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도 이런 회사가 있다고?” 이정연 작가가 『천장이 높은 식당』의 초고를 쓰던 2015년 겨울, 원고를 읽고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다. 직장 내 성폭력과 갑질을 다룬 이 소설을 두고 주변 사람들은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등장인물이 너무 수동적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정연 작가는 덜 쓴 원고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내가 보고 느끼는 세상이 그렇게 고루한가?’, ‘내 능력이 부족해서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걸까?’ 결국 작가는 1년간 집필해온 소설을 덮어야 했다.
그리고 2년 뒤 2018년, ‘미투’와 ‘갑질’이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현실은 소설보다 참혹했다. 일반 기업을 비롯하여 문화예술계, 심지어 학교에서까지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정연 작가는 다시 펜을 들었다. 아직 다 쓰지 못한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가까이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소설가 이정연은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를 써내려 갔다.
그렇게 완성한 첫 장편소설 『천장이 높은 식당』은 출간 전부터 한겨레문학상, 세계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에 최종 노미네이트 되며 시의성과 완성도 면에서 심사위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정연 작가를 만나 『천장이 높은 식당』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물었다.
『천장이 높은 식당』은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이죠. 처음 뵙는 독자분들에게 작품을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이정연입니다. 지면으로 인사를 드리려니 낯설기도 하고, 많은 독자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네요. 『천장이 높은 식당』은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인 두 여성 노동자가 하나의 영양사 자리를 두고 경쟁하다가, 차츰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부조리에 맞서는 이야기입니다.
직장 내 성폭력과 갑질을 주제로 소설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소설을 쓰기 전에 두 곳의 회사에서 근무했어요. 첫 회사에서는 대학을 휴학하고 파견직으로 일했고, 두 번째 회사에서는 12년 넘게 정규직으로 근무했죠. 두 곳 모두 이른바 권위적인 남성 조직이었는데 그곳에서 크고 작은 성폭력과 갑질을 목격했고, 또 직접 겪었어요. 손이나 어깨를 아무렇지 않게 건드리거나, 회식 자리에서 같이 춤을 추자고 하거나, 몰래 만나자고 제안하는 상사들이 종종 있었죠. 당시 파견직이거나 혹은 신입사원이었던 저는 크게 화를 낼 수 없었어요. 또 문제가 될 법한 사안인데 거부하지 못하고 결재문서를 올려야 할 때도 있었고요. 생각해보면 모두 권력에 의한 문제였어요.
부끄럽지만, 조직에 어울리지 못하는 예민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아서 그런 위험을 나름대로 ‘현명하게’ 피하는 요령을 터득해갔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느꼈던 죄책감, 그리고 비겁하게 피했다는 감정이 『천장이 높은 식당』을 움트게 했고요.
주인공의 직업이 ‘영양사’라는 게 독특한데요, 누구에게나 익숙한 직업이지만, 일터마다 한두 분밖에 없어 그 고충을 알기 어려운 직무라고도 생각해요. 어떻게 주인공의 직업으로 영양사를 택하게 되셨나요?
파견직으로 근무하던 당시 사무 일용직이었어요. 행정 보조라는 본연의 업무 외에도 간식 캐비닛을 채우고, 부서원에게 구내 식권을 사다주는 일도 같이해야 했죠. 자연스럽게 매점과 구내식당에 자주 들렀고, 그때 식당 영양사와 자주 얘기를 나눴어요. 그분도 파견직이라 저와 대화가 잘 통했어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한 거죠. 그분은 임산부였는데, 입덧이 굉장히 심했는데도 업무 평가가 안 좋게 나올까 봐 티도 못 내고 식당에서 버티며 힘들어했어요.
그다음 회사에서는 영양사가 교체되는 일이 빈번했어요. 파견업체가 바뀌거나 평가 결과 때문에 교체되는 거였는데, 한 번은 성추행 사건으로 사내가 시끄러워지는 바람에 퇴사 조치 되었던 적이 있어요. 어처구니없지만 가해자는 몇 개월 지방으로 전보 처리된 것으로 끝이 났고요.
