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창에 ‘보라보라섬’을 검색하면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남태평양의 지상낙원”, “꿈의 여행지”, “럭셔리 신혼여행”과 같은 표현이 줄지어 등장한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소시에테 제도에 있는 조그마한 섬 보라보라는 ‘태평양의 진주’로 불리며 휴양지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우리만 아는 농담』 의 김태연 작가는 외딴 바다 마을에서의 간소하고 잔잔한 삶을 꿈꾸며 집을 떠나 섬에서 10여 년을 살았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는 한편, 마음먹은 대로 굴러가 주지 않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 이러한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 담담하고도 단단한 마음으로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라고 체념하듯 내뱉으며 오늘의 행복을 꽉 붙드는 사람, 김태연 저자를 만났다.
첫 책을 낸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해요. 다른 형태지만 꾸준히 글을 써오셨고 지금도 글을 쓰고 계시는 상황에, 단행본을 출간한 기분이 어떠신가요?
『어라운드』 매거진에 처음 글을 썼던 게 5년 전이었어요. 매달 쓴 것은 아니지만 작년 말까지 틈틈이 썼기 때문에 사실 단행본을 내기 충분한 분량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올 초에 출판사에서 새로운 글들이 더 필요하다고 해서,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로는 ‘망했다’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글을 쓸 때 물리적인 시간도 많이 필요하지만 정서적으로 너무 괴로워하는 스타일이라, 그걸 또 해야 한다니 좀 좌절스러웠달까요. 그래서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웃음)
김도영 감독은 추천사에 “따뜻하고 평화롭고 풍요로운 문장이 삶에 지친 이에게 작은 위로를 던져준다”고 썼는데요. 작가님의 글은 유난히 마음을 찡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평소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을 기울이시는 편인가요?
아니요. 오히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아차리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위로를 나누려는 선한 의도에서 그렇게 한 적은 별로 없어요. 중고등학교 때 부모님과 떨어져서 친척 집에서 살았던 경험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은데요. 그분들께서 저에게 잘 대해주시는 것과 무관하게, 눈치 보는 아이가 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런 습관이 글을 쓸 때는 도움이 되기도 하죠. 이런 표현에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불편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오만 눈치를 다 보다 보니까 조금은 더 다가가는 글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독자의 눈치를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소신 있는 바보’가 되는 것이 제일 무섭거든요. 근데 저는 이미 바보이기 때문에 눈치라도 보는 거죠.
책에서 가족 이야기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우리의 엄마 아빠 같아서요. 책을 받아보고 어떻게 반응하셨는지 궁금하네요. 남편은 뭐라고 했나요?
『어라운드』 매거진에 글을 쓸 때부터 독자분들께서는 가족 이야기에 많이 공감해주셨어요. 개개인은 이렇게나 다른데 왜 가족들은 어딘가 조금씩 닮은 구석이 있는 걸까요? 아빠는 책을 아직 안 읽으셨고 엄마는 받자마자 한 번에 다 읽으셨는데, 제가 보기엔 무척 복잡한 감정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던 딸이 처음으로 결과물을 들고 온 것은 장한데, 그 안의 내용은 너무 아프고. 남들한테는 별일 아닌 일도 엄마한테는 하나하나 다 걸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책에도 쓴 것처럼, 엄마와 진짜로 무언가를 쌓아가기 위해서는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는 지금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남편이야 뭐 마냥 좋아하죠. 책을 내면 돈을 많이 버는 줄 알더라고요. 하하.
요즘 제주도, 치앙마이 등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한 달 살기’가 유행인데요. 누구나 한 번쯤은 어딘가로 훌쩍 떠나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왜 하필 보라보라섬을 선택하셨나요? 신혼여행지로 많이 거론되는 일명 ‘환상의 섬’인데, 진짜 환상의 섬인가요?
친구가 며칠 전에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돌아왔어요. 언제까지 도망 다닐 수는 없으니 자수하는 마음으로 돌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친구는 떠나기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대요. 물리적인 문제들이야 여전히 그대로고, 불안이나 우울 같은 심리적인 부분은 되레 커졌다고 해요. ‘여기가 아닌 그곳에서 행복을 찾았다’ 같은 드라마틱한 일은 정말 있는 걸까요? 저도 보라보라섬에 살면서 사람 사는 데는 어디든 똑같다는 것만 깨달았거든요. 탈조선, 헬조선 하지만 저 자신만은 어딜 가도 계속 저를 따라오니 탈인간을 하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친구를 보면 무언가를 했다는 그 자체가 주는 위안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나를 위해 좋을 것 같은, 나만을 위한 선택을 해봤다는 것. 그냥 그것만으로요.
끊임없이 성장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에 지쳐 자신만의 길을 자신만의 속도로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꿈이 없어도 괜찮다’는 말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학교 수업 중에 다 같이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만든 사람과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이 있거든요. 첫 작품과 두 번째 작품 사이에 거의 10년이라는 공백을 가졌던 어떤 감독님께 제가 질문을 드렸어요. ”영화를 만들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견디셨나요?” 그랬더니 이렇게 답해주셨어요. ”어떤 꿈도 인생 그 자체보다 가치 있지는 않아요. 꿈의 실패가 내 인생의 실패는 아니라는 것을 늘 상기하려고 노력해요. 그걸 잊지 않아야 해나갈 수 있어요.” 저 역시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 어떤 꿈이라도 삶보다 중요한 건 없다. 꿈의 바깥에도 삶은 있다. 이런 마음이요.
누군가로부터 “어디에 있든 계속해서 글을 써달라”는 말을 들으셨다고요.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제목만 미리 생각해놨어요. “결혼하고, 따로 삽니다.” 삶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잖아요.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는데, 유독 결혼만큼은 여전히 보수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결혼했으니까 해야 하는 것,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잖아요. 이 책을 쓸 기회가 생긴다면, 붙어산 시간보다 떨어져 산 시간이 많은 우리 부부와,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의 결혼과 비혼 이야기를 솔직하고 재미있게 써보고 싶어요. 어디서도 내주지 않는다면 독립 출판을 해야겠죠. 새롭긴 하지만 나쁘지 않은 시도가 될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이 『우리만 아는 농담』 을 읽어주셨으면 좋겠나요?
저는 글을 쓰다가 자신이 없어지면 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는 상상을 해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어쩌면 그 사람도 자기만의 문제로 고군분투하고 있겠지, 사는 게 치사하고 외롭지만 그래도 자신이 가진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겠지- 하고요. 그냥 그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좀 용기가 나는 것 같아요. 제 편지가 정말로 그분들에게 도착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여름인 남태평양의 외딴섬 보라보라에서 9년을 살았다. 맨몸으로 바다를 헤엄치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별자리를 바라보며 온갖 나무와 꽃 이름을 알게 되는 근사한 삶을 꿈꿨지만, 사실은 암막 커튼 쳐놓고 넷플릭스 보는 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먼 북소리가 아닌 인생 종 치는 소리가 들려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라이프스타일 잡지에 ‘보라보라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약 4년간 칼럼을 연재했다. 지금은 잠시 섬을 떠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으며, 다시 심심한 세계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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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김태연 저 | 놀
망고나무를 키우고, 패들보드를 타고 친구의 바비큐 파티에 놀러 가고, 뒷마당에서 민트를 뜯어다 모히토를 만들어 마시고, 뒷마당에 나가 은하수 아래에서 별빛에 저녁을 먹고, 집에서 1분만 걸어 나가면 바다가 있는 그런 삶이, 보라보라에 있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