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이야기를 선보인 범유진 작가가 역사 소설로 돌아왔다. 『두메별, 꽃과 별의 이름을 가진 아이』는 백정의 딸인 주인공 두메별이 세상의 변화를 차츰차츰 깨달으며 평등과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여자라서 받는 억압과 백정이라서 당하는 차별을 벗어던지고자 두메별은 백정촌을 떠나려고 한다. 주어진 환경에 머무르지 않고, 주변의 만류에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가는 두메별의 모습은 독자들로 하여금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을 돌아보게 할 것이다.
『맛깔스럽게, 도시락부』 『우리만의 편의점 레시피』 등 그간 음식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주로 들려주셨어요. 이번 작품 『두메별, 꽃과 별의 이름을 가진 아이』는 역사소설인데 집필하실 때나 출간 이후 전작과 특별히 다른 점이 있었나요?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기보다는 쌓아온 것을 풀어낼 수 있는 범위가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예전에는 소설에 작가가 들어가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아니라고 대답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소설에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삽입되거나 주인공과 동일시되는 식의 개입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작가가 가진 인식의 한계는 어쩔 수 없이 글에 드러나게 되더라고요. 주제를 어떤 소재에 버무려서 선보일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도 그렇고요. 그래서 꾸준히 공부해서 많이 쌓고,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쌓아 올리는데 시간이 걸리는 타입이라 다른 사람보다 느리게 나아가는 편이기는 해요. 느려도 좋으니깐 꾸준히 풀어내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 중입니다.
역사적으로 백정에 대한 이야기가 뚜렷한 기록으로 남지 않아 구상이나 장면을 짜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참고 자료를 찾으면서 벌어진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이외로 기록이 많아요. 형평운동에 대한 연구자들의 논문과 책에서 특히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백정촌과 백정의 체격 조사 등에 대한 사진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어려웠던 건 백정촌과 노촌의 위치를 가상으로 설정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두메별, 꽃과 별의 이름을 가진 아이』에서 나오는 백정촌과 노촌은 조선 후기부터 심화되었던 신분 이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설정이고, 그게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실존했던 마을을 모델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원래는 소설을 쓸 때 배경이 되는 곳을 찾아가서 걸어보고 감을 잡는 편이에요. 그런데 두메별이 작업을 할 때는 코로나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서 힘들었습니다.
등장인물마다 각자의 사연이 있어서 꼭 실제 인물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특히 주인공 두메별의 모습에서 그런 느낌이 많이 났어요. 혹시 캐릭터를 구상할 때 참고하신 인물이 있나요?
처음에 이미지를 잡을 때에는 e뮤지엄에 있는 사진 속 여자 한 명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고집스러운 눈매나 전체적인 인상이 제가 생각하고 있던 두메별의 이미지와 많이 닮았더라고요. 거기에 ‘두메별이 크면 어떤 어른이 될까’라는 생각을 해 봤는데, 남자현 지사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이 아이는 자라서 반드시 독립운동을 할 것이다! 이런 것보다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 같은 거죠. 그래서 글이 안 풀릴 때에 남자현 지사의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 놓고 보면서 쓰기도 했습니다.
두메별은 여자라서 받는 억압과 백정이라서 당하는 차별 속에서도 타인에게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두메별이 꿋꿋하게 자신의 생각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사람의 본능이죠.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그럼에도 두메별만의 힘이라면 상상과 갈망 아닐까요. 두메별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인식하고, 그 차별이 사라진 사회를 상상하고, 나아가 그것을 갈망할 줄 아는 아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주변에 두메별을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두메별의 작은 오빠인 석송은 동생이 머리가 좋은 걸 자랑스러워하고, 광대는 두메별의 용기를 존경하죠. 타인에게서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어떤 형태로든 사람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서 버팀목이 되어 가니깐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두메별, 꽃과 별의 이름을 가진 아이』를 대표하는 문장이나 장면은 어떤 것일까요?
개인적으로는 두메별과 일본 여자아이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좋아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고, 어찌 보면 대치점에 있는 두 사람이지만 두메별과 여자아이는 서로를 이해합니다. 그 이해의 시작점은 서로가 서로에게 내민 작은 선의에요. 여자아이는 처음 본 두메별에게 기꺼이 자신의 물건을 보여 주었고, 두메별은 여자아이의 꿈을 존중해서 그림을 사려고 하죠. 여자아이가 자신의 구슬을 선물로 준 것은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나누어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행동을 통해 여자아이는 포기하려던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다진 것이 아닐까요. 두메별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함과 동시에 타인을 외면하지는 않는 아이인거죠.
두메별이 춘앵을 향해 달려가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요. 둘은 무사히 경성으로 올라가게 될까요? 이후 두메별이 어떻게 살아갔으면 하는지 작가님의 바람이 있다면?
글을 쓰면서 안예은 님의 노래 <출항>을 자주 들었습니다. 두메별은 언젠가 바다를 건널 것이다, 라고 정해놓은 터라 그 노래가 와 닿았어요. 두메별이 경성으로 떠난 것이 첫 번째 출항이라면, 언젠가 바다를 건너는 진짜 출항도 해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분량이 좀 더 길게 이어졌으면 광대와 두메별의 동생인 아지는 일단 경성으로 왔을 거예요. 광대는 두메별과 함께 성장했으면 하고, 아지는 두메별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며 운명에 맞서는 모습을 그려 내고 싶었거든요. 확실한 건, 두메별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과거이지만 주인공이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자 애쓰는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두메별처럼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꿈꾸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자신을 잘 다독이며 나아갔으면 합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울고 싶을 때는 울고, 답답하면 답답하다고 하소연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기를 바랍니다. 왜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지, 할 줄 아는 게 없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자책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어진 환경을 극복한다, 고 쓰면 굉장히 거창한 일인 듯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눈앞에 엉킨 실 한 가닥을 풀어내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게 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자신의 일상을, 자기 자신을, 주변을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믿고,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어우러지며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범유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따뜻하고 다양한 시선으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해 주는 스토리텔러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우리만의 편의점 레시피』 『선샤인의 완벽한 죽음』 『맛깔스럽게, 도시락부』 등이 있으며, 함께 지은 책으로 『대멸종』 『냉면』 『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열다섯, 그럴 나이』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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