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만난 의사들은 하얀 가운과 청진기를 목에 걸고 조용한 자신감으로 환자들 대하곤 한다. 짧은 순간에 환자들을 캐치하여 처방을 내리고, 생사를 넘나드는 결정의 순간에도 나약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과연 의사들에게 숙련의 시간이 있기는 한 것인지, 아무리 수련의라고 해도 그들이 보여주는 긴장감과 특유의 분위기 앞에 의사란 직업은 태생적인 게 아닐까 궁금해지곤 한다. 그에 대한 대답을 『오늘도 아픈 그대에게』 송월화 저자가 시원히 들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처럼 겁 많은 사람도 의사가 되어 사람 목숨을 구하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강남세브란스 내과 전문의로 의사가 되기까지 의과 대학생, 인턴, 전공의 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환자와 병원 사이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련의로서 겪게 되는 업무와 힘든 과제들, 그리고 동료 의사와 교수님과의 관계, 인턴 시절 온몸으로 익힌 소소한 생활 팁을 전한다.
『오늘도 아픈 그대에게』를 출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내분비내과 의사 송월화입니다. 저는 지나간 일을 계속해서 곱씹는 사람이에요.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보면 각각 음료수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떠오르고, 문구점에서 펜을 보면 각각 펜들을 자주 쓰던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저와 비슷하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저는 저의 이런 모습이 싫어요.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며 현재를 사는 멋진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며 불시에 저를 웃게도 울게도 하는 수련의 과정의 기억들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글로 쓰게 되니 불쾌한 기억에도, 즐거운 기억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더군요. 결론적으로 현재에 좀 더 집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책을 썼다고 볼 수 있겠네요.
“나처럼 겁 많은 사람도 의사가 되어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합니다.” 이 글을 보면서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서, 의사답지 못한 모습에 많이 좌절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고민 때문에 지금처럼 훌륭한, 앞으로 더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러한 고민을 지금도 하시나요?
저는 항상 제가 의업을 하기에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아마 많은 의사 선생님들이 그렇게 느끼시기에 평생 공부하시는 거겠지요. 그중에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저의 성품입니다. 의과대학생도 본과 2학년 때까지는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는 게 주 업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다른 과 학생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본과 3학년부터는 학생 의사(폴리클)로서 병원 실습을 하게 되기 때문에 생애 처음으로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전공의 선생님이나 교수님들께 꾸지람을 듣거나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럴 때면 말문이 막히기도 하고 말을 더듬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혼내시던 분도 당황하며 '이 정도로 울면 의사를 어떻게 하니?', '너는 평생 의사를 하기에는 글렀다'같은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의사를 하기에 부적합하다고 느꼈습니다.
의업뿐만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정말 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시간을 견뎌내는 사람도 있겠지요. 저는 훌륭한 의사는 아닙니다만, 잘 버틴 의사는 맞는 것 같습니다. 계속 버티다 보면 조금은 훌륭한 점들도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초보의사 시절은 선배 의사, 숙련된 간호사 그리고 병원 사정을 잘 아는 환자들까지 상대하려면 무척 힘들었을 것 같은데, 힘겨운 시기가 왔을 때 작가님은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잘 못 이겨낸 것 같습니다. 전공의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그래도 의국의 시계는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야만 끝나는 과정이기에,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억울한 일을 털어놓기도 하고,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잠시 고민을 내려놓았습니다. 외부로부터 나를 힘들게 하는 요인들이 많아질 때 중요한 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저는 자기 보호를 잘하지 못했어요. 누가 혼을 내면 내가 혼날 짓을 했나 보다, 누가 나를 미워하면 내가 미움받을 짓을 했나 보다 하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혼날 일 아닌데 혼나고, 미움받을 일이 아닌데 미움을 받기도 하거든요. 다른 사람의 연약함까지 내가 껴안을 필요는 없습니다. 타인의 연약함은 타인의 것으로 남겨두고, 나를 보호해야 할 때 스스로를 잘 보호한다면, 힘든 시간을 좀 더 건강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함께 기다려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의사뿐이기에 시간을 되돌려도 나는 여전히 미숙한 의사일 것이다’라는 글이 인상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드라마 <도깨비>에 보면 사람이 죽기 전에 조용한 방에서 저승사자와 차를 마시며 생을 정리합니다. 환자가 상태가 나빠지면 일반 병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기는데, 이곳은 면회도 제한돼있고 환자와 의사, 간호사만 머물게 됩니다. 저는 중환자실이 저승사자의 방과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건강을 회복해서 일반 병실로 가는 분들도 있지만, 중환자실에서 삶을 정리하게 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곳에서는 대화도 식사도 할 수 없고, 가족이나 친구도 곁에 없고, 오직 의료진만이 곁에 있을 수 있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제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면 의사에게 하고픈 말이 참 많을 것 같아요. '선생님, 아직 우리 아기를 못 봤어요. 선생님, 이제 산소는 빼고 싶어요.' 같은 말들 말이에요. 하지만 대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의학적인 판단과 별개로 환자가 죽기 직전에 하고 싶은 말이 무얼까 나는 무얼 더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 계기가 있어서 글로 적게 되었습니다.
글 곳곳에서 의사라는 직업을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어떤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으신가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는 신뢰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신뢰라는 것은 인격적으로 지식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사람에게 생기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다정다감한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한편으로는 참 용감하신 분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책을 준비하면서 일러스트라는 새로운 수련과정에 도전하셨으니까요. 이 책과 그림이 초보 저자로서 숙련의 시기를 거쳐 가는 데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요?
맞습니다. 저는 내향적인 사람이어서 제 글과 그림을 세상에 보인다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북산 출판사 직원분들이 이런 제 성향을 간파하셨는지 좋은 글이니 글을 꾸준히 써 주었으면 좋겠다, 그림도 더 과감하게 그려주면 좋겠다며 응원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막상 출간을 하고 나니 저와 비슷한 성향의 독자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공감하며 '우리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만,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라고 말해주어서 글을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아픈 그대에게』는 제게 오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심어준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초보의사를 비롯해 이 시대 모든 사회초년생들의 도망치고 싶은 마음,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치료해 주는 처방전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멋진 말을 해 주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을게요. 저는 학자금 대출, 전세자금 대출 통장을 보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각자가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무언가가 있겠지요. 그것은 매일 밤 재수학원 앞에서 나를 기다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일 수도, 함께 옆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시험공부를 하던 언니의 옆모습일 수도, 나와 함께 엉엉 울어주던 남편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도망치고 싶을 때, 이런 모습들을 한 번씩 떠올리면 좋겠어요. 물론 도망치고 그만둬도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나를 도망치고 싶게끔 만드는 사람은 내 인생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포기의 이유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사건 때문에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중요한 사람, 소중한 기억만을 떠올리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으니까요.
*송월화 1988년 경기도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이름은 달맞이꽃이 만개할 무렵에 태어났다는 의미로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현재는 동갑인 구강악안면외과의사 남편과 네 살 딸과 서울에 살고 있다. 내과 전문의로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에 근무하고 있으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의과대학생, 인턴, 전공의, 전임의 과정을 거치며 만난 환자에 대한 기억이 점차 옅어지는 것이 싫어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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