이런저런 일을 보고 겪으며 사내 식당이란 장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구성원들에게 맛있고 따듯한 음식을 제공해 위로와 휴식을 주는 장소인 동시에 비정규직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곳이라는 게 모순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죠. 불합리한 일을 겪어도 대부분은 수용하고 참아내거든요. 절대 반기를 들 수 없는 약자의 위치니까요. 그래서 두 주인공의 직업을 파견직 영양사로 설정했어요. 멀리서 보면 일의 주도권이 주어진 전문직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잖아요. 그 아이러니를 소설에 드러내고 싶었어요.
이 소설을 쓸 때 힘들었던 건 사실 큰 사건, 이를테면 추행이나 갑질 같은 부분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보다 두 화자의 심적 변화를 표현하는 게 가장 어려웠죠. 자칫 잘못 그려지면 독자를 설득하지 못하는 현실성 없는 스토리가 될지 몰라서요.
하나의 자리를 두고 재직자 ‘승연’과 전임자 ‘신유라’가 경쟁을 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죠. 현실의 직장 생활에서라면 둘 중 한 사람이 이 ‘의자뺏기’ 게임의 승자가 되는 게 일반적일 거예요. 하지만 『천장이 높은 식당』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돕습니다. 두 여성 노동자가 연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연대의 힘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시나요?
소설의 중반까지 승연과 신유라는 서로를 경계해요. 회사에 영양사 자리는 하나인데, 사람은 두 명이니 당연히 경쟁 구도가 되는 거죠. 특히나 직장을 다시 구하기 어려운 경단녀와 억울하게 자리에서 쫓겨난 전임자라면 싸움은 피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둘은 살아온 방식은 다르지만 직장에서 처한 상황은 같거든요. 둘 다 애초에 남의 자리를 뺏을 만한 인물들도 아닌데, 회사가 고의로 두 사람을 공생하지 못하게 만든 거고요. 어쩌면 서로에게 분노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두 사람 모두가 이 게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했죠. 오랜 고민 끝에 같은 위치에 있는 두 인물이 연대한다면 다른 가능성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소설을 고쳐나갔어요. 두 인물의 전혀 다른 성격이 연대함으로써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기대를 한 거죠. 딸을 지키고 생계를 유지하려는 내적인 에너지가 강한 승연과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해 이전의 삶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강한 신유라, 두 사람이 내는 긍정적인 시너지를요.
2017년 문예 중앙으로 등단하셨어요. 데뷔작인 〈2405 택시〉의 주인공은 싱글맘인 여성 택시운전사예요. 『천장이 높은 식당』의 주인공 ‘승연’도 딸을 홀로 키우고자 분투하는 경력단절 여성이고요.
음, 저도 모르게 시선이 머무는 지점이 늘 ‘일하는 여성’이었어요. ‘여성’과 ‘일’을 같이 생각했을 때 먼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가 ‘유리천장’이나 ‘워킹맘’, ‘경력단절 여성’이에요. 그다음으로 지금의 일하는 여성을 생각해보면, 전통적으로 사회가 바랐던 여성상(모성, 아내, 딸, 보조자)에 더해서 남녀가 평등하다는 분위기 아래 희생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이 보이더라고요.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완벽해야 하는 거죠. 조금만 생각해보면 두 가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성의 유별을 막론하고 존재하기 힘들다는 걸 알 텐데 말이에요.
제 소설 속의 여성들은 극빈층은 아니에요. 그래서 제도권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여성들이죠. 배우자가 없거나 있지만 부재한 것과 다름없는 여성들, 당장 굶는 형편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일해야 생계가 겨우 유지되는 사람들, 전통적인 여성성과 경제적인 능력을 같이 강요받는 여성들. 그녀들에게 아이는 희망이기도 하고, 동시에 온전히 홀로 책임지기에는 버거운 존재이기도 해요.
등단작 〈2405 택시〉와 장편 『천장이 높은 식당』의 주인공들도 그런 선상에 놓여 있어요. 배우자와 사별하고 돌쟁이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여자 택시기사와 남편이 가출해 아이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영양사잖아요.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부터가 버거운 상황인데, 그들을 둘러싼 노동환경마저 혹독해요. 〈2405 택시〉에는 남자 일터에 여자가 얼씬댄다고 비아냥대는 택시기사들이 있고, 『천장이 높은 식당』에는 회사의 비리를 덮는 데 일조하면 계약을 연장해 준다는 임원들이 있죠. 두 주인공이 그것을 감내하는 이유는 책임져야 할 아이가 있기 때문이에요. 거기에서 오는 현실적인 갈등을 그리고 싶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어요.
