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연애란 3인칭을 2인칭으로 만드는 것
김훈 작가가 『흑산』 출간 2주년을 기념하며 독자들과 만났다. ‘가고가리의 꿈’이라는 주제로 그들이 함께 나눈 대화는, 나아가기 위한 몸짓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꿈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곧 김훈 작가가 걸어온,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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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이라는 이름의 ‘가고가리’

한국 문학계에서 역사 소설의 대명사와 같은 존재, 작가 김훈. 그가 『흑산』의 출간 2주년을 기념해 독자들과 만났다. 지난 11월 28일, 연세대학교에서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예스24와 연세대학교가 공동 주최한 이 날의 북 콘서트에는 ‘가고가리의 꿈’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흑산』의 속표지에 실린 김훈 작가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가고가리’는 말과 배, 새의 모습을 한 상상 속의 괴수다. 그가 처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은 『흑산』의 이야기가 모두 끝난 후였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에 대해 다룬 『흑산』의 이야기를 마친 후, 작가 김훈이 ‘가고가리’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 괴수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다윈의 책을 읽다가 상상 속의 괴수가 하나 떠오르더군요.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해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준 거예요. 신념이나 신앙, 사회적 관습처럼 이미 주입된 생각들에서 해방되어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줬죠. 『흑산』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도 억압되고 야만적인 시대를 뚫고 어디론가 진화하려고 몸부림치다가 좌절되잖아요. 갈 수 없는 먼 곳을 향해서 가는 괴수, 그런 이미지를 종합해서 그린 것이 ‘가고가리’죠.”

결코 닿을 수 없는 땅을 향해 가고 또 가기를 멈추지 않는 ‘가고가리’. 그칠 줄 모르는 그의 몸짓은 『흑산』 속 인물들의 삶과 닮아있다. 그리고 작가로서 김훈이 남긴 궤적과도 다르지 않다. 그렇게 ‘가고가리의 꿈’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가 김훈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김훈이라는 이름의 ‘가고가리’는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김형철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와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두 명의 대학생(이경진(행정학과) 정진성(독어독문학과))이 동행했다. 이야기는 『흑산』 속 또 다른 ‘가고가리’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정약전은 유배지의 현실을 긍정하는 사람이에요. 자기의 꿈과 이상을 유배지에서 이루려고 서당을 만들고, 그 섬에서 만난 여인과 결혼해서 아이도 낳았어요. 그리고 흑산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글 「자산어보」를 썼죠. 서울을 그리워하지 않고 자기가 처한 유배지의 현실을 인정한 거예요. 그런 과정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됐어요. 황사영은 생활의 토대가 전혀 없는 지식인이죠. 자기 이념에 의해서 이념적 정당성을 위해서 인간의 현실은 다 때려 부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몽상적 혁명가가 아니고 혁명적 몽상가라고 해야 맞겠죠. 그러나 정말로 순결한 영혼을 가지고 있죠. 나는 정약전의 편이에요. ‘인간이 시대에 의해서 목숨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건설하는 것이 정약전의 꿈이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고귀함과 야만성은 공존하는 것

시대의 현실에 목숨 바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 꿈을 이야기하는 작가 김훈의 방식은 낭만적 이상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작품 속에서 환상이 아닌 현실을, 밝은 빛이 아닌 어두운 그림자를 가리켜왔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고 말하며 먼 곳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이들과는 분명 다른 행보였다.

“거의 대부분의 제 소설에는 악이나 인간의 야만성이 등장하죠. 저는 이 세상의 밑바탕에 인간의 악과 폭력, 야만성과 약육강식, 억압과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인간의 아름다움, 인간의 이성, 자유나 평등을 향한 인류의 열망 또한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것은 악과 야만과 같이 존재하는 것이죠. 인간의 아름다움과 고귀함만이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가 인간의 아름다움을 말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악의 구조를 한꺼번에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현실에 대한 인식만큼이나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김훈 작가의 목소리는 냉철하다. 관념적인 수사를 거부하고 체험을 통해 검증한 언어로만 말해왔기 때문이다.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도 직접적인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는 아직까지도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우는 방식을 고집한다고. 컴퓨터로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작가는 ‘어깨에서부터 손가락 끝까지 작동되는 육체의 힘, 내가 살아있는 나의 몸으로 내 글을 밀고 나간다는 육체감. 그것이 없으면 글을 쓰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온 힘이 실린 손끝에서 김훈 작가 특유의 절제되고 간결한 문체가 탄생한 것이다.

