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화한 거리마다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언제 그리 뜨거운 사람들이 되었는지 추운 공기 사이 서로를 방패 삼아 품에 안은 연인들이 걸음을 재촉한다. 아이들과 함께 한 어른들은 전보다 웃음이 늘었고, 조금 더 밝은 표정이 되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쿵쿵거려 가끔 귓가에 아른거리곤 했다. 거리에는 먼발치에서부터 가까운 상점까지 저마다 원하는 템포의 캐럴이 울려 퍼지고, 그 음악과 섞여 울리는 종소리가 그 길가를 물들이고 있었다.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고, 반가운 누군가를 만날 것만 같다. 왠지 모르게 이맘때쯤이면 항시 두근거린다. 크리스마스가 대문 앞에 서서 벨을 누를까 말까 머뭇거릴 즈음, 때는 성탄이 다가오는 길목에 있었다.
우리의 명절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는 어느새 무조건 기쁜 날이 되어있었다. 조금 더 마음을 고백해도 괜찮고, 모든 것에 너그러워지는 크리스마스의 마음이 좋다. 조금 더 크리스마스를 기뻐하는 서쪽에서는 나라마다 각각의 방식으로 기쁨의 날을 고대했다. 독일은 ‘야금야금’한다. 12월 초 무렵부터 ‘슈톨렌’을 만들어놓고 일요일 마다 한 조각씩 얇게 썰어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오래 두고 먹어도 괜찮은 슈톨렌은 건포도와 오렌지 필을 담뿍 넣고 슈거 파우더를 뿌린 모양이 마치 눈 쌓인 장작을 닮았다. 이탈리아는 ‘보돌보돌’한다. 황금의 빵이라는 뜻을 가진 ‘팡도르’는 달걀을 가득 넣어 노르스름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슈거 파우더를 열심으로 뿌려 달콤한 팡도르를 먹으며 차분히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이탈리아의 그 빵은 크리스마스트리의 반짝이는 오너먼트를 닮은 듯 했다. 그런 연유로, 이맘때쯤이면 그 두 가지 빵이 자연스레 생각나는 것이었다.
<빵장수 쉐프>는 동인동에 있었다.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동성로에서 가깝지만 한두 블럭의 차이로 네온사인 흔하지 않게 잔잔한 골목이었다. 조금 걸어 나오니 언제 그리 고요했냐는 듯 밝고 환한 길이 펼쳐진다. 그 골목이란 마치,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의 여느 날과도 같아서 반짝거리기 전 고요함이 여실했다. 동인동, 어쩐지 더 두근거린다.
빵집 입구에서부터 숨길 수 없는 자태의 ‘팡도르’가 반겨주었다. 둥그스름한 듯 각이 선명하고, 단단한 듯 생긴 모양에 소복이 설탕 눈이 쌓여있는 ‘팡도르’가 어쩐지 로맨틱하다. 한 입 베어 무니 솜사탕보다 더 부드러운 ‘팡도르’가 씹을 겨를 주지 않고 흔적 없이 사라진다. 한겨울 따뜻한 입맞춤, 이것보다 달콤할까. 당신의 품 안, 이것보다 포근할까. 크리스마스가 아니래도 〈빵장수 쉐프〉의 ‘팡도르’는 기다리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맛이다. 달콤하게 녹아드는 ‘팡도르’에 반해 쉽게 헤어나오기 힘들다.
화분처럼 생긴 틀에 구운 ‘카스텔라’는 당장이라도 무언가 새싹이 돋아날 듯 부드럽고 싱그러운 맛이다. 달콤한 과일을 올려 구운 ‘과일 밭’과 고구마와 단호박을 소복이 담은 ‘타르트’, 말랑거리며 심장 끝까지 녹아드는 ‘에그 타르트’까지. 빵을 구운 철판에 무심한 듯 올려 진열해놓은 타르트와 빵들이 투박한 멋을 풍겨낸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라는 영화를 참 좋아했다. 블루베리를 담뿍 올린 투박한 듯 정성 깊은 타르트를 파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타르트를 내어놓는다. 일부러 꾸며내지 않아도 충분히 멋있고,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워 몸이 사르르 녹는 듯한 〈빵장수 쉐프〉의 타르트가 크리스마스 무렵 그리운 당신을 더 그립게 한다. ‘마이 타르트 나이츠’가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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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053-256-0100 H 08:00-23:00 C 명절 당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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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10년의 부산, 스무 살에 내려와 돌아서니 30대의 경상도 여자. 여전히 빵집과 카페, 디저트를 사랑하는 얼리 비지터. 2010~2012년 ‘차, 커피, 디저트’ 부분 네이버 파워 블로거. 『카페 부산』 저자. kisli.co.kr
감귤
201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