역의 차수연 씨에게 이렇게 연기 디렉션을 했어요. ‘너 이제 끝장났어. 이리와. 이런 느낌을 보여줘.’(웃음) 배우에겐 가장 유치하고 천박하고 명백하게 디렉션 합니다. ‘언니, 이리와.’ 이런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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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3: “저 예산인데 규모가 매우 큰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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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순수 제작비가 16억밖에 안됩니다. 기가 막히게 찍지 않았습니까?(웃음) 이 영화를 가능하게 했던 첫 번째 이유는 세 명의 배우입니다. 개런티를 깎아줬고, 헤드 스텝들이 도와줬고, 다들 기가 막히게 자기 역할을 해줬고요. <밀애> <발레 제작소> 작업보다도 적은 제작비였고, 이제까지의 동지들과 작업하는 기분이었어요. 촬영, 녹음, 미술감독 모두 마지막 촬영 끝내고 종신 계약서를 돌렸어요. 저예산 느낌을 받지 않으셨다면 100퍼센트 이 친구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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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4: “영화 속에서 용산이 많이 등장하는데, 굳이 그 동네에서 촬영한 건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낸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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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서울 로케이션을 결정할 때, 사람들이 지나가는 공간, 머무르지 않고 지나가는 공간을 찾으려고 했어요. 영화 내용상 함평에 가려면 용산역이어야 했고요. 또 백화점이라는 공간과 역이라는 공간이 동시에 있는 곳에서 찍고 싶었어요. 선영의 환영이 옷 매장의 마네킹같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용산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2012년의 운명이다, 라는 생각도 고집스럽게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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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5: “인물 각자의 욕망을 표현하려고 한 영화 같습니다. 이들 욕망에 관한 감독님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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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모두들 각자 잘못된 한 발을 내딛는다. 이 게임 값을 어떻게 물 것인가? 문호는 찾지 말아야 할 것 찾으면서 멘탈 붕괴에 빠지고. 경선이는 자기의 게임 값을 치르죠. 각자 물기로 한 게임값에 관한 이야기. 물론 어떤 의도된 메시지도 없어요. 관객들이 보는 대로 읽히는 거죠. 다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있어요. 서늘한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 매일 겪는 일상. 매일 지나다니는 동네가 갑자기 서늘하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그다음에 어떤 길을 가느냐는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몰라서 변하지 않는 게 아니라 무관심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화차> 변영주 감독(좌)과 원작자 미야베 미유키 (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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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6: “이 영화에서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된 건 사채인데, 거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미진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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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알고 있지만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사채의 병폐를 모를까요? 자본주의의 문제를 사람들이 모를까요?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체험적인 느낌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게 저의 의지였어요. 사채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영화는 이것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될 거로 생각했고, 내가 그리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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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7: “엔딩을 결정할 때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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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아마 이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영화의 엔딩은 관객들에게 의문과 논쟁이 될 거로 생각해요. 원작의 엔딩이 훨씬 강렬한 엔딩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것은 혼마가 주인공이어야 가능한 엔딩입니다. 원작의 엔딩은 애초에 우리에게 선택 조건이 아니었어요. 문호로 이야기가 끝나야만 했어요.
이런 고민들이 있었죠. 에스컬레이터에서 끝을 낼 것인가? 지금 엔딩으로 끝낼 것인가? 일년 뒤 에필로그를 만들 것인가? 그 중 일년 뒤 에필로그는 치사하다. 끝내 그녀의 끝을 보여준 건.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그녀의 끝을 보여주고 그 다음을 관객에게 맡기고 싶었어요. 지금의 엔딩이 오히려 열린 엔딩이라고 믿고 있어요. -
정: “모든 불행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 무관심하게 이뤄지는 것이지, 뒷골목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이 드네요. 무서운 손을 내밀기까지 그녀가 굉장히 외로웠다는 것. 그러다 차가운 손이 되었다는 것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감독님,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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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이 늦은 시간까지 앉아주셔서 감사하고요. 영화를 만들면서 내내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 원작이 가지고 있는 무겁고 어두운 공기를 훼손시키고 싶지 않다고요. 원작이 있는 영화는 언제나 팬들에게 배신 당할까 봐, 원작자에게 냉대 당할까 봐 걱정을 합니다. 이번에는 단 하나만 걱정했어요. 원작의 공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이 3월에 조금 어둡고 무거운 얘기를 덥썩 내미는 용기는, 오로지 이 원작이 가진 미덕 때문입니다. 원작의 힘과 영화의 힘이 닮았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보고 좋으셨다면 저희 영화의 편이 되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와 친구가 되어 주신다면, 그보다 좋을 것 같아요. 영화는 아직 계속 상영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팡팡
2012.11.13
jere^ve
2012.03.30
vortex42
2012.03.29
축축하지만 깊었고, 예비 관객 분들한테도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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