“처음에는 긴 문장을 쓰다가 『칼의 노래』를 쓸 때는 짧은 문장으로 썼죠. 그때 나는 주어와 동사만으로 문장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건 난중일기를 보고 배운 것이죠. 군인다운 글쓰기, 무인다운 글쓰기죠. 조선시대의 검법 책도 많이 봤어요. 칼을 들어서 적을 칠 때, 적의 몸을 베지 못하면 칼끝이 땅을 치게 될 거예요. 그 순간에 나의 전 방위는 적에게 노출되는 것이죠. 한 번에 베지 못하면 죽는 거예요. 칼을 내려칠 때 그 안에서 나의 생과 사가 명멸하는 것이죠. 그걸 보고 ‘문장이라는 것도 한 칼로 베고 나가지 못하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애란 3인칭을 2인칭으로 만드는 것

북 콘서트 ‘가고가리의 꿈’을 통해 김훈 작가는 현재 청춘들이 겪고 있는 고민, 조언을 구하는 목소리들에 응답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과 함께 ‘소설가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학생들이 진로 선택을 앞두고 고민할 텐데요. 자신이 심취한 대상이 밥벌이가 되지 않는 일일 때는 고민이 더욱 심각해집니다. 작가님께서는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책을 써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었어요. 왜냐하면 다들 밥벌이가 지겨우니까요. 그런데 밥벌이는 피할 수가 없어요. 그건 인간의 운명이죠. 낚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물고기가 먹이를 먹으려다가 자신이 먹이가 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낚싯바늘은 먹지 않고 낚싯밥만 먹을 수 있겠어요? 그건 어렵죠. 밥을 삼키는 순간에 목구멍이 낚싯줄에 걸려서 끌려가잖아요. 밥벌이를 해야만 한 인간이 완성될 수가 있는 것이죠. 제 밥을 벌어먹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인격이나 인간성을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밥벌이라는 것은 자기 인간성이 훼손되어 가면서 또 인간성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러분은 밥벌이를 피할 생각을 하지 말고, 거기에 끌려가지 말고, 그것을 끌고 가는 수밖에 없어요. 피할 수가 없으니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죠. 그것이 밥벌이에 대한 정당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자존감과 삶의 태도에 관해서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젊은이들이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 편이 많은 것을 아늑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나의 편이 아니라고 해서 내가 틀린 게 아니에요. 그리고 내 편이 많다고 해서 내가 옳은 것이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작당을 해 있다고 해서 그 안에서 정의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에요. 반대로 고립됐다고 해서 정의로운 것도 아니겠지만요. 오직 세상과 치열하게 맞서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죠. 이런 것이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삶의 태도는 아닙니다. 나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자기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요즘 나는 서해안에 있는 선감도라는 작은 섬에서 지내는데요. 혼자 있을 때도 내가 외롭다는 생각은 안 해요. 나는 혼자 있을 때 가득 찬 충만감을 느껴요. 나에게 혼자 있는 것은 고독이 아니라 단독이에요. 그것이 쓸쓸하거나 고독하지는 않아요. 여러분도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소통이라는 것도,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는 인간들끼리 소통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성적으로 떨어져 있는 존재 사이에 소통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앞으로 꼭 쓰고 싶은 주제나 인물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아버지와 나의 세대의 문제를 글로 써보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그것이 나의 뜻대로 잘 될는지는 몰라요. 『흑산』이나 『남한산성』 같은 소설에서 그 시대의 인간의 악과 야만성을 치열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했죠. 그에 못지않게 우리 아버지와 나의 시대의 야만성을 묘사해 놓아야 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세계의 거대한 악을 향해서 생명을 던져서 죽은 청년들이 많아요. 안중근 의사, 윤동주 시인, 김대건 신부, 나석주 의사 같은 청춘들이요. 그런 젊은이들에 대해서 후세의 글쟁이로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고민하고 있죠.

작가님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제 방 벽에 ‘필일오(必日五)’라고 써 있어요. 하루에 다섯 장은 반드시 쓰자는 이야기죠. 좌우명이 그렇게 실무적입니다(웃음). 그 전에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고 써 있었어요. 제가 군 생활할 때 총을 항상 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라고 분대장이 내무반에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고 써 놨었거든요. 저는 그걸 방에다 써놓고 있었어요. ‘나의 언어를 항상 사격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자’고 써놓은 건데, 근데 너무 공업적이어서 ‘필일오(必日五)’로 바꿨습니다(웃음). 저는 그렇게 실무적이고 노동적인 좌우명을 가지고 있지,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좌우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3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쓰는 것이 어렵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요, 지금은 어떠십니까?

