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가 선보인 파일럿 시사 토크쇼 <거리의 만찬>은 형식이 좀 독특하다. <거리의 만찬>은 당대 화제가 되고 있는 이슈를 다루되, 소위 ‘전문가’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그 이슈를 직접 겪고 있는 이해당사자들의 말을 듣는다. 이를테면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 노조원들이 벌인 13년간의 복직 투쟁을 이야기할 때, <거리의 만찬>은 노사전문가를 초빙해 선진국에선 이와 같은 갈등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따위를 묻는 대신 그냥 노조원들을 찾아 그들의 말을 직접 듣는다. 기계적 객관 대신 명백한 편파를 택함으로써, 그간 매번 발언권을 얻지 못한 채 부당하게 생략되었던 목소리에 힘을 실어 공론의 장으로 올리는 것이다. 녹화를 진행하는 장소도 사뭇 다르다. 이해당사자들을 낯선 방송국 스튜디오로 불러 “자, 이제 너의 말을 해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해당사자들의 주장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현장으로 직접 찾아간다. 남북화해무드로 최전방 주민들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하면, <거리의 만찬>은 정말 강원도 최북단 고성으로 달려간다.
<거리의 만찬>이 택한 마지막 비급은 메인 MC 박미선이다. 세상 어느 토크쇼 호스트가 ‘나는 당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저렇게 온몸으로 보낼까. 박미선은 말하는 상대를 지긋이 바라보고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종종 고개 대신 온 상체를 끄덕이며 상대의 말을 독려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낸 상대에겐 연신 “그렇지.”, “맞아.” 같은 추임새들로 힘을 북돋아 준다. 어쩌면 조금 낯선 광경일지 모른다. 박미선은 커리어 내내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토크로 그 명성이 자자했으니까. KBS <해피투게더>나 MBC <세바퀴>, EBS <까칠남녀> 등에서 보여준 그의 토크는 늘 공손하면서도 한 구석에 그 날을 서늘하게 세워두고 있었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언제든 정색하며 아닌 건 아니라고 끊어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경우를 헤아리는 셈이 분명한 토크. 그러나 <거리의 만찬>에서 박미선이 만나는 사람들은 말하는 게 업인 연예인이 아니라 일상을 사는 시민들이고, 박미선은 그들이 최대한 자기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자신이 경청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쉬지 않고 보여준다. 눈가에 주름이 잡힐 때까지 온 얼굴 근육을 다 써서 웃어 보이며.
올해로 방송 30주년을 맞이한 그다. 말하는 것으로 붙이면 대한민국 그 누구를 데려와도 질 일이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박미선은 <거리의 만찬>에서는 두서없이 나온 상대의 말을 추스러 정리해줄지언정, 자신의 말을 길게 붙이기보다는 상대의 말을 한마디 더 듣는 쪽을 택한다. 모든 대화의 기본은 상대의 말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파일럿 특집 2부작으로 방영된 <거리의 만찬>의 정규편성을 간절히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사람의 곁에 다가가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광경을, 슬프고 무거운 이야기조차 눈가에 주름이 한껏 잡힐 만큼 온 얼굴로 웃으며 들어주는 그 경청의 스펙터클을 다시 보고 싶다.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