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게 띄우는 그녀의 안부 인사, 잘 지내나요, 청춘?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신경숙 작가는 자주 웃었다. 조금 의외였다. 이제껏 사진으로만 봐온 신경숙 작가는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시선을 빼앗긴 듯, 그늘이 드리운 얼굴은 ‘작가의 말’보다 더 앞서 어떤 말을 전하고 있는 듯했다.
201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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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랬다
신경숙 작가는 자주 웃었다. 조금 의외였다. 이제껏 사진으로만 봐온 신경숙 작가는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시선을 빼앗긴 듯, 그늘이 드리운 얼굴은 ‘작가의 말’보다 더 앞서 어떤 말을 전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런 표정을 짓고 있겠구나 싶게끔 말이다. “그랬나? 아마 소설의 분위기나 이미지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그녀는 또 한번 웃었다. 눈이 크고 예쁜 얼굴이었다. 하긴, 『엄마를 부탁해』 『리진』 『깊은 슬픔』 같은 책 표지에 이런 환한 미소가 담겨 있어도 어색하겠지. 그녀의 눈빛, 얼굴, 표정을 찬찬히 살펴보며 이런 감상을 주섬주섬 곱씹고 있었다.
인터뷰는 내내 ‘서정적’이었다. 겨우 귀를 기울여야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릴 법한, 깊은 숲 속의 도랑물 같은 마음 소리를 어떻게 그렇게 떠낼 수 있을까? 인터넷 공간에 쓰는 답글, 고 몇 문장만으로도 물씬하게 전해지는 그 감수성의 기원은 어디일까? 이런 질문들은 묻기도 전에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랬다. 느릿느릿 이어가는 말 속에, 그녀의 문장에서 보이는 말줄임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그녀라면, 응당 그런 문장을 쓸 수 있겠구나 싶게끔 말이다. 말하는 것에 온전히 마음을 두고 있는 듯, 활짝 웃다가도 이내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런 마음의 움직임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녀의 말에, 표정에, 눈빛에 같이 웃고, 같이 먹먹해졌다. 신경숙 작가는 그렇게 문장처럼 다가왔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윤, 명서, 미루, 단…… 네 젊은이의 청춘 노트다. 청춘이라는 한 시기를 통과해 나가는 네 개의 마음이 흔들리고 부딪치며 그려 놓은 포물선이다. 신경숙 작가는 이 소설이 네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주인공인 소설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 소설을 통해서 독자에게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엄마를 부탁해』의 엄청난 성공 이후, 사람들은 그녀의 다음 소설을, 다음 이야기를 주목했다. 혹자는 ‘이번 작품이 얼마나 좋은 소설일까’보다 ‘이번에는 얼마나 잘 팔릴까’에 주목하고 있는 듯도 보였다. 그래서 더욱 그녀의 마음을 두드려보고 싶었다. 언제나 그녀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왔지만, 이 소설을 읽을 때만큼은 묻고 싶은 말, 나누고 싶은 말을 적어두었다. 다 적고 나니 이제 이렇게 물어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그.쪽.으.로.갈.까?
언젠가…… 청춘, 괜찮아질 거야
지금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젊은 영혼들의 노트를 들여다보듯 그들 마음 가까이 가보려고 합니다. 더 늦기 전에요. 청춘에만 갇혀서는 또 안 되겠지요. 누구에게든 인생의 어느 시기를 통과하는 도중에 찾아오는 존재의 충만과 부재, 달랠 길 없는 불안과 고독의 순간들을 어루만지는, 잡고 싶은 손 같은 작품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p.374, ‘작가의 말’ 중)
‘이야기 여러 개를 장독대에 묻어둔 듯 갖고 있다’고 이전에 말씀하셨어요. 『엄마를 부탁해』 이후, 여러 개의 장독대 중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신 까닭이 궁금합니다.
