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물일곱, 2등 항해사입니다』 는 3만 톤 배를 운항하는 스물일곱 여성 항해사 김승주 저자의 이야기다. 바다 위 삶이 왠지 생소할 것 같지만 극단적 환경에서 매일 ‘혼자’를 견뎌야 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결코 낯설지 않다. 저자는 이런 외로움과 난관을 억지로 극복하지도 피하지도 않고,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는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으면서 묵묵히 헤쳐나갈 뿐이다. 하나의 정답이 아닌 여러 개의 해답을 건네주는 김승주 저자의 삶은 땅을 밟고 있는 이들에게도 큰 용기를 줄 것이다.
항해사란 직업이 다소 생소합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세요.
말 그대로 항해를 하는 사람이에요. 배를 운항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제가 타는 배는 컨테이너선인데, 이 배가 존재하는 건 화물을 목적지까지 실어 나르기 위함이잖아요. 배에서 생활하면서 화물을 싣고 바닷길을 항해하고 다시 화물을 내리는 과정이 안전하게 이루어지도록 관리, 감독하는 일을 해요.
그런 일을 하면서 어쩌다 글을 쓰게 됐나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요.
배를 타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잊히는 것’이었어요. 세상과 단절되고 연락이 뜸해지면서 저의 흔적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라고요. 무서웠어요. 존재의 부재만큼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 건 없더라고요. 아무도 모르게 홀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어딘가에 제가 살아있다는 자취를 남기고 싶었어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죠. ‘나라는 사람이 때론 이런 일도 겪고 이런 생각도 했구나.’ 스스로라도 알 수 있게 말이에요. 글은 저에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줬어요. 나는 무수한 감정을 가진 인간이고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해줬거든요. 삶을 증명하기 위해 글을 썼지만 쓰는 과정을 통해 저를 알게 되고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서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스물일곱 여성 항해사’란 말이 본인에겐 어떤 의미인가요? 스물일곱 여성이어서, 또는 항해사여서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스물일곱, 여성 항해사’라는 말이 저에게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외부에서 저를 지칭하는 표현일 뿐, 그게 온전히 나를 드러내진 않거든요. 하지만 숫자가 의미 있는 세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쉬운 점은 있어요. ‘스물여섯이면 어땠을까?’ 하는. 원래 더 일찍 쓸 생각이었는데 늦어진 거거든요.
‘여성 항해사’라는 말도 솔직히 어색해요. 저는 ‘여성’이라는 생각을 내려두고 ‘항해사’ 혹은 ‘2등 항해사’라는 직책으로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제 직업과 나이, 성별이 그 자체로 영감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래도 나는 그냥 나일 뿐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어요.
직업 특성상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것 같은데, ‘혼자’를 견디는 자신만의 방법을 알려주세요.
저는 그 방법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좋아하는 것을 하면 돼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심리적인 안정은 물론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고요. 일할 때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해요.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목표나 보상을 생각하지 않아도 순수한 활동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말이에요. 혼자인 시간을 ‘견디는’ 법에 대해 얘기했지만, 혼자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어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이때 알게 되었거든요. ‘진정한 나’는 모든 것이 차단되었을 때 문을 두드려요. ‘너는 누구니?’ ‘왜 여기 있니?’ ‘무엇을 좋아하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가끔 불편한 질문들도 다가왔지만 피하진 않았어요. 그렇게 나와 얘기를 나누고 나니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마구 떠오르더라고요.
남들은 당연하게 누리는 걸 배에서는 거의 못 하잖아요. 속상하거나 억울하진 않으세요? 그럼에도 배를 계속 타게 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누릴 걸 못 누리며 내 청춘이 날아가는 것 같고, 정체된 채로 홀로 늙어가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안 좋은 점을 따지면 끝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점을 생각해봤어요. 배에 있으면 하고 싶은 걸 못하지만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의 휴가는 꿀맛 같아요. 휴가를 나오면 승선일까지 평일, 주말 상관없이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원하는 대로 보낼 수 있거든요. 꽤 긴 기간 동안 직장에 대한 아무런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요. 진득하게 여행을 다녀와도 되고 시간에 얽매이지 않아요.
배 타는 삶이 좋아진 건 소중한 사람들과 휴가를 즐겁게 보내면서였어요.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건 나의 일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마음을 먹고 배를 타니 배 안에서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보였어요. 바다는 저를 가둔 게 아니라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죠. 결국 마음의 문제인 것 같아요.
배를 타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가장 힘든 순간은 초임 3항사로서 처음 배를 탔을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배가 어떤 곳인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모든 것이 낯설었고 다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도 못 하겠고, 스스로가 한심했거든요. 알고는 있었지만 남에게 ‘실망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무너졌어요. 그날은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하소연할 곳도 없었고, 더 안 좋게 볼까 봐 무서웠죠. 책임의 무게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어요.
하지만 내가 선택해서 발을 들인 만큼 포기할 수 없었어요. 물러설 곳도 없었죠. 제 상황을 생각하자 어쩔 수 없이 나아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모든 사항을 메모하고 실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어요. 다행히 시간과 경험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더라고요.
앞으로 남은 20대를 어떻게 보내고 싶나요?
뭐든 해볼 거예요. 배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오히려 항상 곁에 있던 기회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됐어요. 많은 것들을 해보고 능력을 신장시키면서 억울하지 않게 20대를 보내고 싶어요. 20대는 개척의 시기라는 말이 있듯이 제가 가진 에너지를 최대한 발휘해서 한계에 도전하면서 성장하고 싶어요. 30대도 20대의 연장일 뿐 젊다고 생각해요. 계속 도전하고 나아가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들이 단단히 뿌리내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20~30대 또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도 길은 있어요. 보이지 않을 뿐. 그래서 어떤 곳도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반대로 어느 곳이든 정답이 될 수 있어요. 내가 내딛는 그 길. 일단 한 발 내딛으면 길이 보일 거예요. 파도는 끊임없이 와요. 시련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편안해 보이는 어떤 길도 나름의 고통을 수반하고 있죠. 중요한 건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용기라는 생각을 해요. 거창한 목표가 없어도 돼요. 그저 오늘의 바다에서 파도를 맞으며 항해하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해 있을 거예요.
*김승주
1993년생. 고려해운 2등 항해사이다. 한국해양대학교 해사수송과학부를 졸업 후 컨테이너선 항해사가 되었다. 현재 27,799톤의 배를 운항 중이다. 배를 탄 후 땅을 밟은 날보다 바다 위에서 보낸 날이 훨씬 많다.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 선원 중 혼자 여성이라는 상황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왔고 여전히 노력 중이다. 외로울 땐 양팔을 둘러 스스로를 안아줬다. 큰 파도를 만나면 배에 달린 불빛만을 바라보며 견뎠다. 여전히 보이는 길과 보이지 않는 길 사이에서 방황하는 스물일곱 살이지만 오늘의 바다에서 오늘의 파도를 맞을 준비를 한다.
브런치, 인스타그램 : @sealove-ksj
유튜브 : 꿈꾸는 항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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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물일곱, 2등 항해사입니다김승주 저 | 한빛비즈
조금 느리고 서툴러도 자신만 믿으면 언젠가 이 파도가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하나의 정답이 아닌 여러 개의 해답을 건네주는 바다 위의 삶은 땅을 밟고 있는 이들에게도 큰 용기를 줄 것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