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젊은 연구자 8인이 본 대학원의 현실
현재 한국의 인문계 대학원과 학계가 과연 연구자를 길러낼 수 있는 자원을 가진 민주적인 공간인지 되묻고, 연구자들 스스로도 지식의 공공적 가치에 대해 더욱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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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주인공 바트가 꽁지머리를 한 대학원생을 놀리는 장면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밈'이 됐다. 대학원은 감옥과 같다는 우스갯소리도 종종 들린다. 이 농담들에는 수직적 위계, 대학원생의 인권과 생계 문제, 학령 인구의 감소, 인문 사회 과학의 위기 등 수많은 쟁점이 얽혀있다. 『한국에서 박사하기』는 직접 대학원과 학계를 경험한 여덟 명의 연구자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 나가려는 여정이다. 이 쓰디쓴 잔소리는 왜 필요했을까? 김보경, 현수진 저자를 서면으로 만났다.



두 분 모두 대학원을 경험하셨어요. 각자의 간략한 전공, 연구 분야, 관심사를 소개해주세요.

보경 : 안녕하세요. 저는 국문과에서 현대 문학, 세부적으로는 현대시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또 하나의 문화>나 <녹색평론> 등 1980~1990년대 한국에서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진 사회문화 운동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수진 : 안녕하세요. 저는 사학과에서 고려 시대사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제 관심사는 고려 시대 지성사, 정치사상사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수신문>의 '천하제일연구자대회'에서 진행된 좌담을 편집하고 확장한 책이라고 알고 있어요. 어떻게 대담에 참여하게 되셨나요?

보경 : 이번 좌담의 구성원들은 신진 연구자로서의 경험과 더불어 대학원 제도 및 정책 관련 거버넌스 참여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꾸려졌는데요. 대학원생 인권 및 학습권 이슈가 불거졌는데도, 저희 학과에 대학원생의 의견을 수렴하는 기구조차 없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자치 기구를 조직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학원총학생회(원총) 소속 위원들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대학원에서 경험하고 목도한 부조리를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상상할 수 있게 됐고, 이후 마음 맞는 동료들과 자치회를 성공적으로 발족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연대, 실천의 힘이 이 좌담을 통해서도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수진 : 김보경 선생님처럼 저도 대학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직, 간접적인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데요. 대학원 내부에서는 사학과 대학원 학생회장으로 학교와 소통하는 역할을 맡았고요. 외부에서는 신진 역사 연구자 단체인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만인만색)' 미디어팀에서 시민 사회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만인만색에서 역사 팟캐스트, 역사 유튜브 등 역사 콘텐츠를 제작하고, 시민을 위한 역사 교양서 출간에 참여했어요. 

이런 활동은 신진 연구자의 일자리를 학계 바깥에서 확보하려는 시도임과 동시에 시민 사회와 의미 있는 지식을 공유하는 구조를 만들려는 과정이었습니다. 좌담을 기획하신 이우창 선생님과는 비슷한 연구 관심사 덕에 알고 있는 사이였는데, 마침 제가 그간 해왔던 활동이 기획 의도와 부합한다고 생각해 참가를 제안해 주셨어요. 저는 연구자들이 학계의 구조를 조금이나마 바꾸려고 노력하는 활동이 많이 알려져 많은 분들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내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기 때문에 흔쾌히 응했습니다.

당시 대담이 진행된 뒤 좋지 않은 반응들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책을 펴내며 문제의식을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동력이 무엇인가요?