“『엄마를 부탁해』의 반응이 예상 범위를 뛰어넘었어요. 그러면서 갑자기 제가 엄마나 가족 이야기를 쓰는 작가로 굳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내 생각은 그래요. 작가는 굳이 어느 층에 갇힐 필요는 없지만, 그 시대의 젊은 친구들과 함께 가는 게 가장 좋다고 봐요. 그런데 거기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 그게 이 작품을 선택하게 했던 하나의 이유였어요. 또 하나는, 우리나라의 ‘청춘 소설’이라고 했을 때, 선뜻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저는 앙드레 지드, 헤세의 소설을 읽으며 20, 30대를 통과했어요. 작가가 된 후에 보니, 젊은 친구들은 일본 소설을 많이 읽는 것 같더라고요. 한국어로 글 쓰는 작가로서, 젊은 친구들이 언제든지 손에 들고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면 좋겠다는 꿈이 있었죠.”
‘이십 년 후에도 계속 이 작품을 쓰고 있을 것만 같다’고 작가의 말에 밝히셨어요. 쉽게 놓지 못할 것 같은 작품이라는 의미일까요? 모든 소설이 특별한 의미가 있겠지만, 이 작품은 작가 개인에게는 어떤 작품인가요?
“내가 20대를 통과해 나왔을 때 가졌던 바람들. 그 말들이 이 작품 안에 많이 들어 있어요. 힘들었고……. 그땐 다 그랬죠. 나만 그랬겠어요. 그런데 누군가가 ‘언젠가…… 지금 이 시기를 통과해나가면, 지금 느끼고 있는 것들이, 지금의 슬픔이나 고민들이 누그러지고 괜찮아진다’ 이렇게 말해주길 바랬던 것 같아. 그래서 책도 많이 읽었고, 존경하는 사람들의 말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귀를 기울이기도 했죠. 그 시기에 듣고 싶었던 말들, 그때 가지고 싶었던 감정이 많이 담겨 있는 작품이에요.”
소설 『외딴 방』에도 ‘언젠가’라는 말이 나와요. 맨 앞장 ‘작가의 말’에도 나오고. 이 말 좋아하시는 거죠?(웃음) 저에게 ‘언젠가’는 ‘나중에, 다음에’처럼 막연하고 불확실한 말인데, 작가님이 말하는 ‘언젠가’는 확신과 실체가 있는 말 같아요. ‘꿈’이라는 단어의 느낌같이.
“맞아요. 그런데 내가 ‘언젠가’를 『외딴 방』에도 썼나?(웃음) 그러고 보니, 그 말 좋아하는 말 같아요. ‘언젠가’ ‘오늘’이라는 말도 좋아해요. 오늘은 현재고, 언젠가는 미래죠. 두 말을 다 좋아한다고 하니 이상하게 들리지만, 결국 같은 시간대겠죠. 오늘을 잘 살아나가기 위한 담보 같은 말이랄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들로 어려웠던 순간에, 기댈 수 있는 말이었어요. ‘나는 언젠가 작가가 될 거니까. 거기에만 자존심을 걸자’ 주문을 외우듯이……. 그리고 어떤 작품 쓰고 나서 아쉬운 마음에 자책이 들 때도, ‘한두 해 할 거 아니니까, 언젠가는. 뭐……’ 이런 생각.(웃음)”
요즘 품고 있는, ‘언젠가……’는 어떤 일인가요?(웃음)
“이런 말 하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평범한 말이기도 한데, 벌써 발설하기엔 어려운 말이에요. 인간적으로, 그리고 작가로서 늘, 현재형의 작가로 나이 들고 싶어요. 그게 나의 ‘언젠가’라는 말에 담겨 있어요.(웃음) 어떤 항아리에 담겨 있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첫 문장에서 끝 문장까지…… 한 문장도 버릴 게 없는 그런 책을 쓰고 싶어요. 그게 제 ‘언젠가’에요.”
짐작해보기로는, 작가의 말에 쓰시는 ‘언젠가’를 하나씩 이뤄 가시는 것 같아요. 굉장히 성실하신 편인 것 같아요.(웃음) ‘이런 걸 쓰고 싶다’ 하면 이내 써내시고 하니까.
