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로 50만 독자의 마음을 다독인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가 신작 『명리심리학』 으로 돌아왔다. 정신과 의사가 사주팔자라니?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수십 년간 업(業)으로 몰두해온 정신의학에 자신을 가둬두지 않고, 내담자의 깊은 상처를 더 잘 헤아리기 위해 전혀 다른 학문에 몰입하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는 그녀. 양창순 박사가 안내하는 명리학과 정신의학의 위대한 만남 속으로 함께 여행해보자.
주역을 접목한 논문으로 두 번째 박사 학위를 받으셨다니, 독특한 이력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특별히 주역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한 나라의 문화가 정신과 치료에 미치는 영향을 토론하던 자리에서 어느 외국인 의사가 제게 말하더군요. 동양인들, 그중에서도 많은 한국인이 심리적으로 어렵거나 삶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정신과보다는 점을 먼저 보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요. 그러면서 정신과 의사로서 당연히 그들의 심리를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고 되물어왔습니다.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었습니다. 평소에 제가 고민하던 문제이기도 했고요. 실제로 제 임상 경험에서도 점을 보러 가서 듣게 되는 이야기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점집에서 자신이 2년 후에 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 죽을 것 같이 불안하다는 여성, 사이가 나쁜 딸이 너무 미워 고민이었는데 점집에서는 서로의 사주가 한 집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 괴롭다는 어머니 등등. 그런 그들에게 무조건 '믿지 말라'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더군요. 최소한 그런 이야기가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아야 잘못된 부분도 짚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산부인과 전문의인 선배로부터 우연히 명리학을 공부해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훌륭한 선생님도 소개받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좀 더 이 학문에 대해 근원적으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주역도 공부하게 되었고요.
공부를 하면서 보니 명리학은 동양의 성격학이고 주역은 동양의 리더십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균관대학원 박사 과정을 통해 훌륭한 지도교수님 밑에서 주역과 정신분석학적으로 한 개인의 특성, 특히 리더십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연구해서 논문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통과되어 임상에서도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임상심리학자와 함께 명리학이 서양의 성격 및 대인관계 분석 도구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논문 또한 연구해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진료 과정에서 정신의학과 명리학을 통합해 개인을 분석하면 어떤 장점이 있나요?
사실 살면서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상담 중에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안되는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 겪는 이 문제가 어디까지 나의 문제인지를 아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 역시 참 힘들어요.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인간관계에서도 100% 상대만의 문제로 갈등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제가 그동안 집필한 책에서도 강조해온 것처럼 가로와 세로가 만나 점이 생기듯이 나의 문제와 상대의 문제가 열쇠와 자물쇠처럼 맞물릴 때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죠.
문제를 풀기 위한 첫걸음은 내가 누구이고 내 문제는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의학에서 이 과정은 심리검사와 상담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서양의 학문인 정신의학은 세밀하고 심층적이지만 역시 의학인 만큼 그 과정이 때로는 고통스러울 만큼 아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병을 낫게 하려고 병원엘 가지만 검사하고 주사 맞는 과정은 또 아픈 것처럼요. 그런데 같은 문제라도 명리학적으로 이야기해줄 때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신의학적으로 자기중심적이라는 분석에는 화를 내던 사람도 명리학적으로 이 같은 기질을 타고났다고 하면 바로 인정하는 것을 봅니다.
그 이유로는 우리의 집단 무의식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프로이트가 우리의 무의식을 이야기했다면 융은 그 개념을 확대해서 인류가 지구상에 생겨난 이래 경험한 모든 것이 우리 뇌에 저장되어 있다고 하며 집단 무의식을 주장한 것은 잘 알려져 있죠. 그런데 우리에게는 바로 사주팔자라는 것이 집단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팔자소관’을 운운하며 살아가는지를 생각해 보면 아마 더 쉽게 이해가 되실 거예요. 명리학은 또한 자연에서 온 학문이어서 좀 더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나 싶습니다. 농경사회에서 비롯한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천인합일’ 사상의 영향으로 명리학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다만 제가 치료에 명리학을 매번 활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이 정말 강해서 치료가 힘들 경우에 주로 활용합니다.
