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 타운'에 새롭게 문을 연 슬라임 카페! 이곳에는 범상치 않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슬라임 카페에 입장하시겠습니까?』에서 '슬라임'은 '지구 평화'라는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재미난 놀잇감인 한편, '에듀 타운' 안에 갇힌 채 가슴 속에 억눌린 감정을 품고 사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다. 슬라임을 주무르면 파츠 속에 숨겨진 칩이 아이들의 화, 분노, 수치심 등의 감정을 빨아들인다. 그렇게 수집한 감정 데이터는 로봇에 장착되어 외계 생명체와 대적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지구 구하기'는 '우리 아이들 구하기'가 아닐까?
어린이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는 오래된 꿈이었어요. 책 가까이 머물고 싶어 편집자가 되었고, 작가님들과 만나 책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았어요. 두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이제는 가슴에 품고만 있었던 꿈에 도전해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잠들면 동화 공부를 시작했지요. 매일 도서관에 가서 동화책을 빌려서 읽고,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밤새워 쓰곤 했어요.
원고를 보고 작품의 소재가 독특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슬라임 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슬라임이라는 소재를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슬라임이 붐이었잖아요. 유행하는 것들에는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늘 관심을 두는 편이에요. 슬라임을 액체 괴물이라고도 부르는데 엄연히 액체는 아니잖아요? 애매한 물성이 재미있게 느껴졌고, 또 괴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궁금했지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저도 좀 주물럭거려 봤는데 기분이 이상해지더니 그 슬라임이 제 감정을 다 빨아먹곤 외계인으로 변신하더라고요! 그때 쓴 첫 이야기는 그 외계 괴물과 싸우는 아이의 이야기였어요. 가제도 ‘괴물 메이커리 카페.’ 나중에 주인공을 우주로 설정하면서 이야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우주는 싸워야 할 적보다는 친구가 필요한 아이 같았거든요.
슬라임으로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는 조금은 무거운 내용으로 흘러갑니다. 우리나라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교육 문제인데요. 작가님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꽤 괜찮은 어른’으로 키우는 데 교육의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요. 타인을 따뜻하게 존중하면서도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기 마음을 긍정하고 소중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슬라임 카페에 입장하시겠습니까?』를 통해 자신의 마음, 감정을 이해하고 돌보는 게 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감정이라는 게, 누군가는 빼앗고 싶을 만큼 귀하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고요. 아무데나 휙휙 던져두거나 꽁꽁 숨겨만 두다간, 언젠가 엄청난 쓰나미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경고도요.
슬라임이라는 흔한 놀잇감을 외계인의 침공과 연결시킨 상상력이 참신했습니다. 기발한 상상은 어린이들의 특권이기도 한데요. 작가님의 어린 시절과 요즘 어린이들의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이들 삶의 테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아요. 요즘은 혼자서 놀거나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지요. 전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가는 일이 없었어요. 친구들 집을 다 거치면서 한 명 한 명 인사하고 헤어지고는 동네를 둘러둘러 돌아가곤 했어요. 어떨 땐 낯선 골목을 만나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코너를 돌 때마다 무엇이 있을까 상상하며 혼자 걷는 걸 좋아했어요. 빈둥대며 천천히 집에 가도 아무 문제가 없었죠. 별로 할 게 없었거든요.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너무 바쁘잖아요. 주인공 우주처럼 여유 없이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하는 일상이 요즘 어린이들의 세상인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기성세대, 어른의 역할은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 주는 것일 텐데요. 작품을 읽으면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린이는 꼭 이래야 해' 하고 윽박지를 수 없듯이, '어른도 어떠해야 한다'라고 말하긴 힘들 것 같아요. 자신의 감정이나 꿈조차 모른 채 훌쩍 몸만 커버린 서툰 어른도 많잖아요.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 줄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어른들도 있을 거예요. 제 안에도 아직 덜 자란 꼬마가 있어요. 아직 미숙하고 투정 많고 떼쓰고 짜증도 잘 부리는 제 꼬마가 화를 낼 땐, 그래도 어른인 제가 달래 주려고 노력하지요. 어른들이 자기 안에 있는 꼬마를 불러내 봤으면 좋겠어요. 꼬마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잘 성장하지 못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고, 어린 시절 후회되는 부분을 늦게나마 채울 수도 있을 거예요. 어린 나를 기억하면서 아이들을 바라본다면 어른의 역할에 대해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 글쓴이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어쩌면 가까운 사람과 소통하고 이해하는 일이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마음을 귀하게 보듬고 살펴주는 일도 놓치기 쉽고요. 작가님만의 마음을 달래는 녹는점은 무엇인가요?
경상도 부산에서 나고 자란 우리 가족이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생각만 해도 오글거려요. 평소엔 무뚝뚝하기만 하던 아빠는 걸쭉하게 취해 오신 밤이면 밤새도록 고래고래 사랑 고백을 했어요. 아마 아빠에게는 술이 녹는점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문제는 아빠의 술주정이 우리 삼남매에겐 마음의 어는점이었거든요.
자신의 녹는점을 찾는 건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꼭 생각해야 할 거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 조심스럽지만 가족사를 언급했네요. 제 마음의 녹는점은 글을 쓰는 일이에요. 억울하거나 답답한 일이 생기면 하얀 화면을 띄우고 엄청난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억울함을 토로하는 편지를 쓰기도 하고 실제로는 못할 것 같은 못된 말들을 퍼부어 보기도 해요. 신기하게도 시커멓게 쏟아내고 나면 마음이 풀려서, 싹 다시 지워도 괜찮아지거든요.
첫 장편 작품으로 공모전에 당선된 이후 매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작가로서 어떤 미래를 그리고 계신지요? 독자들에게는 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신가요?
바쁜 아이들에게 '위로'와 '쉼'이 되는 동화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많은 작품을 쓰는 부지런한 작가는 못되지만, 느린 속도로라도 꾸준하게 아이들과 동화로 소통하고 싶어요. 요즘 교포 아동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한국이 아닌 곳에서 나고 자란 어린이들이 가진 고민들과 마주하면서 마음이 시릴 때가 있어요. 이 아이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가 찾아오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서지연 아이들 마음에 쉼이 되는 이야기 한 그루 심고 싶은 작가. 초등학생일 때는 문예반, 중학생일 때는 교지 편집부, 대학생일 때는 신문사에서 놀았습니다. 책 만드는 일, 외국 그림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다가 지금은 동화 쓰는 일에 푹 빠져 지냅니다.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지원 문학 분야에 동시가 선정되었고, 『잃어버린 책』으로 11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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