“다른 일을 생각할 수가 없네. 쓰지 않는 나를 생각하면……. 쓰는 일에만 성실해요. 다른 일은 무척 게을러요. 집에선 신기하다고도 해요. 저 게으른 성격으로 어떻게 계속 쓰고 있는지.(웃음)”
모든 일에 성실할 수는 없으니까요.(웃음)
“소설은 특히, 쓰는 일 외에 성실하면 아무것도 못 해요. 이건 집중과 몰입이 필요한 일이라서, 시간과 마음을 투사해야 하니까. 다른 일에 성실하려고 하면 못쓰죠. 그래서 쓰는 일에만 성실하고요. 나머지는 다 엉터리죠.(웃음)”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3시부터 9시까지 매일 소설을 쓰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제가 원래 일찍 일어나요. 다시 자더라도 4시쯤 꼭 깨어나요. 이 작품 쓸 때는 아예 3시로 시간을 정해놓고, 9시까지 이 작품 쓰는 일에 온전하게 시간을 내 주고, 나머지는 다른 일을 하려고 했죠. 나중에 보니까, 그 시간이 나에겐 땅에 씨앗을 뿌리는 시간이었어요. 휘둘리지 않고 균형 잃지 않게끔. 이 작품 쓸 때는 『엄마를 부탁해』가 회자되던 때고, 상상을 뛰어넘은 일들이 많았어요. 만약 이 작품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안 해도 될 일들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싶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많이 휘둘렸을 거예요.”
결국 우리가 원하는 일, 마음을 전하는 일
그날 채플시간에 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학생은 나의 이십대 시절에 비추어 지금 이십대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 나도 모르게, 함께 있을 때면 매순간 오.늘.을.잊.지.말.자,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갖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학생들이 와아, 하고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난 줄 알았다가 다시 이어지자 학생들이 다시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은 언제든 내.가.그.쪽.으.로.갈.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p.365)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많이 걸어요. 작가님이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서 많이 걸었다는 얘기가 생각났어요. 작가님의 대학 시절을 상상해보니, 소설 인물 중 누군가의 얼굴에서 작가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실제로는 어떠셨나요?
“저도 대학 때 학교를 걸어 다녔어요. 소설 속에서 걷는 게 중요하게 나오죠. 풍속이 달라지고 많은 것들이 변화하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들을 생각해봤어요. 저는 그게 걷는 것, 읽는 것, 쓰는 것이라고 봐요. 작가가 작품을 읽고 쓰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써서 전하고, 네가 읽는다는 의미에서 읽고 쓰기죠. 그래서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네 명의 인물보다도,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청춘이라는 시간은 그렇잖아요. 어떤 것에 자기 존재를 다 걸잖아요. 그래서 아름다운 것 같아요. 우정, 사랑, 심지어 시대가 가져다주는 불화에도 자기를 다 투사해서 존재를 거는 열정. 늘 열려 있어서, 누군가를 늘 만나려고 하고, 사랑하려고 하는 마음. 청춘을 통과하는 시간에 이런 것들이 가장 강렬하게 투영된다고 봐요. 아무리 광속의 시대가 되어도, 마음을 전하는 일은 의미가 깊어지고, 사람들이 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소설 속에서는 문명 기기가 전혀 등장하지 않죠. 제목처럼 전화벨만 울려요. 내가 너를 찾는다는 소통의 의미인 거죠.”
그때, 학생 시절에 걸으면서 무슨 생각 하셨는지 기억나세요?(웃음)
“뭐랄까. 대학을 들어와서 나는 다른 환경 속에 그저 던져진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어려서는 마당이 넓은 시골에서 낙천적으로 성장했고, 자연을 경험했는데, 사춘기 때 나온 도시는 너무나 다른 거예요. 난 시골에서 한번도 내가 가난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너무 가난한 거야. 내가 있는 공간도 협소하고. 문을 열면 너른 마당 대신 뿌옇고 매캐한……. 대학에 와보니 거긴 내가 살던 서울과 또 다른 세계였죠. 적응할 때 곤란을 많이 겪었어요. 여기서 어떻게 발을 딛고 서야 할지. 굉장히 고독했고, 심지어 내 목소리가 어떤지도 몰랐어요. 말을 안 했으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미 시집을 가진 시인도 있었고, 독특한 친구들이 모인 예술 대학에서, 나는 어떻게 지내야 할지…….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고독했죠. 그래서 책도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특이한 친구들 사이에서, 작가님도 곧 특이한 사람이 된 셈이네요. 22살에 작가가 되셨으니까요. 그때부터 학교 생활이 좀 나아졌나요?
