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의 청년 셋, 강남의 아파트로 이사하다
현실은 답답하고 잔인하지만, 그래서 자주 무력해지지만,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면 미약하게나마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 희망을 확인하는 자리가 오로라 아파트의 역시 낡아빠진 상가에 남아 있는 오로라 상회입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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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란 저자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경란의 첫 장편소설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이 출간되었다. 소설은 몰래 길고양이를 키우다 고시원에서 쫓겨난 민용이 연후와 저커, 이안과 함께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강남 오로라 아파트에 입주, 월세를 4분의 1로 ‘N빵’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강남 한복판. 화려하고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만 빼고 다 성공한 것 같고, 나만 빼고 다 잘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럴 때마다 초라함을 느끼는 네 사람이지만 그럴수록 그들은 서로에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준다. 피곤하고 지친 하루 끝에도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이런 게 한집에 산다는 것일까? 이렇게 살면 우리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닐까?

소설가 이기호의 말처럼, “그들에게 주어진 당위는 언제나 ‘노오력’이고, 일정한 ‘진폭’의 움직임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대신 서로를 격려하고 관계를 다지며 함께 나아가기를 택한다. ‘오로라 아파트’가 집 없는 그들에게 지붕이 되어주었다면, 한잔 기울이며 속내를 털어놓는 ‘오로라 상회’는 그들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열게 하는 터닝포인트가 된다.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은 청년세대와 기성세대가 한집에 살게 되며 발생하는 갈등과 화해를 현실적으로 그려내어 날 선 지금의 현대사회에서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끝내 우리가 서로의 손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출간 축하드립니다!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이 드디어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첫 장편소설이라고 들었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일단 당장 드는 느낌은 후련함입니다. 2018년 가을에 쓰기 시작해서 다음해 봄에 초고를 끝냈고, 몇 달 덮어두었다가 파일을 새로 열어 처음부터 다시 썼어요. 첫 장편소설이니 초고가 얼마나 형편 없었겠어요. 그렇게 다시 쓴 소설을 또 덮어두었다가 다시 꺼내 고치고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거쳤습니다. 발효의 시간을 보낸 거죠. 이제 더는 못 고치겠어서 조금은 지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한 시점에 출간이 결정되었고요. 몇 년을 껴안고 있던 작품을 드디어 세상에 내놓게 되어 조심스럽기도 한데요. 그동안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성장한 기분이어서 제 나름대로는 뿌듯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분의 저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심연처럼 자리 잡고 있어요. 이건 단편을 발표할 때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첫 장편은 역시 다르네요. 그 무게가 얼마나 압도적인지 나날이 실감하고 있습니다.

제목이 눈에 띄더라고요. 표지도 예쁘고요. 어떤 소설인지 독자들에게 간단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헬조선의 청년 셋이 재건축을 앞둔 강남의 오로라 아파트로 이사해서 함께 살게 됩니다. 월세는 N분의 1씩 부담하고요. 고시텔에 살던 실업자 민용이 길고양이를 입양하면서 촉발된 일이죠. 민용, 공시생 연후, 복학 못한 알바생 저커는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각자 당면한 문제도 다르지만 공동생활을 통해 서로에게 가족과 같은 애정과 연대를 느끼게 됩니다. 여기에 너무 열심히 살다가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한 퇴직자 이안이 합류하게 되고요. 이들 모두 외롭고 절박한 상태인데요.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곳은 역시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입니다. 사료를 먹긴 하지만 고양이 유로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요. 현실은 답답하고 잔인하지만, 그래서 자주 무력해지지만,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면 미약하게나마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 희망을 확인하는 자리가 오로라 아파트의 역시 낡아빠진 상가에 남아 있는 오로라 상회입니다.

노량진에 살던 공시생과 알바생 청년들이 강남의 한 재건축 아파트에 들어간다는 설정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월세를 N분의 1 한다는 것 자체도 어떻게 보면 ‘쉐어하우스’의 개념이 아닐까 싶고요. 이 이야기를 떠올리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부모로부터 분리된(독립일 수도 있고요) 젊은이들이 당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주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라고 볼 수 있겠죠. 공간 자체일 수도 있고 공간의 위치일 수도 있고요. 제 경우에는 대학 진학으로 상경했을 때부터 주거가 너무 큰 문제였어요. 기숙사, 하숙을 전전하기도 했고 남의 집 방 한 칸에 세 들어 눈치 보며 산 기간도 있었고요. 불과 몇 년 되지 않는 사이에 짐을 얼마나 많이 쌌던지 짐 싸는 데는 아주 숙련이 되었었죠. 

