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시골의 발견』에 이어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가 178가지 정원 이야기를 담은 『정원생활자』로 돌아왔다. 이 책에서는 과학, 철학, 역사와 예술 등 정원 속에 숨어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저자는 방송작가 일을 하다가 영국으로 건너가 7년간 조경학과 정원 디자인을 공부했다. 지금은 오가든스와 오경아의 정원학교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6월 17일, 속초 오경아의 정원학교에서 『정원생활자』 출간 기념 가드닝 특강이 열렸다. 이 가드닝 특강은 원래 1박 2일 코스인 유료 특강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독자와의 만남을 위해 무료로 준비했다. 폭염이 이어지고 있던 서울과는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던 정원학교. 이 곳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열 명의 예비 정원생활자들이 모여들었다. 오경아 저자는 주로 영국을 중심으로 한 정원 이야기로 강의를 채워갔다.
영국의 정원문화
"영국의 코츠월드(Cotswold)라는 곳이 있는데요. 거기에 속한 900년 된 마을에 런던 고가의 아파트보다 비싼 시골집들이 있어요. 정원 문화는 주로 이런 저택이 있는 시골 쪽에서 많이 발달하는데요. 이 문화가 보통 영주들을 통해서 고급스러운 문화로 발전을 했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런 봉건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정원문화가 발달하지 못 했다고 보고 있어요."
영국 같은 경우 모든 문화와 생활의 중심에 정원이 있다. 저자가 살았던 시골 마을에 슈퍼마켓이 딱 하나 있었는데, 정원 용품과 식물을 파는 가든 센터(Garden Center)가 대형으로 두 개나 있었을 정도다. 슈퍼마켓도 하나 밖에 없는 이 작은 마을에 가든 센터가 두 개나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마을 사람들이 손님을 초대할 때, 집으로 초대하지 않고 가든센터로 데리고 가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원을 꾸미기에 앞서
"현재 전세계적으로 정원과 관련된 시장 중에 좀 전에 말씀 드렸던 '가든 센터'라는 게 있어요. 이 가든 센터는 슈퍼마켓이랑 똑같이 보면 되는데요. 카트도 똑같이 밀고 다녀요. 가든 센터는 보통 레스토랑, 티룸, 어린이 놀이터 그리고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죠. 이 곳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게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또 '원예 농가'라는 게 있는데요. 원예 농가의 경우에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농장 자체가 투어리즘을 일으키게끔 만들어놓는 거예요. 실제로 식물을 수종 별로 생산해서 판매하는 건 물론이고, 이 곳에서도 역시 레스토랑이나 티룸 그리고 관상적으로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미니가든을 꾸며놓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원예 농가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주로 비닐하우스를 치거나 특정 작물 한두 개만 키우세요. 서양은 수 많은 종을 관상적으로 예쁘게 만들어놓고, 구경하다가 마음에 들면 구매할 수도 있어요. 우리나라의 원예 농가도 이런 식으로 변화한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가든 센터와 원예 농가 외에도 '체인스토어(Chain Store)'라는 게 있다. 프랜차이즈 되어 있는 경우인데, 이케아를 예로 들 수 있다. 실제로 이케아는 실내 매장과 정원 매장의 비중이 비슷하다. 초기에 우리나라에도 정원 매장이 큰 비중으로 들어왔지만 지금은 다 조화로 바뀌어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정원 문화가 정착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까르푸 같은 대형 슈퍼마켓을 가면 우리나라 대형 마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 있다. 바로 계산대 옆에 있는 식물 코너다. 우리나라는 보통 생활용품이나 간식거리를 파는 반면, 외국은 식물을 판매하는 곳이 많다. 주부들이 꽃과 화분을 구입하는 게 슈퍼에서 장을 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판매 역시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정원으로 떠나는 여행
"우리가 관광이라고 하면 보통 유적지를 찾아가서 사진을 찍고, 맛있는 걸 먹고 오는 게 다잖아요. 실은 유럽의 모든 관광 시스템이 가든 투어예요. 그런데 이 문화가 아직 우리에게 없어요. 제가 가든투어를 인원을 모아서 가본 적이 있었는데, 만족도가 엄청 높아요. 일단 덜 피곤해요. 도착을 해서 정원을 한 바퀴 돌고 나오는 사이에 극도로 피곤했던 게 풀리는 현상이 생겨요. 일본은 한 2009년부터 정원 관광을 시작했어요. 요즘엔 중국인들까지 합세했는데, 우리나라만 아직 그 범주에 들어오지 않고 있어요."
저자는 이어서 우리나라 꽃 박람회의 원조 격인 '첼시 플라워 쇼(Chelsea Flower Show)'에 대해 설명했다. 전 세계에서 현존하고 있는 플라워 쇼 중 역사, 권위, 입장료 면에서 모두 최고를 자랑하고 있는 행사다. 매년 5월 셋째 주에 일주일 동안 열리는 이 플라워 쇼는 행사가 끝나자마자 내년도 티켓팅에 들어간다.
"우리나라도 순천에서 정원 엑스포를 하고, 일산에서는 고양 꽃 박람회를 해요. 우리나라 공무원은 관람객 수 확보에 목숨을 걸어요. 영국인한테 꽃 박람회에 100만 명이 왔다고 하면 도대체 무슨 짓을 했냐면서 엄청 놀랄 거예요. 첼시 플라워 쇼에는 방문객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옷 중에 가장 럭셔리한 옷을 입고 와요. 밴드가 음악 연주도 하고 있고요. 모히토를 마시면서 하루 종일 놀다 가요. 한바탕의 페스티벌이죠. 제가 데리고 갔던 분은 정원 말고 사람을 찍어야겠다고 할 정도였죠.
