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분은 이미 유방암 수술을 받았었고 이제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서 암이 재발하지 않았는지 검진하는 단계였습니다. 젊은 사람에겐 흔하지 않은 병이라서 젊은 유방암 환자를 만나면 항상 마음이 안 좋았는데, 이 환자의 엑스레이를 보니 억장이 더 무너졌습니다. 폐에 수많은 전이성 종양이 퍼져 있었던 것입니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흉부 엑스레이 사진이 깨끗했었는데 말이죠.
그날 제 임무는 환자를 간단히 예진하는 것뿐이어서 환자에게 암이 폐로 전이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직접 전달하지는 않아도 되었습니다. 환자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의사도 인간인지라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접하면 슬픈 마음이 들게 됩니다. 어쨌거나 아름다운 여성들을 본 기쁨도 잠시, 그날은 상당히 우울한 날이었습니다.
유방암이 증가하는 이유
유방암도 요즘 한국에서 증가하고 있는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아직은 선진국에서 더 많이 발생합니다. 10만 명당 유방암 발생률을 조사해보면 북미의 경우 90명, 서유럽은 78명인데 반해(2003년 기준) 우리나라는 27명(2009년 기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나쁜 소식은 서구에서는 폐경 이후 늦게 유방암이 발병하는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젊은 나이의 여성에게 유방암이 꽤 많습니다. 우리나라 통계를 보면 40대 여성에게 유방암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은 50대이며, 그 다음이 30대와 70대입니다. 그 배후에는 서구적인 식생활이 의심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야 서구적인 식생활이 식사의 전부니까 나이가 많을수록 서구적 식사도 더 많이 한 것이 되고,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유방암 발병률도 증가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갑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서구적 식생활이 시작된 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60대나 70대 분들보다는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서구적인 식사를 더 많이 해서 유방암 발병률이 높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20대와 30대는 서구적 식생활을 많이 하더라도 아직 유방암이 발병할 만큼 음식의 영향을 충분히 받지 않아서 40대에 비해서는 발병률이 적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서구적인 식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유방암에 걸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개개인의 발병 원인을 100퍼센트 식사 탓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최근 폭발적으로 한국에서 유방암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나 젊은 사람에게 많이 발병된다는 역학적인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 서구식 식사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돈이 없어서 못 먹었고 돈이 있어도 사먹을 데도 없었지만, 지금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예전에 비해서 가격도 많이 싸졌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매주 몇 번도 먹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구식 식사가 일반화된 지금의 청소년들이 자랐을 때 유방암이 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합니다.
음식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유일한 문제는 아닙니다. 유방암의 원인을 따질 때 음식 다음으로 지적되는 것은 여성의 흡연과 음주입니다. 특히 흡연을 더 일찍 시작하고 흡연량이 더 많은 사람은 훨씬 위험하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 직업적 환경도 문제가 됩니다. 덴마크 암연구소가 1만85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1964년부터 35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야근한 여성의 유방암 발생 빈도가 두 배 높았다고 합니다. 흔히 밤에 잠을 자야지 생체 리듬이 깨지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상식적인 판단이 유방암을 통해 과학적으로 증명된 셈입니다.
네 번째로 유방암 발병률을 높이는 요인은 늦은 결혼과 출산율 저하입니다. 유방암도 유형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에스트로겐이라는 여성 호르몬에 의해 촉진됩니다. 에스트로겐은 특별한 발암물질은 아니고 그냥 여성을 여성답게 만들어주는 정상적인 호르몬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으면 문제가 됩니다. 여성이 일생에서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덜 받는 시기는 초경 이전과 폐경 이후이고, 그 사이 기간이라도 임신과 수유 기간에는 영향을 덜 받습니다. 즉 유방암 발생의 한 측면만 고려한다면 초경이 늦을수록, 그리고 폐경이 이를수록 더 좋고, 임신을 많이 할수록, 수유를 오래할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여성들은 거의 정반대의 삶을 살아갑니다. 과다한 영양으로 초경은 갈수록 빨라지고, 아이를 적게 낳으니 일생에서 임신하고 있는 기간도 짧아지며, 그나마 한둘밖에 없는 아이에게조차 모유수유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늘어나서 유방은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게 됩니다. 만약 1920년에 태어난 여성이 16세에 초경을 하고 아이를 6명 낳아 1년씩 수유를 하고 50세에 폐경이 시작되었다면, 이 할머니의 경우 일생 중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기간은 불과 22년입니다.