“사촌 언니가 있었는데, 언니는 대학에 못 가고 일을 했어요. 한두 달쯤 방황을 할 때, 언니가 일하는 곳 근처 다방에서 언니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주변을 빙빙 돌곤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언니가 늦게 일을 마치고, 나에게 앉아보라고 하더군요. 왜 학교를 안 가냐고. 나는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타이르더라고요. 굉장히 미안했어요. 정신이 반짝 났어요. 학교에 갔어요. 갔더니……. 재미있던데?(웃음) 시를 읽고 소설을 읽고 세미나를 하는 식의 수업이었고, 최인훈, 오규원, 정현종, 홍신선 선생님 등등 책 속에서 봤던 선생님들이 계셨어요. 꼭 나에게 뭘 가르쳐줘서가 아니라 그분들이 거기 존재하는 것 자체로 좋았어요. 선생님이 풍기는 문학적 분위기…… ‘포스’라고 하죠(웃음) 그걸 겪지 않았다면, 사촌 언니가 나에게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마치 소설 속 정윤을 보는 듯한데요.
“아무래도 투영되어 있겠죠. 그래서 나중에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그 옆을 못 떠났지. 계속 학교에 갔지.(웃음)”
소설 중에 가장 좋았던 부분 중 하나는 명서가 윤에게 고백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때 윤이 고백을 듣고 이렇게 말하잖아요. “윤미루만큼?”(웃음) 여자 마음을 너무 잘 알아, 하면서 웃었죠. 그런 고백을 받고 사랑에 빠지지 않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웃음)
“그렇게 고백하는 사람은 또 어디 있겠어요!(웃음)”
이런 고백을 받아보신 건지, 해보신 건지(웃음) 누가 이 대목을 읽어만 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고백은 받아본 적이 없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그렇다 싶은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어요. 너무 슬프다.(웃음) 그래서 마음이 언제나 울적했던 것 같아. 아유. 참……. 나중에 그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인생이라는 게, 또 어느 시간에 만나지기도 하잖아요. 어긋났던 둘의 마음이 마주치는 때도 있다고. 막상 그런 시간이 왔을 때는 그 마음을 믿지 않게 되는 거지. 오래 좋아했던 사람이 내게 왔어도, 마음 한편에는, 이 사람, 이전에 많이 좋아했던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게 이렇게 투영된 거지. ‘윤미루만큼?’ 이렇게.(웃음) 쓰면서도, ‘사랑 고백을 이렇게 하는 사람은 없어!’ 생각했어요. 하지만 있음직한, 누구나 다 하는 흔한 고백을 하려면 굳이 내가 쓸 필요가 뭐 있어. 나도 여기 열심히 빠져들어서 쓴 거예요. 나중에 탈고할 때, 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뺄까 하기도 했고.(웃음)”
설사 꿈이 없더라도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
제가 엿본 고백 중에 가장 낭만적인 고백이었습니다.(웃음) ‘작가의 말’에도 밝히셨지만, 사랑 소설인데 왜 이렇게 많은 죽음이 따라 나왔나요?
“그러니까, 나도 깜짝 놀랐어요.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고, 그렇게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놓는 과정에서 물론 기쁨도 있지만, 잃어버리고 상실할 때 느끼는 울적함도 함께 있다는 생각을 했고요. 특히 젊은 날에 가장 깊이 생각하는 게 죽음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죽음이란 무엇일까. 왜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특히 납득할 수 없는 죽음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바로 직전까지 안녕,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던 사람을 영영 볼 수 없게 된 충격. 그런 것이 청춘의 우리들을 굉장히 강타한다고 생각했어요.”
글 쓸 때 환경적 영향을 받는다고 하셨는데요. 2009년 연재하던 당시, 우리 주변에 납득하기 어려운 죽음이 여느 때보다 많았던 것 같아요. 혹시 그런 것도 소설에 영향을 끼쳤나요?