수진 : "좌담의 구성원이 명문대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대학원의 현실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는데, 맞는 말씀입니다. 대학이 아닌 젠더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학계에서 명확히 불리한 위치에 있는 여성 연구자가 대다수라는 점이 주목되지 않아 아쉽기도 하지만요. 그럼에도 책을 펴낸 이유는 이런 시도가 모이고 쌓여 논쟁이 일어나야만 대학원과 학계가 마주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좌담과 책이 일부의 이야기만을 담아 아쉽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분들께서 저희 이야기를 디딤돌 삼아 또 다른 이야기를 해주셔야 하지 않겠어요. 어떤 이야기든 빈 구멍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빈 구멍을 채우기 위해 이야기를 지속해나가는 것이 문제의 해결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문제 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논쟁을 이끄는 마중물이 되기만 한다면, 이 작은 이야기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1장 '내가 경험한 대학원'에서는 필자들이 직접 겪은 대학원의 현실이 등장해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수진 : 조승희 선생님이 카이스트 원총회장으로 박근혜 대통령 명예박사 취소 청원식을 기획했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습니다.(47쪽) 조승희 선생님은 카이스트 원총에서 선언을 하려면 회장인 선생님의 이름과 얼굴을 걸고 해야 하는데, 이게 솔직히 두려운 일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럼에도 학생들이 학생회에게 이보다 무언가를 확실하게 요구한 적이 없어서 반가웠다고 하셨어요. 저를 포함해 대학원과 학계의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는 모든 분들이 공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를 제기하는 게 우리가 몸담은 곳을 망하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조금 더 나은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것이죠. 그러니까 이해 관계자 분들은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주시고, 우리 연구자들은 조금만 더 용기를 내 함께 말하고 연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오래 전부터 들리던 이야기에요.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보경 : 인문학의 위기는 예전부터 있었던 말이지만 무엇을 위기라고 인식하는지, 저마다 어떤 위기에 공감대를 갖게 되는지는 천차만별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 위기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에 값하는 책이고요. 인문학의 가치나 담론적·사회적 영향력의 상실을 개탄하며 노스탤지어에 빠지거나, 이를 무관심이나 냉소적인 태도로 대하기보다는 현재 한국의 인문계 대학원과 학계가 과연 연구자를 길러낼 수 있는 자원을 가진 민주적인 공간인지 되묻고, 연구자들 스스로도 지식의 공공적 가치에 대해 더욱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는 강사법과 인권 침해 문제, 반복되는 성폭력 문제까지도 폭 넓게 다뤘습니다. 이 문제들이 반복되는 근본적 원인이 뭐라고 보고 계신가요?

보경 : 언급해주신 사안들은 대학원 및 학계의 특수한 조건이 얽혀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능력주의, 성차별주의 등의 조건들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폐단과 연결되어있는 것이기도 하죠. 이 중 어느 것도 유일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문제가 얽혀있는 구조가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강사의 열악한 노동 조건이 지속되는 원인을 경제·노동 정책뿐만 아니라, 성차별 구조나 대학의 위계화, 서울중심주의 등과 얽혀있는 구조 속에서 설명할 수 있을 때 그 근본적인 원인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대학원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만 한 것 같아요. 대학원만이 줄 수 있는 강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보경 : 이 질문이 반갑게 느껴져요. 이 책은 대학원의 문제를 진단하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결코 대학원 진학을 만류하는 근거로 쓰이려고 나온 것은 아니거든요.(웃음) 저는 대학원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계속 이어가며 지식 생산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고, 시야를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 그 내용을 가르치면서 교육의 기쁨도 느낄 수 있었어요. 현 대학원 시스템에서는 연구자 개인의 지식 생산 역량이 강조될 뿐, 재생산과 교육의 측면은 간과되고 있어서, 이 점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요.

수진 : 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대학원에서 세상을 단편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지 않으려고 늘 노력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늘 저의 무지와 오해와 편견을 접하게 되고, 그에 답하고 비판하는 방법을 훈련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제 지식과 생각의 범주는 아주 작고 한정적이라는 걸 계속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저로서는 이 일련의 지적 과정을 대학원 바깥에서 경험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학계와 대학원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보경 : 학계와 대학원은 좁게는 나뿐만 아니라 시민 사회, 국가, 세계, 지구가 왜 이런 모습이 되었고 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지식을 전문적으로 교육하고 생산하는 가장 주요한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앎은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에 효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수진 :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추동해 온 지식은 학자들의 논의가 축적돼 생겨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식 생산의 장이 현재 사회에서는 학계와 대학원이라는 제도적 형태로 구체화된 것이고요. 인류는 끊임없이 다종다양한 지식을 발명하며,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전망해 왔습니다. 현재 우리는 기후 위기라는 전례 없는 위기와 마주한 상태인데요.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가야겠죠. 문제를 인식하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지식을 생산하는 것, 그것이 학계와 대학원의 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고민으로, 다양한 궁금증으로 책을 집을 독자 분들께 한 마디 해주세요.

보경 : 이 책은 대학원에 대한 흔한 위기론을 반복하기보다는 지금의 현실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화와 행동을 말하는 책입니다. 며칠 전 작고하신 조세희 소설가가 생전에 남겼던 말처럼, 냉소주의를 버리고 희망을 지키는 일이 점차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지만, 결국 이 책은 희망의 편에 서고자 하는 책이라고도 말하고 싶습니다.

수진 :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한국에서 박사하기'가 무엇인지 궁금한 모든 분께, 또 지식의 유통 구조가 궁금한 분들께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독자 분들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든, 각자의 위치에서 이 책을 읽고 공감하고 비판하며, 한국 사회에서의 학문과 지식에 대해 한 번쯤 함께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보경

국문학 전공 페미니스트 비평가.



*현수진


중세인의 낯선 생각을 궁금해 하는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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