진료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정신의학의 상담이나 심리검사는 근본적으로 자기 보고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어느 학자가 ‘인간에게는 두 가지 모습이 있다. 하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 다른 하나는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모습’이라고 말한 것처럼 정신의학은 ‘내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명리학은 마치 DNA처럼 가지고 태어난 보다 더 원석과 같은 기질을 살펴보게 합니다. 이로 인해 때로는 내가 보지 못했던 내 모습을 발견해내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을 집 안 청소를 하다가 지하실이나 창고에서 선조가 저장해두었던 보물을 발견하는 것에 비유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명리학적으로는 대단히 창의적인 사람인데 현실적으로는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담해보면 대개 몇 번의 실패와 실수로 움츠러들어 있기 때문이었죠. 이럴 때 '당신은 이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해주면 생각보다 큰 힘을 얻는 것을 종종 목격합니다. 물론 심리학적으로도 잠재능력을 평가하는 도구가 있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명리학적으로 말해주면 더 힘을 내는 사례가 많습니다. 또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몇 년 후에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면 대개는 그 어려움을 극복해나갑니다. 제가 말한 그해가 되면 '정말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라며 고맙다는 이야기도 기분 좋게 나누곤 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어느 학문이나 공통의 역할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 자기를 알게 해주고 희망을 주고 격려해준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정신의학은 마치 설계도면처럼 이것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것이고, 명리학은 입체도면처럼 통합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다를 뿐이죠. 그리고 저로서는 상담을 하며 자기 스스로 문제를 극복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명리학이 이 책을 보며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명리학을 처음 접한 개인이 사주를 공부하며 유념할 점이나, 특별히 주목하면 좋은 점 등 몇 가지 팁을 주신다면요?
모든 역사 속 유명한 명리학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디 겸손하고 세밀하게 살피라는 것입니다. 겨우 여덟 글자로 한 개인의 전부를 다 알 수 있는 것처럼 자만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할까요. 어느 학문이든지 배우면 배울수록 결국은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명리학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단지 무슨 오행이 몇 개 있다, 그러니 ‘나는 어떤 사람이다’ 하며 단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양자물리학자 중에는 '우리가 보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단지 비유에 불과한데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실체로 착각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목(木)'의 사주라고 해서 그게 그냥 '나무'라고만 해석해서는 곤란한 것이죠. 자연 현상에서 목의 특성은 무엇인지, 수(水)의 특성이 무엇인지, 화(火), 토(土), 금(金)의 특성은 각각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보는 연습을 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출간 전 한 포털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공부 잘하는 사주는 따로 있다’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선생님께서 여러 임상을 통해 살펴보실 때 한 사람의 적성을 찾을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요?
언젠가 자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몇 살에는 무엇을 가르치고, 또 몇 살에는 어디를 보내고 하면서 평생 계획을 세우는 부모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계획대로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인생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이가 어떠한 특성을 가졌고 또 무엇을 원하는지 부모가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아이의 삶을 계획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므로 아이가 어릴 때부터 부모와 많은 대화를 통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해보도록 교육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다음에는 정신의학적 분석을 통해 아이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좌뇌가 더 우수한지, 우뇌가 우수한지 등을 말이죠. 이후 적성검사를 해서 아이가 원하는 것과 부모가 원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아이가 자기 적성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등을 살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명리학적 분석을 더해 타고난 자연 그대로의 잠재 능력을 살펴보면 그 아이에 대한 대단히 입체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제 임상 경험을 통해 보면 도저히 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사업을 해서 실패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거절도 못 하고 귀도 얇은 사람이 부모의 강권으로 가업을 이어받아 실패한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저를 찾아왔기에 제가 명리학적으로 살펴보고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당신은 외교관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러자 그가 어린 시절의 꿈이 외교관이었다며 안타까워하더군요.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 아이가 마음을 열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아이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다음으로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이 중요합니다. 상담하다 보면 정말 아이가 원하는 것과 다른 길을 강요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럴 때 서로 간 대화를 통해 이해하는 과정만 거쳐도 적절한 의견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길이 정해져 있다면, 그 사주에 순응하며 사는 삶이 최선인 걸까요?
