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뛰어넘어 사랑 받는 작품을 고전이라 한다. 고전으로 인정 받은 작품들은 비단 문학뿐 아니라 음악에서는 클래식, 패션에서는 명품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오랜 생명을 이어간다. 고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작품들이 있지만,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주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추천하는 편이다. 마치 로맨스 소설처럼 달콤하면서도 애틋한 폴과 시몽의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60여 년 전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넘치는 신선함과 생동감에 놀라게 된다. 시간의 흐름을 무색하게 하는 고전의 매력을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주인공 폴은 서른아홉 살의 실내장식가다. 그녀에게는 오랜 연인 로제가 있다. 차를 급하게 몰고, 낯선 이들과 주먹다짐도 서슴지 않으며, 젊은 여인과의 하룻밤을 즐기는 로제는 아직 자신을 청춘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폴은 자신이 조금 지쳤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마음에 드는 직업이 있었고, 후회스럽지 않은 과거와 좋은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지나버린 일이다. 현재의 폴은 매일 저녁 로제를 기다리거나 로제의 거짓말을 모른 척하는 것에, 늘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에, 앞으로도 영원히 그래야 한다는 것에 몹시 지쳐가는 중이다. 폴은 잃어버린 열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오늘 6시에 프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수줍고 조심스러운 시몽의 쪽지는 지금까지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한꺼번에 환기시켰다. 동시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짧은 질문은 그녀가 불평하면서도 어느덧 체념하고 받아들인 채 살아가던 단조로운 일상을 과감히 벗어던질 용기가 있는지 묻고 있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시 한 번 불타는 열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 작품이 단순한 로맨스 소설을 뛰어넘는 이유는 작가의 이 질문 때문이다.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힘들게 하루를 버티고 있는 현대인들 모두의 마음속 깊이 감추어진 소망들. 실제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치지 않고 당신의 꿈을 멋지게 펼쳐 보일 수 있는가. 또는 당신에게는 아직 사랑할 자격이 남아 있는가. 질문이 끝나고 작가는 폴과 시몽의 경우를 보여주며 다시 묻는다. 폴과 시몽 혹은 로제, 당신은 어느 쪽인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9월과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여름과 가을이 뒤섞인 계절은 이제 막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려는 폴의 모습을 닮았다. 작품의 흐름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나 자신도 영원히 한 계절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무엇인가는 계속 변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적응해가야 하는 것이다. 잉그리드 버그만과 이브 몽땅이 각각 폴과 로제로 출연한 아나톨리트박 감독의 1961년 작 흑백 영화 <굿바이 어게인>의 메인 주제곡으로도 쓰인 브람스 교향곡 제3번 3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은 작품 감상의 배경 음악으로 손색없다. 손수 내린 커피 한 잔과 브람스의 음악, 그리고 사강의 작품이면 가을의 사색을 즐기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1850년대 프랑스에서 개발된 프렌치 프레스를 이용하면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도 좋은 커피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원두 선택만 신경쓴다면 도구나 만드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2만 원 정도면 구할 수 있는 프렌치 프레스에 원두와 끓는 물을 넣고 잘 섞은 뒤, 4분이 지나면 필터를 지그시 눌러 컵에 따라 마시면 된다. 프렌치 프레스용으로는 강하게 볶은 원두가 적합한데, 즐겨 찾는 커피 전문점에서 풀시티급 이상으로 로스팅된 원두를 조금 굵게 분쇄해 구입하는 게 포인트다. 테이크 아웃 커피보다는 불편하겠지만, 하루 한 잔 손수 내려 마시는 커피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담겨 있다. 따뜻한 커피잔을 손에 쥐고 새로운 계절을 환영해보자.
프렌치 프레스
재료
커피 원두 15g
뜨거운 물
프렌치 프레스
나무 스틱
만들기
1 조금 굵게 분쇄한 강배전 원두 15g을 프렌치 프레스에 넣는다.
2 90℃의 물 150ml를 넣고 나무 젓가락등으로 골고루 저은 뒤 뚜껑을 덮어둔다.
3 4분 뒤 필터를 아래로 지그시 눌러 커피 가루를 걸러낸 후 컵에 따라 마신다.
피터(북카페 피터캣 대표)
책과 커피, 그리고 하루키와 음악을 좋아해 홍대와 신촌 사이 기찻길 땡땡거리에서 북카페 피터캣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좋은 친구와 커피 한잔을 마주하고 정겨운 시간을 보내듯 책과 커피 이야기를 나누어보려 합니다. 인스타그램@petercat1212
만듀
2016.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