“굉장히 영향을 끼쳐요. 사회적 내상이죠. 작품을 탈고할 때, 많이 수정되었던 부분 중 하나가 단이의 군 생활이었어요. 천안함……과 맞물렸어요. 계속 뉴스를 보고 있는데, 어쩌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모든 게 충격적이었지만, 작가인 나로서는 할 일이 많은…… 아직 많은 시간을 살아야 하는 젊은 일병이…… 뜻하지 않게 죽음을 맞았고, 구조되지도 못한 채 20일도 넘도록 물 속에…… 이런 일들이 충격을 많이 주죠. 이 작품 속에서 윤 교수가 마지막에 남기는 말들이라든지, 제자들에게 쓴 편지에는 그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많이 썼어요. 비극적인 욕구에 시달리지 않을 정도로 사는 환경이 좋으면 다행이지만, 설사 꿈이 없더라도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 난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 모두는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여행자일세. 그러나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그냥 건너갈 수는 없어. 우리는 무엇엔가에 의지해서 이 강물을 건너야 해. 그 무엇이 바로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이기도 할 테지. 지금 여러분은 당장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배나 뗏목이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할 거야.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 실어나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여러분이 그것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이 역설을 잘 음미하는 학생만이 무사히 저쪽 언덕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p.62)
소설 속 인물들은, 사회적, 개인적인 슬픔을 붙잡고서 온몸을 던지고 있어요. 사실 요즘에는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고, 변해서 슬픔도 금방 잊히곤 하는데, 이 친구들은 요즘 친구들 같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일상의 힘은 엄청나게 세요. 그런 말 하잖아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밥을 먹고 있더라.’ 가장 강한 것이 일상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없으면 또 안 되죠. 살아가면서 체화한 일들은 그저 가라앉아 있을 뿐이라고 봐요. 일상에 덮여 숨죽이고 있을 뿐이지, 그것과 단둘이 대적하게 되는 순간에는 아주 강렬하게 작용을 하죠. 문학이란 것도 그래요. 그런 것과 대적하게 만들어요. 이 소설 속에 20년 후에도 느낄 수 있는 감정, 20년 전에도 느꼈던 마음, 그런 존재론적인 것들이 스며있기를 바라요.”
아무 정보 없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소설의 배경이 80년대라고 짐작했어요. 이후에 기사를 찾아보니, 선생님은 80년대 소설이 아니라, 마음의 얘기로 읽혔으면 좋겠다고 하셨더라고요. 그런데 80년대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들, 상처들이 등장합니다.
“소설 속의 사건들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일어나고 있잖아요. 태국을 봐요. 만약 이 소설이 일본어로 번역이 되었다면? 이스라엘어로 번역이 되었다면? 그랬을 때 우리는 그 어떤 시대를 떠올리지 않아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내 식으로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만약 ‘배수관을 타고 올라간다’고 하면, 그 장면을 함께 겪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때 일인가, 하겠지만요. 한 시대의 이야기로 그치려고 했다면, 더 분명하게 드러냈을 거예요. 청춘이라는 시기는 개인으로만 통과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에요. 사회에 가장 희망을 갖고 있고, 가장 절망하는 세대이기도 하죠. 그렇다고 트렌디하게 지금의 취직 문제를 다루기에는 너무나 현실의 풍경이지 않나. 이것만을 그려낸다면, 20년 후의 청춘들은 똑같은 말을 할 거예요. 옛날 소설이라고. 사회에서 겪는 불멸의 풍경을 가져오고자 했어요. 가져왔다는 말이, 너무 아프다…….”
개인적으로는 미래 언니의 죽음이 시대적으로 느껴졌어요. 왜 하필 그렇게 극단적인 사건이어야 했을까. 이것을 지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이 됐어요.
“젊은 날에는 그래요. 죽음밖에 내놓을 것이 없는 절통한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한 것이라고 죽음을 내놓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것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또 그런 사건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가. 따라가 보는 일이기도 하죠. 미래의 사건으로 미루의 손에는 낙인이 찍히죠. 그게 단지 미루의 낙인이 아니라, 우리의 낙인이라고 생각했어요. 미래의 죽음이라는 건 개인의 죽음이 아니니까요. 그런 것들이 남겨놓은 내상이 사라졌을까? 늘 우리 심리 안에 공존하고 있는 것 같아요. 미래의 사건은 연재할 때는 쓰지 못했던 부분이에요. 정말 소설을 좋아해서 인터넷 공간까지 찾아온 사람들에게 아침부터 이런 이야기를 읽게 할 수 없어서.”
