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
PHOTOGRAPH : LEE KI-SUN
am 10:30
고마나루
공주에는 겹겹이 솟은 낮은 언덕만큼 무수한 시간의 층이 쌓여 있다. 도시가 흘러온 2,000년의 시간은 금강에서 시작했다. 이 야생적인 강에는 태초의 암곰에 얽힌 기괴한 전설이 전해온다. 금강 북쪽의 연미산에 살던 암곰은 인간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그와의 사이에서 새끼 곰까지 낳았다. 하지만 남자가 도망가버리자 절망을 못 이기고 새끼와 함께 금강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 터가 바로 오늘날 고마나루다. 전설 탓인지 아니면 공주의 역사가 시작하는 곳이기 때문인지, 강가엔 으스스하고 신비로운 공기가 가득하다. 곰사당을 품은 솔숲과 갈대 너머로 강이 소리 없이 흐르며, 그 너머로 연미산이 펼쳐진다.
암곰의 슬픈 전설이 내려오는 나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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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11:30
공산성
공주 사람은 이 도시를 ‘보물이 묻힌 땅’이라 부른다. 선사시대부터 조선 시대 유적까지 고루 남아 있는데다 아직까지도 발굴 작업이 제대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강 남쪽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공산성(입장료 1,200원)에서는 지금도 보물을 발굴하고 있다. 2008년부터 매해 일대 발굴 조사를 진행하는데, 말 그대로 ‘땅을 파기만 하면’ 백제부터 조선 시대까지 국보 급 유물이 나온다고. 하지만 여행자에게 공산성의 진짜 보물은 이곳에서 보는 풍경일 듯하다. 금서루에서 출발해 2.5킬로미터 넘게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곽을 따라 걸어 다시 금서루로 돌아오는 데 1시간 정도 걸린다. 조선 시대 서문이던 금서루는 오늘날 공산성의 정문 역할을 한다. 공산성 홍보 카탈로그에 으레 등장하는 장소도 바로 이곳이다. 출발하자마자 곧장 산성 최고난도의 오르막길이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다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지만, 그만큼 멋진 풍광이 기다린다. 금강에 놓은 금강철교 너머로 신시가가, 동쪽으로 짙은 숲이 펼쳐진다. 공산성 길을 걷는 것은 공주의 지난 천 년 역사를 넘나드는 여정이기도 하다. 나무 2그루가 있던 산성의 가장 높은 언덕에 지은 쌍수정에는 조선 시대 이괄의 난을 피해온 인조가 머물렀다. 그 앞에는 백제 시대의 왕궁 터로 짐작하는 추정 왕궁지가 있는데, 당시의 인공 연못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공산성은 475년 백제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1,500여 년간 바람 잘 날 없이 변화해왔다. 64년간 백제 수도 공주를 지키던 토성이었다가 조선 시대 석성으로 개축했다. 일제강점기 성곽이 거의 훼손되고, 조선 시대 정자인 쌍수정 앞 공터에서는 체육 대회까지 열렸다고 한다. 2014년에야 성벽 보수 공사를 완료하고 현재의 성곽 길을 개방했다.
금서루에서 성곽 산책을 출발한다.
PHOTOGRAPH : LEE KI-SUN
pm 2:00
공주 중동성당
공주의 근현대 역사는 구시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국고개 문화 거리를 따라 흐른다. 옥룡동 사거리에서 출발해 중동성당을 지나 옛 공주읍사무소에 자리한 공주역사영상관까지 1킬로미터를 잇는 길. 하이라이트는 단연 1936년 지은 중세 고딕 양식의 건축인 중동성당이다. 아담한 유치원을 지나 언덕을 올라가면 고전적인 벽돌 성당이 나온다. 국고갯길은 4월이면 벚꽃으로 달콤하게 물든다.