등단하기까지, 또 등단 이후에도 작가님에게 참 많은 일이 있었던 거로 알아요. 특히나 3개 문학상 최종심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것이 아주 인상적인데요. 작가로서 첫 책을 내기 전까지 어떤 이야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천장이 높은 식당』은 등단 1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소설이에요. 그게 2015년이었는데, ‘요즘에는 이렇게 당하고만 있는 사람은 없다’는 몇몇 사람의 혹평에 완성하지 못한 채 덮어둬야 했어요. 현실을 바라보는 제 안목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조가 크게 작용했었거든요. 그러고 얼마 안 돼 미투가 전 세계를 뒤흔들었을 때 저조차도 놀랐어요. 우리 주변에 이렇게 많은 ‘승연’과 ‘신유라’들이 있는 줄은 몰랐거든요. 작가로서의 신념이랄지 타인의 판단에 흔들리지 않을 용기에 대해 다시 한번 자문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래서 『천장이 높은 식당』은 처음 쓰려고 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었죠. 그 전의 소설이 순수하게 성폭력을 고발하는 의미의 소설이었다면, 다시 쓰는 소설은 직장 내 괴롭힘에 약자가 된 여성 노동자,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미투 이후의 세계가 된 셈이에요.
완성된 소설은 한겨례문학상과 세계문학상, 제주4·3문학상 최종심에 올랐어요. 그때마다 기쁨과 좌절을 동시에 느꼈어요. 기쁨은 완성된 소설이 그래도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는 감정이었고, 좌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작품으로 선정될 수 없었다는 실망감에서 나온 거였죠. 다행히 우수출판콘텐츠에 선정되고, 출판까지 하게 되었어요. 끊임없이 고쳐 쓰고 문을 두드린 용기에 대해 응답을 받은 것 같아 참으로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작품이에요.
“용기란 누군가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신샛별 문학평론가의 추천사가 인상적이에요. 지금도 일터에서 동료들의 고통을 외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을 거예요. 그분들에게 소설로써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신지 궁금해요.
직장에서 동료의 고통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눈감아야 할 때가 많아요. 사실 그걸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양심이 뜨끔할 수 있지만 목소리를 냈을 때 따르는 보복을 생각하면 외면이 가장 현실적인 답이니까요.
하지만 거기에서 머문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겠죠. 너무 빤한 답으로 느껴지시겠지만, 작가로서도 개인으로서도 그렇게 말하고 싶네요. 특히 조직이 구성원을 통제하기 위해, 혹은 기업의 이윤 때문에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고통이라면 같은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과 문제를 직시하고 대범하게 연대할 필요가 있어요. 문제는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렵다는 것에 있죠.
소설가로서 제가 그분들과 같이하는 방법은 소설로써 문제를 끌어내고, 어떤 가능성을 생각할 공간을 만드는 거라고 믿어요. 직장 내 성폭력과 갑질, 괴롭힘의 문제는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수면으로 올라온 거거든요. 문제점을 논의하고 해결책을 고민할 전문가 집단, 시민단체, 언론, 학계가 같이한다면, 완전한 해결까지는 어려울 수 있으나 피해자를 점점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저도 미력하나마 제 소설과 글로써 공정하지 않은 방식을 계속 이야기할 거예요. 현장에 있는 그분들과 계속해서 같이하겠다는 메시지를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습니다.
*이정연 동국대에서 정보통신공학을, 연세대에서 언론홍보학을 공부했다. 201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2405 택시」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0년 우수출판 콘텐츠에 선정되어 장편소설 『천장이 높은 식당』(한겨레 출판)을 냈고, 2022년 제10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하며 장편소설 『속도의 안내자』(광화문 글방)를 발간했다. 소설집 『미러볼이 있는 집』(도서출판 강)을 냈고, 엔솔러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문학동네)에 참여했다.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지원실 발간지원 부문에 장편소설 『re, 셸리』가 선정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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