참! 이 얘기 꼭 해드리고 싶었는데, 전 소설 속 유머, 되게 재미있었어요.(웃음)
“와, 이런 말 처음이다. 재밌대.(웃음) 그래요. 풍부하게 했습니다.(웃음) 언어와 관련된 유머들이에요. ‘때’라든지 ‘가슴’과 ‘어깨’라든지, 말이 바뀌었을 때 불러일으키는 웃음들이죠. (반응은 좀?) 글쎄, 뭐 아직은 별말이 없던데?(웃음)”
한 존재, 한 존재가 신화라고 생각해요
『엄마를 부탁해』를 비롯해 많은 소설들이 좋은 반응을 얻어 즐거운 일이 많으셨을 텐데요. 반면 베스트셀러, 소위 ‘잘 팔리는 책’이라고 이러쿵저러쿵 질시 어린 말들 때문에 속상하진 않으셨어요?
“어디까지나 문학 텍스트인데, 문학 밖의 것으로 얘기돼서 좀 속상했어요.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데까지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야 좀 편안해졌고요. 나는 내 작품이 나중에 다시 읽었을 때, 다르게 해석되는 텍스트이길 바라요. <화양연화>라는 영화를 내가 몇 번 봤어요. 볼 때마다 다른 게 보여요. 내 작품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시대와 시간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 모르겠어요. 답답하죠. 눈 밝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다시 읽히고 얘기되는 그런 시간도 오지 않을까……. 만만한 작품은 아니거든요.(웃음) 헌데 조금 서운했죠. 평범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느냐, 거기에 주제가 있는데 그런 것을 싹 무시하는 얘기를 들을 때 좀…….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곳까지 갔구나 싶어 체념했죠. 대신 이 작품을 썼죠.(웃음)”
문체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작가님이 많은 습작을 통해 문장 공부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습작하면서, 나만의 문체에 대한 욕구도 컸을 것 같아요. 그때 어떤 문장, 혹은 어떤 느낌을 갖고 싶었나요? 지금 독자들이 ‘신경숙 문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가요?
“강당 같은 곳에 책이 떨어져 있다고 쳐요. 표지도 없고 저자 이름도 없고, 출판사 이름도 없는 책이 있는데 누군가가 그걸 펼쳐보고 ‘아, 이것은 신경숙의 소설인데’ 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구별이 되고 알아볼 수 있는 그런 문체를 갖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런 마음이 계속 있죠. 새로운 건 이미 영상 매체가 거의 다 보여줬어요. 언어로써 새로울 수 있는 것은, 치밀하고 밀도 있는 언어의 본질을 전하는 데에 있죠. 이미 알고 있는 얘기라도 내가 그 이야기를 내가 했을 때 새로운 환기력을 갖기를 바랐어요. 내 작품은 그래요. 얼핏 봐서는 금방 그림이 떠오르고, 영상으로 뭔가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져요. 하지만 정말 다른 매체로 옮기려고 살펴보면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는 하소연이 많다고 해요. 그런 지점들, 언어만이 갈 수 있는 그런 지점이 있어요.
그리고 징후적이길 바랐죠. 어떤 하나가 다양한 것을 포함할 수 있게. 한번은 내 단편소설의 제목을 서로 바꿔봤어요. 제목을 바꿔도 무리가 없는 소설이 꽤 있더라고.(웃음) 뭔가를 뚜렷하게 지시하고 목적을 향해 가기보다는, 도달할 때까지의 감상이 그늘처럼 퍼지길 바라요. 같은 행동이라도 독특하게 느껴지기를 바라고요. 이 작품 안에서도, 묘지를 굳이 밤에 헤드랜턴을 끼고 가는 행위들. 거기서 퍼져 나오는 색깔들, 냄새들, 느낌들 이런 것들로 인해서 개개인의 심상이 신화적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나는 한 존재, 한 존재가 다 신화라고 생각해요.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평범한 사람들이 내 언어를 통해 후광을 얻길 바랐어요……. 그런 문체를 말하는 거였어요.”
