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허울뿐인 공정의 세계를 넘어
'권모술수 권민우' 캐릭터가 인상적이에요. "우영우를 배려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우영우가 로스쿨 성적도 좋고 일도 더 잘하니까 오히려 강자다"라고 억울한 얼굴로 외치는 인물이죠.
글ㆍ사진 이혜민(크리에이터)
20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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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 혜민님, 혹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보시나요?

이혜민 : 네, 재밌게 보고 있어요! 장애를 기존의 미디어가 다루던 방식으로 다루지 않아서 좋은 것 같아요. 신파적이라거나 안타까운 모습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으로 그려줘서 좋고요. 또, 기존의 법정 드라마들은 너무 극적이거나 설득력 없는 내용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드라마는 실제 변호사들도 칭찬할 만큼 법리적인 부분도 잘 반영됐다고 하더라고요.

김상훈 : 저도 우영우 너무 재밌게 보고 있어요. 그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가 있는데요. '권모술수 권민우' 캐릭터예요. "우영우를 배려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우영우가 로스쿨 성적도 좋고 일도 더 잘하니까 오히려 강자다"라고 억울한 얼굴로 외치는 인물이죠. 드라마를 집필한 문지원 작가님이 권민우는 '권력에 민감한 친구'의 준말이라고 하더라고요. 권력에는 민감하면서 공정을 중시한다? 뭔가 모순적이죠? 이 인물에서 저는 요즘 '공정'이란 가치에 집착하면서 사실은 진정한 공정보다는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길 원하는 어떤 집단을 연상하게 돼요. 이러한 집단 역시 '요즘 것들'이겠죠?

이혜민 : 그렇다면 오늘의 산책 가이드 상훈님, 오늘 산책할 길은 어떤 길인가요?

김상훈 : 오늘의 산책길을 가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볼게요. 혜민님이 생각하는 '공정하다'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어떨 때 공정하다고 느끼고, 어떨 때 불공정하다고 느끼세요?

이혜민 :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기혼 여성으로서 느끼는 불공정인 거 같아요. 결혼 후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요구 받는 것들이 있다고 느끼거든요. 똑같이 일을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가사노동을 주도하는 걸로 생각한다든가, 명절에도 주로 여성들만 일한다든가. 그 외에는 제가 세입자다 보니, 그런 입장에서 불공정을 느낄 때가 있죠. 인테리어 허락을 받고 제가 다 꾸몄는데, 건물주가 와서 조명이나 블라인드 같은 거 다 놓고 가라는 약정서에 서명을 하라고 한다든지. 그리고 MZ세대들은 공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회사에서 일을 할 때 공정하게 평가받긴 바란다는 이야기요. 사실 그런데 이게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공정의 기준도 바뀌는 거 같아요.

김상훈 : 저도 어려운 문제인데요. 살면서 불공정하다고 느낀 일이 많지 않다는 것에 우선 놀랐어요. 저는 남성이고 이성애자고 비장애인이고 서울에서 살아온 사람이죠. 저 같은 성별, 사회적인 포지션은 차별 받거나 불공정하다고 느낄 일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이 감각에 우선 반성적으로 놀랐고요. 공정에 대한 기준은 '누군가에게 특별히 유리하지 않은 것일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를 따로 마련하고,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불리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최대한 없는 상황'이 그나마 공정에 가까울까 싶은데요. 그렇게 뭉뚱그리면 안되는 일일 것 같아요. 정말 쉽지 않네요. 제가 오늘 가이드할 산책 길은 '허울뿐인 공정의 세계를 넘어'라는 길이에요. 공정에 대해서 얘기한다지만 사실 단순한 공정이 아닌 그 너머를 얘기하고 싶어서 꺼내는 이야기예요.

이혜민 : 그럼 산책에 앞서 현재 위치를 알고 앞으로 다가올 길을 예측해 보는 지도를 살펴볼까요?

김상훈 : 포털 뉴스에서 '공정'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진짜 많이 나와요. 최근에는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 중에 '공정'이란 말이 들어간 게 많습니다.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리더십. 그런데 반대로 대통령 지지율 관련 기사에서 지지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지지 이유에도 "공정하고 정의로워서"라는 말이 보여요. '공정'이란 말은 이미 약간 '아전인수(我田引水)'가 아닌가 싶어져요.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그냥 갖다 붙이는 개념이요. 그 중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있었어요. 제목은 "중·고생들에게 '공정'이란? 능력 따른 보상 배분"인데요. 