3인칭은 정말로 어려운 것이죠. 이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서 쓰겠다는 말이잖아요. (세상에는) ‘나’하고 ‘너’하고 ‘그’가 있는 것이죠. ‘그’라는 것은 제일 어려운 겁니다. 3인칭을 2인칭으로 만드는 게 연애예요. ‘그’를 ‘너’로 만드는 거예요. ‘그’라는 것은 나하고 관련이 없는 사람이에요. 객관적 사물인 것이죠. 그런데 ‘너’는 나의 앞에 있는 나의 대상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3인칭을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3인칭 문장을 쓴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는 두려운 일입니다.




저녁이 되면 책상 위에 지우개 가루가 눈처럼 쌓이는 곳. 그 작업실을 김훈 작가는 ‘막장’이라고 불렀다. 광산 갱도의 가장 끝을 의미하는 그 ‘막장’ 말이다. 갱도의 막장은 가로막힌 벽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곳은 석탄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신성한 공간이다. 광부가 곡괭이로 벽을 찍어 석탄을 한 움큼씩 꺼내는 것처럼, 김훈 작가는 작업실에서 의미의 벽을 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그렇게 ‘막장’에서 한 움큼씩 얻어낸 귀한 이야기들이다. ‘막장의 의미는 글로 쓰기 보다는 내 생애를 통해서 실천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작가 김훈. 그의 작품이 언제나 기대되는 것은 그 안에 ‘막장’의 의미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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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절두산에 흐르는 빗물이 피처럼 느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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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黑山 김훈 저 | 학고재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 『흑산』 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조선 사회의 전통과 충돌한 정약전, 황사영 등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을 다룬다. 당시 부패한 관료들의 학정과 성리학적 신분 질서의 부당함에 눈떠가는 백성들 사이에서는 ‘해도 진인’이 도래하여 새 세상을 연다는 ‘정감록’ 사상이 유포되고 있었다. 서양 문물과 함께 유입된 천주교는 이러한 조선 후기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한 지식인들의 새로운 대안이었던 셈이다. 작가 김훈은 천주교에 연루된 정약전과 그의 조카사위이자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인 황사영의 삶과 죽음에 방점을 찍고 『흑산』 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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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흑산 #신유박해 #정약전 #황사영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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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르르

2014.01.25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무게감 있는지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분이 김훈 작가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작이 나오셨다니 반가움과 기대감이 앞섭니다.
어서 읽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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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슉

2014.01.22

봄이 온다.
오늘은 길이 많이 막혔다.
햇볕은 눈부셨다.
낮게 빛나던 볕은 차창을 통과해 긴 칼처럼 몇갈래로 흩어져 눈을 찌른다.

그 때, 어디선가 봄기운이 느껴졌다.
봄기운은 날씨보다 먼저 오고, 바람보다 더 빨리 온다.
나는 봄처녀처럼 설랬다.

이윽고 설레는 바람 냄새가난다.
바람 냄새는 공기가 더 부드럽고 헐거워 진 것을 느끼게 한다.
가벼운 공기는 겨우내 차갑게 땅으로 끌어당기던 내 몸의 무게를 덜어준다.

덕분에 나의 몸은 가벼워지고 나의 마음은 막연한 기대로 가득찬다.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의 질감이 바로 감정으로 변화하는 기적을 경험했다.
내 마음이 "살아 있음이 이런 것이다" 라고 소리친다.

이 것은 내가 경험한
물질이 감정이 되는 기적이고
내가 인간의 몸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해주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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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ufe76

2013.12.23

말이 그냥 글이 되는 작가십니다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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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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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휘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 한다. 대학은 처음에는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1966년).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읽은 것이 너무 좋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외과에 뜻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영문과로 전과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동기생들이 4학년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생이 되었다. 영문과로 옮기고 나서 한 학년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니까 여동생도 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운 상태라 한 집안에 대학생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었다. 돈을 닥닥 긁어 보니까 한 사람 등록금이 겨우 나오길래 김훈은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이 돈을 가지고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며 그 돈을 여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대학을 중퇴했다. 김훈 씨는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이며 또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 쓰는 것이라 한다. 그의 희망은 희망이 여러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훈이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낸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칼의 노래』를 꼽을 수 있다.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전략 전문가이자 순결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이 시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제시한다. 영웅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궤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복원하여 현실성을 부여하되,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이순신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의 저서로 독서 에세이집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