중동성당 주변을 소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PHOTOGRAPH : LEE KI-SUN
pm 3:30
제민천 골목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을 쓴 나태주 시인은 공주도 오래 볼수록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한다. 금강 줄기에서 갈라져 남쪽으로 흐르는 제민천 쪽 구시가 골목을 걸으면 공주의 그런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골목마다 옛 직물공장이며 양조장, 극장, 여관, 살림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떤 곳은 10년 넘게 자물쇠를 잠근 채 비어 있고, 어떤 곳은 헐어버리고 신식 건물을 세웠다. 물론 중동오뎅집(041 855 4411)처럼 수십 년째 영업 중인 곳도 있다. 최근에는 옛 건물을 개조한 새로운 공간이 조금씩 늘고 있다. 한 젊은 부부가 올 2월 문을 연 이탤리언 식당인 이안 키친(070 8809 0712) 그리고 전통 찻집인 루치아의 뜰(041 855 2233)처럼.
청년 시절 들른 공주에 반해 수십 년째 이 도시에 살며 이곳에서 여생을 보낼 것이라는 나태주 시인은 공주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공주를 이루는 두 가지 근원이 어머니 같은 금강 그리고 아버지 같은 계룡산이라고 말한다. 공주가 ‘자연과 인간이 가장 잘 어우러진 곳’이라고도 한다. 공주에 가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1970년대 200원이던 칼국수를 지금도 팔고 있는 초가집(041 856 7997)은 산성시장 인근의 오래된 식당이다. 제민천 앞의 허름한 단층 건물에 자리한다. 마른 칼국수 면에 빨간 비빔국수 양념과 상추, 김치를 얹은 비빔칼국수(6,000원)가 별미.
구시가 골목에서 옛 건축물을 발견해보자.
PHOTOGRAPH : LEE KI-SUN
pm 5:00
루치아의 뜰
구시가 탐험의 종착점은 골목 끝에 정지한 듯 자리한 옛집이다. 이 집에는 스텔라와 루치아, 두 여자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스텔라와 루치아는 카톨릭 세례명으로, 둘은 공교롭게도 같은 성당에 다녔다. 1960년대 초반 스텔라의 남편은 아내와 다섯 아이와 함께 살 집을 3년에 걸쳐 지었다. 전문 목수가 아니어서 낫질 솜씨마저 서툴렀다. 그후 다섯 아이가 다 커서 집을 떠날 때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도 스텔라는 이 집을 정성껏 돌보며 살았다. 스텔라마저 세상을 떠나고 3년간 폐가이던 집을 발견한 건 루치아였다. 어느 날 구시가 골목을 거닐던 그녀는 이 집에 첫눈에 반해 ‘미친 여자’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당장 사들였다. 건축 사무소 가온건축이 개조하고 루치아가 문을 연 찻집 루치아의 뜰은 면적이 고작 33제곱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집. 독특한 구조의 공간은 집 주인인 루치아와 이 도시를 닮았다. 찻집을 연 후부터 길다란 뜰에서는 죽은 식물이 다시 꽃을 피웠다고 한다. 지리산 야생황차(6,000원)는 집 안을 비추는 마지막 햇살을 향긋하게 물들인다.
루치아의 뜰이 있는 골목 앞 2층짜리 옛 주조 공장 건물은 식당으로 바뀌었다. 맛깔(041 858 7003)은 아담한 정원이 딸린 깔끔한 곳으로, 조미료 없이 정성 들여 만드는 음식 맛도 인테리어만큼이나 정갈하다. 이곳에서 직접 만든 두부로 끓인 순두부(6,000원)를 맛보자.
부엌, 다락방, 거실이 오밀조밀 자리한 찻집 공간.
PHOTOGRAPH : LEE KI-SUN
Side Trip
공주 자전거 여행
공산성, 무령왕릉, 구시가 등 공주 주요 명소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으니 봄을 맞은 공주 시가지를 자전거로 누벼보자. 자전거 무인 대여소를 이용하면 2시간까지 무료다. 공주시 자전거 홈페이지에서 회원 가입하면 일주일 이내에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절차가 다소 번거롭긴 하지만, 비회원도 현장에서 이용 가능하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인증 후 대여 단말기에 개인 정보를 입력하면 된다. 무인 대여소는 종합터미널, 무령왕릉, 공산성, 옥룡GS마켓 등 총 11곳에 자리한다. 1일 최대 자전거 대여 시간은 4시간 이내다. bike.gongju.go.kr
무령왕릉 뒤편 솔숲에 난 길.
PHOTOGRAPH : LEE KI-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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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
201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