반면, 1975년에 태어난 어떤 여성이 14세에 초경을 했고 아이는 한 명 낳았는데 수유를 하지 않았으며 50세에 폐경을 맞이했다면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많이 받는 기간은 무려 35년이나 됩니다. 이 중년 여성이 37세 정도가 되면 앞의 할머니가 평생 받았던 것과 같은 22년의 고농도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받는 나이가 될 것입니다. 게다가 평소 고열량과 고지방식을 즐겨왔다면 40대에 들어섰을 때는 유방암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유방암을 피하는 비결
그럼 유방암을 줄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미 답은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식생활 개선입니다. 과일과 채소의 섭취를 늘리고 육류와 지방, 고칼로리 식품의 섭취를 줄여야 합니다. 둘째는 비만의 예방입니다. 물론 식생활과 직결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식생활 개선 외에도 규칙적인 운동으로 비만을 예방하고 치료해야 합니다. 셋째는 금주와 금연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넷째는 밤에 자고 낮에 활동하는 정상적인 생활습관을 가지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것입니다. 초경이 빨라지는 추세나 만혼이 늘어나고 아이를 적게 갖는 사회적 분위기는 바꿀 수 없다 하더라도 모유수유가 유방암 예방에 좋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실천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실천 사항이 있습니다. 이렇게 건전한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노력하더라도 유방암이 생길 사람은 생깁니다. 따라서 조기 발견이 필수입니다. 유방암은 사춘기부터 이미 그 암세포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해서 10~20년 동안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받으며 지속적으로 성장합니다. 만약 가슴에서 멍울이 만져지거나 통증이 와서 검사를 받으러 갔다면 진단이 매우 늦은 것이며 거의 말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급적 일찍(보통 35세를 권합니다.) 정기적인 유방 검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방암을 빨리 발견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아무런 증상도 없는 사람이 의사를 매월 방문하는 것도 시간과 돈 낭비일 것입니다. 우리 몸에 생기는 암은 대부분 내부 장기에 생기는 것이라 스스로 검진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유방암은 외부에서 손으로 만질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피부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으므로 할 수만 있으면 유방암 자가검진을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자가검진은 매달 하는 것이 좋으며 월경 주기에 따라서 유방에 약간의 변화가 생길 수 있으므로 되도록 월경 후 3~5일째에 일정하게 합니다. 제가 환자들에게 권했던 방법은 어차피 샤워는 하는 것이니까 샤워를 하고 나서 욕실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바쁘기도 하고 식구들의 눈치도 있으니 구태여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는 것이 항상 수월하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자가검진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거울 앞에 서서 유방의 형태와 피부를 관찰합니다. ② 두 손을 올리고 관찰합니다. ③ 다시 두 손을 내리고 관찰합니다. ④ 검사하려는 유방 쪽의 팔을 올려서 손을 머리 위로 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 유방을 검사합니다. 검사할 때는 옆에서 유방을 쥐는 식이 아니라 검지, 중지, 무명지의 세 손가락으로 유방을 누르면서 멍울이 있나 검사합니다. 누를 때는 그냥 지장을 찍듯이 여기저기를 꾹꾹 누르는 것이 아니고 유방의 바깥에서부터 시작해서 동심원을 그리듯 안으로 부드럽게 누르면서 돌아 들어갑니다. ⑤ 마지막으로는 유두까지 검사해야 합니다. 눌러서 멍울이 있나 살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통증이 느껴지는지도 봐야 합니다. 혹시 유두에서 이유없이 분비물이 나오는지, 유두가 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함몰된 형태가 되었는지 봐야 하고, 혹시 피부에 습진과 같은 발진이 있는지, 오렌지 껍질처럼 단단하면서도 쭈글쭈글해 보이는 부분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⑥ 마지막으로 누워서 다시 같은 검사를 반복하고 혹시 의심 가는 곳이 있으면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의사와 상담을 해야 합니다. 유방암에 따라서는 멍울은 전혀 없는데 마치 피부병처럼 보이기도 하고, 피하에 만져지는 것은 없어도 피부가 그냥 두꺼워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 ||
- 뉴욕의사의 건강백신 고수민 저 | 북폴리오
이 책은 생활 건강, 직장인 건강, 질병 건강, 여성 건강, 건강에 관한 단상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평소 실천할 수 있는 건강한 습관을 알려준다. 또, 빠른 체중 감량 법, 자꾸 방귀가 나올 때, 검강검진의 비밀 등 궁금하고 의심스러웠지만 딱히 물어볼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들도 속 시원하게 해결해 준다. 많은 방문자들의 사랑을 받은 파워블로거 특유의 입담과 글솜씨도 확인할 수 있으며, 생생한 사례와 일러스트가 곁들여져 유익한 정보를 재미있게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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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민
1996년 원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0년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였다. 2005년 도미, 현재 Montefiore Medical Center에서 재활의학과 의사로 근무 중이다. 미국 의사시험(USMLE)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축적한 정보를 공유하고자 티스토리에 블로그 〈뉴욕에서 의사하기〉를 개설하였다. 의학정보, 영어공부법, 재테크 등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가 블로거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단기간 방문자 1천만 명을 돌파, 2008년 포털 사이트 다음(Daum) 블로거 기자 상을 받았다.
그는 총 4개의 전공을 거친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2000년 삼성서울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2005년 미국으로 건너가 내과 수련을 시작했으며, 2007년 재활의학으로 전공을 바꿀 때에는 이미 배운 인체 내부의 지식에 더해서 인체 바깥 부분을 담당하는 근골격계를 새로 배움으로써 의학지식을 완성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3년의 과정을 마치고는 근골격계 증상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통증을 더 배우고 싶어 통증의학 전문의 과정까지 마쳤다. 그는 4년으로 끝났을지도 모르는 수련 생활을 11년가량 거치고 보니 환자들이 가진 여러 개의 질환을 서로 연결하여 볼 줄 아는 시각이 생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뉴욕의사의 건강백신』에는 그런 종합적인 시각이 담겨있다.
『뉴욕의사의 건강백신』은 백과사전처럼 모든 질환을 골고루 정리해주기보다는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하는 건강 상식을 최대한 풀어서 설명하고 포인트를 거듭 강조해서,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각인되도록 했다. 저자의 글은 동네 아저씨처럼 친절하면서도 촌철살인의 명쾌한 진단과 처방, 직접 겪은 환자들의 생생한 사례들로 많은 블로거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3년 카플란 학원 USMLE 설명회 강사, 2005년 GMES 미국의사시험 전문 학원, 서울 메디컬스쿨 USMLE 강사, 2005년 서울 상덕의원 부원장, 2007년 St. Mary's Health Center, St Louis, Missouri, Internal Medicine , 2008년 USMLEMASTER.com USMLE 설명회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Albert Einstein College of Medicine, Montefiore Medical Center, New York, Physical Medicine and Rehabilitation 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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