이 행사는 전문 가든 디자이너들이 자기 제품을 보여주는 쇼라고 할 수 있어요. 또 이 곳은 부스가 아주 많은데요. 이게 바로 비즈니스의 장입니다. 플라워 쇼는 관람객을 모으기 위해 개최하는 게 아니라, 정원 산업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죠."
가든 디자인이란?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정원 디자인에 대해 정확한 개념 정의가 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잘 아는 정원사는 ‘식물을 1년 내내 어떻게 하면 잘 관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관리자에 가깝다. 가든 디자이너는 건축가와 비교하면 된다. 건축가는 지붕이 덮여 있는 내부 공간인 집을 디자인 하는 사람이라면, 가든 디자이너는 집을 제외한 나머지 아웃도어 스페이스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이다. 그 아웃도어 스페이스 안에 정원이 중점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넓게는 담장, 의자, 탁자, 파빌리온, 벽화 디자인 등 전부 가든 디자인의 영역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가든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건축, 원예, 디자인 이 3개 영역을 다 공부를 했어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공부를 해야 돼요. 제가 공부를 하러 갔을 때 38살이었는데요. 제가 꽤 연장자거나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보니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었고 제 또래가 의외로 많았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다른 영역에서 일을 조금 하고 오셔야 그 다음 단계로 정원 디자인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처음부터 이 영역을 공부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돼요."
이어서 저자는 다양한 정원 사진을 보여주며 디자인 과정을 설명했다. 정원 하나를 꾸미기 위해 가든 디자이너가 벽체 디자인부터 식물을 구조적으로 쓸지, 색채로 쓸지 다양하게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즉, 정원 디자이너는 이러한 건축적 요소와 식물적 요소를 아름답고 조화롭게 디자인하는 작업을 한다.
"정원에서 구조물을 없애 보세요. 그럼 그냥 필드예요. 구조물 때문에 정원의 볼륨감이 생겨나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는데요. 가든 디자인을 할 때 초보자들이 가장 우를 범하는 게 있어요. 우리가 도면을 그릴 때 평면도를 그리는데요. 지상에서 수직으로 1미터 정도 뜬 상태에서 내려다보면서 그린 그림이에요. 그러니까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인 거죠. 이 도면을 가지고 패턴을 주면 이건 그냥 피자판이지, 정원의 볼륨을 살릴 수가 없어요. 실제로 내가 일어섰을 때 내 눈으로 무엇이 지나가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예요. 즉, 수직 디자인을 해야 하는 거죠.
저희 정원에도 집에 어울리게끔 수많은 수직의 구조물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거든요. 이게 정원에 깊이를 주기도 하고요. 정원의 방을 계속 생기게 하는 거예요. 이런 걸 잘 구사할 수 있을 때 정원이 훨씬 더 풍요로움을 줄 수 있어요. 디자인적으로 가장 피해야 할 건 그 집에 들어섰을 때 한 눈에 쫙 보이는 정원이에요. 더 이상 그 안에 안 들어가게 되죠. 궁금하지가 않거든요. 계속 궁금하게 만드는 게 핵심이에요. 한 바퀴를 돌고 나왔을 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나온 듯한 느낌이 든다면 정원이 잘 디자인 되어 있는 거예요."
가든 디자이너로서의 역할
마지막으로 저자는 최근 붐이 일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공동으로 꾸며진 ‘마을 정원’을 소개했다. 이 정원은 다른 마을과의 경쟁을 통해서 'Britain in Bloom'에 뽑히게 되면 영국관광청의 지원을 받게 된다. 지역 자체를 지속적으로 융성시키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영국인들은 이러한 마을 공동체를 이루며 전통 가옥에서 살고 있음에 굉장히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배울 만한 점이다.
"몇 년 전에 제 강의를 들으셨던 선생님 중에 대체 의학을 공부하시는 서울대 의사선생님이 있었어요. 그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세요. 심리 치료를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게 그림 그리기래요. 아이들 같은 경우 집 한 채, 손을 잡고 있는 엄마와 아빠, 반짝이는 햇살 그리고 나무 한 그루. 이게 가장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라는 거죠. 신기한 게 아파트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지붕이 들어간 집을 그린다는 거예요. 본인의 집이 아닌 거죠. 그 의사 선생님 말로는 우리가 실은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마음속에서 아파트를 집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래요. 그래서 주말마다 밖으로 나오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른다는 거죠, 집을 찾아서.
이런 상황 속에서 많은 분들이 근대화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세기는 우리가 얻은 건 얻은 거고, 잃은 부분에 대해서는 회복을 하려고 노력해야 되는 세기인 거 같아요. 그 가운데 제가 하고 있는 정원 디자인도 상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차경은 할 수 없고, 서양식 개념을 가져와야 하는데요. 그 개념을 어떻게 가져와야 우리와 조화를 잘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은 여전히 숙제예요. 어쩌면 이번 세기 안에 해결이 안 날 수도 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방법을 찾아가는 게 옳은 거 같아요."
준비된 강의가 끝난 후 모두 정원으로 향했다. 아기자기한 텃밭 정원부터 남편이 목공 일을 하는 작업장까지 구석구석 살펴보며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저자가 이 집을 디자인할 때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이 '설악산 바로 아래 있는 오래된 마을에 있는 오래된 집'이었다고 한다. 정원 디자이너로서 정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주거지와 가장 잘 어울리게끔 시골스럽고 내추럴한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아주 한국적인 정원은 아니며 다양한 국적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드닝 특강과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오경아 저자의 블로그(http://blog.naver.com/oka051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속초로 달려가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되는 분들께 오경아 저자의 『정원생활자』를 먼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한 꼭지씩만 틈틈이 읽으려고 해도 어느새 다음 장을 넘기고 있을 것이다.
http://ch.yes24.com/Article/View/3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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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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