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작가의 명작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또 다시 리메이크되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요즘이다. 가족만을 사랑하다 마지막까지도 가족만을 염려하며 떠나간 세상 하나뿐인 존재, ‘엄마’와의 이별 이야기. 생각만 해도 먹먹한 그 경험을 첫 책으로 엮어낸 신진 작가가 있다. 불문학과 지역학을 전공하고 국제교류 관련 기관에서 일하며 여행과 글쓰기를 취미로 즐기던 30대 여성. 그녀는 엄마와의 너무 이른 이별을 경험한 후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산티아고 800킬로미터 순례길에 홀로 올랐고, 돌아와서는 제주에서 머물며 책을 썼으며,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는데도 삶은 어째서, 어떻게 지속되는가.’ 누구에게나 예정되어 있지만 회피하고만 싶은 그 질문에, 『엄마, 나는 걸을게요』의 작가, 곽현과 함께 다가가본다.
『엄마, 나는 걸을게요』 책 제목이 너무 물컹합니다. 제목의 담담한 어조 때문에 슬픔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작가의 건강함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해요. 실제로는 어떤 마음으로 책을 쓰셨어요?
글을 쓰는 동안 당연히 제목만큼 담담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제 자존심인지, 마냥 개인적인 슬픔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만들기는 정말 싫었어요. 오죽하면 편집 과정에서 편집자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전 슬프지 않고 싶어요.”였으니까요.(웃음) 글을 쓰는 행위가 힘들기는 하지만 스스로 많이 단단해지는 과정이기도 하거든요. 상실을 통한 개인의 성장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전달되었으면 했고, 비슷한 과정을 겪은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길 바랐어요. 그런 담담함이 오히려 슬프게 느껴졌다니, 상실을 이야기하는 글에서 역시 슬픔을 걷어내기는 어려운가 봐요.
이 책은 여행 에세이라고 하기엔 구성이 독특해요. 여행의 장소나 루트가 아닌 여행하면서 작가가 가슴에 품었던 인생 질문들을 하나하나 목차로 잡았는데요, 그 20가지 질문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절박했나요? 아마 글을 쓰기에도 가장 힘든 주제였을 것 같아요.
신문에 서평을 써준 어떤 기자가 이 책을 집어 들었던 이유를, 감사하게도 ‘철든 여행 에세이’라고 표현했더라고요. 사실 여행 장소에 대한 정보들은 이미 출판 시장에 차고 넘칠 만큼 많고, 산티아고 이야기도 책으로 많이 나왔잖아요. 저의 경우는 길 자체보다는 궁극적으로 그 길 위에서 경험한 내면으로의 여행을 진솔하게 담고 싶었어요. 40여 일을 혼자 걸었다고 해서 별안간 굉장히 철들지는 않겠지만, 스스로 조금씩 철드는 과정을 자신에게 하는 질문과 대답이라는 형식으로 담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 가장 절박했던 질문은 아무래도 신은 과연 있는가, 그래서 엄마의 영혼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에 관한 것이었어요. 아마도 상실의 경험을 통해 그 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궁금증을 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주제에 대해 명확한 답을 구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 나름대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지점은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려 800킬로미터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자 혼자 걷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작가님은 혼자 하는 여행의 경험이 많은 편인가요? 혹시 심리치유를 위한 여행법에 어떤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혼자 여행한 경험이 꽤 있는 편이지만 체력적인 부담을 갖고 시작한 여행은 산티아고가 처음이었어요. 그러나 특별히 많은 준비를 하지 않았음에도 가끔은 비실거리는 저도 끝까지 무사히 잘 걸을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누구나 닥치면 하게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여든이 훌쩍 넘으신 할아버지도 잘만 걸으시던걸요.(웃음) 그런데 순례길은 육체적 건강도 중요하지만 내가 인생에서 정말로 구하고 싶은 답이 있거나 내면의 결정적 동기가 있을 때 가야 하는 것 같아요. 각자가 절실한 만큼 걸을 수 있는 힘도 어떻게든 생기고 그 길에서 얻어오는 것도 달라지거든요. 그런 면에서 심리치유를 위한 여행법이나 노하우가 따로 있을까요? 뻔한 답 같지만, 위로가 필요할 때는 자신이 가장 원하는 곳에 가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요. 사실 산티아고 길도 ‘누가 걷고 참 좋다고 해서 갔는데 난 별로더라.’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산티아고는 이미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목표이고 로망이 된 것 같아요. 단순 여행지가 아니라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지점 같은? 당장 내일, 또는 새해에 산티아고로 떠날 계획이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걸은 사람으로서 전수할 꿀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꿀팁까지는 아니고요, 산티아고 길은 너무 많은 계획을 세워서 완벽하게 준비하는 여행보다 조금 느슨하게 편한 마음으로 가시는 것이 어떨까 싶어요. 물론 초행길에 걱정이 돼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준비하게 되겠지만 현지에서는 조금 유연하게 계획도 수정해 가면서 자신에게나 주변에 너그러운 여행을 하면 좋겠어요. 어디서 머물고, 어디서 뭘 먹고, 하루에 얼마를 걷고 하는 타이트한 계획보다는 그간 바쁜 일상에 지쳐 있던 자신에게 편안해지는 시간을 선물한다는 기분으로요. 평소에는 체험하지 못한 특별한 경험들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여행의 조각이 되는 ‘순간’들을 온전히 더 많이 누리시길 바랍니다.