한국교육개발원(KEDI)에서 전국 남녀 중고생 417명을 조사했는데요. 한정된 보상을 분배할 때 필요와 노력과 능력 중 어떤 기준을 선호하는지 물었대요.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결과에 대한 실질적 기여를, '노력'은 결과에 투여한 시간, '필요'는 보상을 필요로 하는 정도를 뜻하는데요. 그 중 가장 많은 42.5%가 "능력을 기준으로 보상을 나누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응답했다고 해요. 노력이 우선, 필요가 우선이라고 답한 비율은 각각 9.6%, 6.6%에 그쳤으니 '능력 우선'이라는 의견이 월등이 높은 거죠. 이런 걸 보면, 지금의 공정은 사실상 '능력주의'를 말하는 게 아닌가 싶어지기도 합니다. 이게 우리의 현 위치인가 싶어서 좀 씁쓸해지죠?

이혜민 : 그러면 본격 산책을 가야죠. 산책을 위해 산 책을 소개해 주세요. 어떤 책인가요?



김상훈 : 『공정 이후의 세계』라는 책이에요. 공정의 세계가 아닌, 공정 이후의 세계요. 제목처럼,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을 주장하고 능력에 따른 보상이 곧 공정이라고 말하는 요즘의 시대 정신을 비판하고, 그 너머를 같이 생각해 보자고 하는 책이에요.

이혜민 : 저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김상훈 :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입니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되었으나 2020년부터 국내에서의 연구와 활동도 재개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정과 정의, 불평등과 차별을 핵심 주제로 삼고 있으며, 누구도 낙오되지 않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글을 쓰고 집회에 나간다고 책날개에서 소개하고 있어요. 

이혜민 :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나요?

김상훈 : 앞에도 말씀드렸 듯, 공정이 아닌 공정 이후를 같이 보자고 하는데요. 그래서 프롤로그에서 재밌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이 책은 공정에 관한 책이 아니다. 나는 공정에 관한 이야기를 그만하고 싶어서 이 책을 집필했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 사회에 '공정'이란 말이 굉장히 대두가 됐잖아요. 지난 대선 때도 공정 이슈가 굉장히 많이 얘기됐고요. 처음에는 그럴듯한 면이 있었습니다. 맥락도 충분히 있어요. 금수저, 흙수저 논란부터 부정한 채용 비리 같은 것들에 청년들이 분노해서 공정을 말하게 된 측면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자는 언젠가부터 공정을 주제로 한 말들이 뻔한 돌림 노래처럼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과연 공정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공정의 진짜 의미가 뭐냐는 거죠?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데 파고들다 보면 이건 그냥 능력주의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고요. 

우선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에서는 「공정의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타이틀로 현재 얘기되는 공정 담론을 해부하고 있어요. 앞에서도 말한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 공정이라는 시대정신을 분석하는데요. 공정이란 말 속에 감춰진 혹은 가려진 것들을 말하고 있어요. 공정을 외치는 이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억울함, '내 것이어야 하는데 뺏겼다' 같은 기분을 느낄 때 공정하지 않다고 외치는 경우가 많아요. 

다음으로는 능력주의예요. '시험 만능주의' 같은 것들인데요.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도구로 '시험'을 많이 생각하죠. 그것만이 공정하다고 얘기하고요. 하지만 과연 시험이란 것이 진정 공정한가? 라는 질문이 뒤따르죠. 이미 구조적 불평등이 존재하고 부유한 사람들의 자녀가 양질의 교육 기회도 높은 상황에서 치르는 시험이 공정하냐는 거죠. 차별과 혐오 문제도 가져오는데요. 여성 할당제를 포함해서 더 취약하거나 불리한 계층, 인종, 성별 등을 배려하는 정책에 대해 '공정하지 않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얘기하는 거죠.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자신의 정서를 합리화하면서 그 도구로 공정을 가져오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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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이후의 세계
공정 이후의 세계
김정희원 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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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크리에이터)

밀레니얼 인터뷰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을 운영하며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 등을 썼다. 나다운 삶의 선택지를 탐구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