그때는 고시원도 원룸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 같지 않았어요. 아직도 지상의 방 한 칸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 꿈을 자주 꿀 정도예요. 불안하고 막막했던 그 기분이 고스란히 제 몸에 새겨진 느낌이랄까요. 아마도 몇 가지 면에서 제가 소설 속 그들보다 운이 좋았을 거예요. 그런데 최근 노량진에서 몇 년 사는 동안 그 동네 청춘들에게 자꾸 눈길이 가고 마음이 오래 머무르는 거예요. 처음엔 민용이 제게로 왔고 다음에 연후가, 그리고 저커가 제게 왔어요. 이들은 실재하는 인물처럼 제 곁에 늘 머물렀죠. 이 청년들에게 비록 한시적이더라도 조금쯤은 편하게 잠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할까요. 그런 공간은 제게도 무척 절박한 문제이기도 했고요.

청춘 소설이라고 하면 보통 이삽십대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은데,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은 세 명의 청년과 한 명의 육십대 남성 ‘이안’이 함께 등장하죠. 그도 민용, 연후, 저커 못지않게 삶에 대한 회의와 고민을 안고 있고요. 세 청년 사이에 이안을 집어넣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부터 이안을 등장시켜야겠다고 계획한 건 아니었어요. 세 청년의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이안이 필요해진 거죠. 소설을 쓸 때면 가만히 소설 속 인물이 되어보는 때가 있어요. 사건을 설계하고 방향을 정해놓고 쓰는 것이 아니라, 자,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생각이 어디로 흘러갈까, 하고 상황에 저 자신을 맡기는 건데요. 이때 ‘나’는 소설 바깥의 제가 아니라 소설 속 인물입니다. 그렇게 가만히 있어보면 이야기가 풀려나가곤 해요. 민용이 으르라(오로라) 상회에 처음 갔을 때 으르라 주인 말고 다른 사람이 필요해졌어요. 민용에게 말을 걸어줄 사람요. 

청년 세대가 아니라 다른 상황에서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인물이 필요해진 거죠. 그러니까 기성세대, 꼰대, 아재 이런 인물요. 이게 누구겠어요. 한국의 아버지죠. 쉽게 대립하고 오해하는 존재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소통하고 화합해야 하는 존재인 거죠. 청년에게 ‘헬조선’이 아버지 세대에게 천국은 아니거든요. 그 세대의 고통과 회한을 청년들도 이해할 수 있고 또 청년들의 절망과 무력감을 그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실마리 같은 게 잡혔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 실타래는 그들이 발견한 셈이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청춘이란 무엇인가요? 

이정표 없는 길에 선 두 발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이정표를 세워가며 걸어가야 하는 시기이겠고요. 자식을 키우면 인생을 한 번 더 사는 것 같아요. 저도 예외는 아니어서 청춘도 두 번째 관통하고 있는데요. 두 청춘은 상당히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어요. 이건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시대의 문제이기도 하죠. 하지만 어느 쪽이든 청춘의 시기란 희망의 노예로 현재를 짓뭉개는 시기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겠지요. 청춘은 누려야 하는 겁니다! 일방통행이니까요. 돌아올 수 없어요.

소설 속에서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어떤 장면인가요?

장마로 천장에서 비가 주르륵 새는 장면이 있어요. 빗물을 받으려고 냉장고 야채 칸 서랍을 두 개 놓고 물 떨어지는 소리에 맞춰 연후가 비트박스를 하고 민용과 둘이 춤을 춥니다. 위에서 현재를 짓뭉개지 않는다는 말을 했는데요. 이 장면이 그렇죠. 아파트 천장에서 비가 새고 전기가 끊기고 해결책은 없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순간을 즐길 줄 알잖아요. 그런 여유, 낙천, 혹은 체념, 거기에서 새롭게 증폭되는 생명력 등에 공감해 주길 바라는 장면입니다. 물론 마지막 장면도 빼놓을 수 없어요. 짠돌이 저커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 부두에 남은 세 사람이 갯바위처럼 단단하게 결속하는 장면요.

이 소설을 읽은, 혹은 읽게 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문득 의문을 품게 됩니다. 인생 뭘까. 저는 모릅니다. 진부한 얘기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 의문으로 귀결되는지도 모르겠어요. 답은 각자 찾아야겠지요. 끝내 찾지 못할 수도 있어요.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저는 생각하는 편인데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손을 잡고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면 걸음이 조금은 더 늠름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거죠.  



*이경란

대구에서 태어나 자랐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동안 잡지 만드는 일을 했다. 2018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 『다섯 개의 예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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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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