작가님에게 ‘엄마’는 아직 꺼내기 어려운 단어인가요? 아직 말하면 아픈 단어인지, 행복감이 느껴지는 단어인지 궁금해요. 산티아고를 걷기 전과 후, 혹은 이 책을 쓰기 전과 후에 어머니의 부재, 혹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된 점이 있다면 말해 주세요.
엄마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다기보다 아직은 많이 그리워서 마음이 아픈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지막에 엄마가 많이 아프셨던 때의 안타까운 기억보다 이전의 좋았던 기억들의 자리가 더 커진다는 생각은 드네요. 저의 경우,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처음에 한동안은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깊은 상실감에 빠져 어떤 위로도,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성찰도 의미를 갖지 못했어요. 그러면서 엄마가 열심히 믿었던 ‘신’에 대한 제 나름의 납득과 그 세계에서 엄마는 행복하실 거라는 생각을 하며 위안 받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그래, 결국은 나도 죽는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넓은 시각으로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큰 의미에서 모두가 죽는다고 했을 때, 생물학적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언제 다가올지 모를 죽음 앞에서 결국 주어진 것은 ‘지금’이구나 하는 생각. 이건 제가 책 속에서 인용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전장에서 깨달은 바와도 같은 것이었어요. 보편적인 죽음의 문제로 확대해서 보니 내가 겪은 상실의 아픔도 조금은 떨어져서 볼 수 있는 힘이 생겼죠.
네가 삼천 년을 산다 해도, 아니 삼만 년을 산다 해도, 아무도 지금 살고 있는 것 외에 다른 삶을 잃지 않으며, 지금 잃고 있는 것 외에 다른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따라서 가장 긴 삶도 가장 짧은 삶과 결과는 마찬가지다. 현재의 시간은 만인에게 길이가 같고, 우리가 잃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잃는 것은 분명히 한순간에 불과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게 어려운 작업이잖아요. 그것도 슬픔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게 신인 작가로서 무척 힘겨웠을 것 같아요. 중간에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그럼에도 계속 쓰게 한 힘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어려웠죠, 아무래도 슬픈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머리로 쓰는 글이 아니니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글을 쓰는 기간 동안 수시로 엄마 생각도 나고, 예전 추억들이 어느 순간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갈 때는 마음이 많이 울렁거려서 한동안 힘들기도 했어요. 한번은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해서 멈춰지지 않는 거예요. 저 여자는 뭔 일이 있어서 저렇게 서럽게 우나, 싶었는지 옆 사람들도 하나 둘 쳐다보기 시작하는데 마음이 진정이 안 돼서 결국 짐 싸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어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런 힘듦이 저에게는 치유의 과정이었던 같아요. 스스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했고요. 산티아고에 다녀와서 처음 카카오 브런치 카페에 글을 적기 시작했는데 그때 공감해주는 사람들도 생겼고 그 카페에서 주는 작은 상도 받으면서 오히려 글을 통해 힐링이 되고 제가 위안을 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책 속에서 ‘그간 내게 너무 많은 것이 주어졌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게 다 당연했다는 데 원인이 있었다.’고 쓴 문장이 있어요. 서로의 존재가 너무 당연해서 소중함을 모르고 사는 대표적인 관계가 아마 ‘엄마와 딸’이 아닐까 싶은데, 그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신다면?
제 책이라 말씀드리는 건 아니고, 꼭 엄마와 딸이 아니어도 사랑하는 사랑을 가진 누구나가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웃음) 상실의 아픔을 가진 분들에겐 공감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지금 옆에 있는 누군가와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행복이라는 게 사실 별것 아닌데 우리는 늘 더 큰 성취가 전제돼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 같아요. 어쩌면 가장 별일 아닌 순간들이라 여겼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평범한 일상이 큰 행복일 텐데 말이죠. 저는 엄마를 떠올릴 때면 가장 그리운 것이, 엄마가 내게 무얼 해주었거나 어떤 굵직한 사건들이 아니라 그냥 엄마와 나누었던 일상의 소소한 대화예요. 엄마와 나누었던 매일 매일의 대화가 어느 것보다 그리워요. 사람들은 항상 뭐든 잃고 나야 그 소중함을 절실히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지금 당장 당연하게 내 옆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셨으면 좋겠네요. 마지막까지 후회가 남지 않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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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걸을게요 곽현 저 | 도서출판가지
쉽지 않은 물음에 관해 더듬더듬 납득해나간 흔적이다. 떠난 엄마를 그리며 자신에게 건넨 치유의 말이며 같은 빈자리를 안고 살아가야 할 누군가를 위한 작은 위로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jijiopop
2017.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