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을 왜 듣는가. 케이팝 하나 들으면서 이런 본질적인 질문까지 던지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가끔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봐야 하는 시간이 오면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케이팝을, 왜, 듣는가. 별생각 없이 신나는 유행가라 듣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고, 불현듯 사고처럼 마주친 최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케이팝에 몸을 담게 된 사람도 있다. 천지 분간도 제대로 되지 않던 시절부터 케이팝을 들어온 이력으로 습관처럼 듣는다거나 아직 케이팝만큼 자극적인 음악을 만나지 못해 계속 듣는다는 사람도 많다. 사람들은 케이팝을 듣는다. 지금도 듣는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각자의 이유는 달라도 궁극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케이팝을 듣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좋은 기분’은 조금은 한정적 의미를 가진다. 적당히 들뜨고, 설레고, 즐거운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 이는 업 템포 음악이 주는 흥분 때문이기도,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은 내 최애를 향한 사랑 때문이기도, 음악에서 비주얼까지 어쨌든 자극의 끈만은 놓을 수 없는 케이팝의 숙명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머리를 양쪽으로 바짝 올려 묶고 금빛 마이크를 마법 봉처럼 쥐고 흔드는 스마일 히어로가 등장했다. 평범한 팬케이크를 딸기 생크림 케이크로 바꾸고, 움직이는 곳마다 무지갯빛 네온 에너지를 흩뿌리고, 커다란 스마일 마크를 그리며 휘날리는 꽃잎과 함께 히어로로 변신하는 이 사랑스러운 스마일 히어로는 바로, 그룹 아이즈원에서 솔로로 데뷔한 최예나가 발표한 곡 ‘SMILEY’ 뮤직비디오의 주인공 ‘YENA’다.
뮤직비디오 내용은 비교적 심플하다. 웃음이 사라진 곳에 나타나 미소를 되찾아주는 스마일 히어로 YENA 앞에 빌런이 등장해 거친 눈보라를 불러오고, 빌런의 커다란 힘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YENA의 위기를 그의 스마일 파워에 위로받았던 사람들이 힘을 합해 구해 낸다는 이야기다. 모두의 힘을 하나로 모아 어둠을 물리치고 새로운 빛을 되찾는다. 이 뻔하디뻔한 스토리가 잊을 수 없는 잔상으로 남는 건 곡의 주인공 ‘YENA’와 현실 속 최예나의 모습이 다른 이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없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기 때문이다.
아이즈원 시절부터 노래, 춤, 랩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할 것은 물론이려니와 특히 ‘끼’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던 최예나의 밝고 경쾌한 자아는, 웃음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스마일 히어로 ‘YENA’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싱크로율을 선보인다. 애니메이션 ‘파워 퍼프 걸’에서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퀸, ‘불량공주 모모코’, 이외에도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레트로 물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떠올리게 하는 직관적이지만 꼼꼼한 비주얼의 힘도 크다.
이 모든 이미지는 주인공 YENA가 빌런과 만들어내는 선명한 대립각과 잘 다듬어진 음악으로 인해 더욱 입체적으로 완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피처링을 맡은 비비가 담당한 매력적인 빌런은 어쩌면 ‘SMILEY’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도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두 사람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흑과 백, 명과 암의 극명한 대비를 보이며 노래의 긴장감을 높인다. 반전은 비비의 마이크에서 흘러나온다. 알고 보면 소심하고 외로운 빌런은 흔한 저주의 말이 아닌 ‘나빠야지 살아남지 넌 뭐해 / 귀엽고 예쁘면 장땡이냐 근데 / 널 보고 있으니까 기분이가 좋네 /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리 둘이’라는 의외의 진심을 건네며 곡의 사랑스러움을 더한다.
90년대 큰 인기를 끈 스파이스 걸스의 ‘Wannabe’나 샴푸의 ‘Trouble’, 애이브릴 라빈의 ‘Sk8er Boi’ 같은 곡들 이후 최근 올리비아 로드리고나 백예린의 밴드 발룬티어스, 김뜻돌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변주되고 있는 밝고 거침없는 틴에이저 감성의 팝 록 사운드는, 스마일 히어로 YENA가 지향하는 유쾌 상쾌 통쾌한 세상을 그리는데 더없이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무엇보다 스마일 히어로 YENA가 너무나, 너무나 귀엽다.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누군가 ‘귀여운 건 최강’이라고 했던가. 귀여운 건 힘이 세다. 정말 세다. 실은 그것만으로 ‘SMILEY’를 듣고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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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