'순응한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그냥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기의 그릇, 자기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인데요. 사주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오행이라는 단어 그 자체가 '변화하고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즉, 명리학에서 말하는 사주는 자기의 틀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나 그것이 100% 변화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의 심상으로 어느 정도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비유적으로 말해보자면 우리 중에는 유리잔으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찻잔으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리잔으로 태어난 사람이 '나는 유리잔이 싫어!'라면서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함부로 다루면 어떻게 되나요? 당연히 유리잔이 깨어지거나 더러워지겠죠. 하지만 유리잔으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 순간 유리의 가장 큰 속성인 빛나는 모습을 갖출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진짜 보석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 '순응'입니다. 제가 돈을 벌고 싶다고 사업을 한다면 그건 제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입니다. 저야말로 그런 능력은 없으니까요. 그러니 학자로서, 정신과 의사로서 저의 삶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죠.
명리학을 ‘미신’으로 보는 시선도 분명 존재합니다. 끝으로 명리학을 둘러싼 오해에 관해 꼭 전할 말씀이 있다면요?
저도 이 공부를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오래전 저와 같이 일하던 임상심리학자가 제게 이 공부를 권할 때, 저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아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무슨 자연의 기가 인간의 특성을 좌우해?' 하고요.
정신의학을 공부할 때도 젊은 날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왜 그렇게 약물 하나, 용량 하나를 세심하게 살피고 또 살피는지를 말입니다. 젊은 치기로 '난 척 보면 알겠는데' 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제가 전문의가 되어 수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까 선생님들이 왜 그러셨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삶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여러 변수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경험을 하면 할수록 내가 작아지는 것을 느끼고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게 너무도 많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요. 그러면서 내가 아는 학문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에도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명리학은 동양의 역사와 함께 한 학문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제가 단지 모른다는 이유로 공부도 해보지 않고 미신이라고 했다는 게 나중에는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공부해보니 명리학은 탄탄한 원리를 갖춘 학문입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한 것이죠. 명리학은 원래 자연학입니다. 우리가 날씨를 보고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추수할지를 아는 것처럼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언제 앞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언제 일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를 할지 알아가는 것은 분명 중요한 과정입니다. 어떻게 내 삶을 디자인할 것인지 도움을 주면서 그 과정에서 희망을 주는 학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학문이든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빅데이터 시대에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충분히 알고 생각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명리학에서도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정신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과 의사들이 흔히 맞서는 편견 중에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평생 낙인이 찍힌다', '정신과 약물은 부작용이 많고 한번 복용하면 끊을 수 없다' 등이 많습니다. 이 경우 전문가를 통해 제대로 된 정보를 전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명리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지식이든 그것을 대하는 나의 심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 양창순
정신건강의학과ㆍ신경과 전문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양의 정신의학만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한계를 느껴 ‘주역과 정신의학’을 접목한 논문으로 성균관대학원에서 두 번째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의료원 연구강사, 미국 HARBOR-UCLA 정신의학과 방문교수, 서울백제병원 부원장 등을 거쳐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인드앤컴퍼니, 양창순 정신건강의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이며, 미국 정신의학회 국제회원 및 펠로우, 미국 의사경영자학회 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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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심리학양창순 저 | 다산북스
의학박사이자 주역과 정신의학을 접목한 논문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은 양창순 박사가 수십 년간 현장에서 임상을 통해 길어 올린 치유의 힘을 집대성한 보고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