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글로벌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디자이너는 400여 명. 그중에서도 이정현 디자이너는 독보적인 존재로 손꼽힌다. 누구보다 평범한 공대생이었던 그가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했을 때 누구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유명 대학 디자인학과 교수들에게 무작정 메일을 보내 자문을 구하고 결국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볼보에 입사해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고 있다.
『볼보 그리는 남자』 는 이정현 디자이너가 볼보에 입사해 리드 디자이너로 활동하기까지의 에피소드와 그의 대표작이자 볼보의 베스트셀러 모델인 뉴 XC60을 디자인한 과정, 현직 디자이너로서 그가 발견한 볼보의 가치와 매력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가 된 이정현 저자에게 그간의 여정에 관해 물어보았다.
서른 넘어 볼보 자동차 디자이너가 됐죠. 뒤늦게 꿈을 찾아 자동차 디자이너가 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기계공학부에서 기계설계학을 전공한 제가 뜬금없이 자동차 디자이너가 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응원보다 걱정을 더 많이 했어요. 저 역시도 확신이 없었고 세상일이 의지와 열정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에 막막한 기분이었죠. 하지만 긴 과정을 거쳐 볼보에서 본격적인 양산 프로그램 업무를 하면서 ‘기계를 전공한 디자이너’라는 이력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안전성을 우선하는 볼보였기에 엔지니어와의 협업이 더욱 강조됐고, 대학 시절 공부한 공학적 이해가 엔지니어와의 소통에 있어 큰 역할을 했어요.
볼보에 포트폴리오만으로 입사한 것으로 유명해요. 면접도 없이 어떻게 붙을 수 있었나요?
흔치 않은 상황이라 입사 후에 저를 뽑아준 디렉터에서 물어봤어요. 디자인 테이스트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볼보에 지원하는 대부분의 포트폴리오가 컴퓨터 작업이었던 것에 반해, 손으로 작업한 결과물과 컴퓨터 작업이 함께 구성된 포트폴리오라는 점이 독특해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재밌는 건 비전공자로 우메오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었던 이유도 똑같았어요. 지금은 저도 컴퓨터 작업을 더 많이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컴퓨터 작업이 익숙지 않았기에 제가 잘할 수 있는 수작업을 많이 넣었던 것인데 단점이라고 생각한 부분이 장점이 되었던 경우예요.
볼보 디자인 스튜디오 분위기는 어떤가요?
볼보 디자인 스튜디오는 인종과 나이에 상관없이 동료들끼리 친구처럼 지내고, 인턴부터 시니어까지 직급과 관계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반영합니다. 인턴의 아이디어라도 좋으면 바로 적용되기도 하고요.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소위 말하는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컴퓨터 모델러나 클레이 모델러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편인데, 이러한 관계가 업무 능력과 협업의 능률을 최대화하는 데에도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도 경쟁이 치열할 텐데요. XC60도 엄청난 경쟁을 뚫고 디자인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물론 그렇습니다.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모든 디자이너가 디자인 안을 제시하고, 발전 단계를 거듭하며 최종안을 추려 나가는 방식이에요. 뉴 XC60 역시 스웨덴 본사뿐만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 지사, 중국 상하이 지사의 모든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경쟁에 돌입했죠. XC60의 경우, 다행히 첫 발표부터 순조로웠어요. 디자인 수장이었던 토마스 잉겐라트가 첫 스케치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지금 네가 보여준 스케치가 내가 생각해 왔던 XC60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하더라고요. 첫 단추를 잘 끼운 덕분에 수정을 거듭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최종 8개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도로 위를 달리는 생명으로 탄생했죠.
현직 디자이너로서 볼보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볼보가 가진 가치관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볼보에 입사하기 전에는 볼보가 내세우는 ‘안전’이라는 키워드가 단순한 마케팅의 일환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차가 달라 봤자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비슷한 엔진에 비슷한 부품,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으니 안전도 역시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하지만 볼보에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인간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까? 인간이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자동차를 탈까? 자동차가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가?’를 고민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말이죠.
여느 자동차 디자이너들처럼 저 역시 언젠가는 나만의 시그니처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하지만 볼보 자동차를 디자인하며 볼보가 오랫동안 지켜온 가치관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장 ‘볼보다운’ 차를 만드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저를 비롯해 가족 구성원 다수가 볼보 자동차를 타고 있어요. 가족의 안전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요. 볼보를 운전하고 있노라면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 차가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이유 있는 듬직함이 느껴져요.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과 자동차 디자이너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이 책을 많이 볼 것 같은데요.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먼저 남을 의식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디자이너의 삶은 기본적으로 거듭되는 경쟁의 연속입니다. 경쟁을 생활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남을 의식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죠.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에 관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협업의 결과물이에요. 디자이너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므로 혼자만의 성과가 아니라는 것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잘 듣는 것입니다. 말을 잘하는 것은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능력 중 하나에요. 논리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득시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디자이너는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동료 디자이너, 타사 디자이너, 고객, 엔지니어, 경영진 등 다양한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만의 필터를 거쳐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잘 듣는 것이 잘 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초석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이 책은 비하인드 스토리 모음집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 제 경험이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러나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관한,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관한, 볼보라는 브랜드에 관한, 그리고 모두가 안 된다고 했던 꿈에 한 걸음 가까워진 한 사람에 관한 작은 파편은 되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조각들을 그러모아 꿈꾸고, 부딪치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 이정현
볼보 최초의 한국인 디자이너. 면접도 테스트도 없이 포트폴리오만으로 볼보에 입사해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입사 3년 만인 2012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볼보의 베스트셀러 모델 XC60의 메인 디자이너로 이름을 올렸다. 현재 볼보 LA디자인센터에서 리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건국대학교에서 기계설계학을 전공하고, 20대 중반까지 남들이 가는 길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다가 졸업할 시기가 되어서야 뒤늦게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기 시작했다. 영어도 서툴고 디자인 프로그램 하나 다룰 줄 몰랐지만 스웨덴 우메오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매일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치열하게 유학 생활을 마치고 2010년 볼보에 입사했다. 볼보에서 일하는 동안은 가장 볼보다운 차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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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 그리는 남자이정현 저 | 매일경제신문사
이정현 디자이너가 볼보에 입사해 리드 디자이너로 활동하기까지의 에피소드와 그의 대표작이자 볼보의 베스트셀러 모델인 뉴 XC60을 디자인한 과정, 현직 디자이너로서 그가 발견한 볼보의 가치와 매력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