작가님은 문장부호에도 소리를 입히는 것 같아요.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던 당시에는 내내 말줄임표를 따라 쓰곤 했어요.(웃음) 이번에는 말줄임표가 문장 사이사이에 들어왔더군요.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마음을 쿵쿵 뛰게 하더라고요. 내.가.그.쪽.으.로.갈.까! 좋아하시는 분들은 벌써 여기저기에 그런 문투를 따라 쓰고 있는 것 같고요.
“맞아요. 제가 생각한 것과 똑같아요.(웃음) 「풍금이 있던 자리」를 쓸 때, 소설이라고 기존에 배어왔던 걸 깨고 싶었어요. 도전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때 내가 젊은 열기로 가득 차 있을 때였죠. 아무도 쓰지 않는 식으로 시인지 소설인지 모르게 해보자. 전부 리듬과 운율을 주자고 생각했죠.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작품 쓸 때는 문장을 다 외웠어요.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실제로 외워 보이셨다!) 시 쓰는 허수경 씨와 가깝게 지냈어요. 찾아가고 만나고, 만날 밤마다 소설을 읽어줬어요. ‘오늘 여기까지 썼어. 근데 수경아. 이거 소설 맞아?’ 물었더니 그 친구 하는 얘기가 이랬어요. ‘소설가가 썼으니까 소설 맞을 거야.(웃음)’ 아무리 표현을 해도 안 되는 말이 있는 거예요. 부족해. 왜 거기까지 안 가지? 다른 말을 해봐도 부족해. 그렇게 다 하지 못한 말들이 말줄임표가 됐죠. 쉼표, 부호를 언어로 받아들인 거죠. 이번처럼 문장 사이에 점을 넣은 것은 내가 처음 쓴 건 아니지만, 말 사이사이에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어가길 바랐어요. 찾아오고 찾아가고. 알아주니 반갑네요.(웃음)”
26년의 소설가로서의 삶을 말하자면 어떻습니까? 기복이 많은 시간이었나요? 차근차근 단단해지는 시간이었나요?
“나는 스물두 살에 등단을 했고, 첫 책을 서른 가까이에 냈어요. 그때는 책 낼 기회가 없어서, 등단을 해도 일 년쯤 후에 등단한 잡지에서 첫 청탁이 오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인지 첫 책을 가졌을 때 느낌이 고대로 있어요. 첫 책은 서른 되기 직전 한 해 동안 다 썼던 작품이에요. 내가 서른이 되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글쓰기, 온 시간을 내줘보지 못하면 너무 많이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하던 일을 접고 글을 썼죠. 책으로 나왔을 때, 직장을 알아보던 중이었는데, 책이 나오고 일주일 후에 재판을 찍고, 또 일주일 후에 중쇄를 찍게 됐어요. 그래서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넓은 책상과 작업실을 마련할 수 있었죠. 그때부터 늘 쓰는 것에 집중해 있어서, 언제나 어떤 일이 있고 5년쯤 후에야 ‘아, 그때 내게 중요한 일이 있었구나’ 돌아보며 보냈던 것 같아요. 나는 그렇게 말해요. 아무도 내 작품을 읽어주지 않았어도 나는 계속 작품을 쓰고 있었을 거라고. 정말 그랬을 것 같아요. 좋으면 계속 하게 되잖아요.(웃음) 문학의 은혜를 많이 입었죠.”
26년의 소설쓰기. 이제는 무엇이 익숙해지고, 어떤 일이 여전히 어려운가요?
“새 작품을 쓸 때면 매번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겁이 나죠. 어떻게 시작을 하지?(웃음) 아주 낯설어요. 더 편해지고 수월해진 것이 없어요. 그래서 글쓰기는 일단 자기가 좋아해서 해야 한다고 말을 하죠. 그래야 행여 소통이 실패했을 때라도 버틸 힘이 생겨 나아가게 해주지, 만약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안 해도 되는 일 중 하나로 글쓰기를 시작하면 견뎌내지 못하겠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이나 죽음의 의미를 알게 되는 일이 나이 먹는 일과 비례하는 건 아니다. 내게는 오히려 청춘 시절보다 지금이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에 더 서툴고, 느닷없이 찾아 드는 죽음의 소식에 매번 당황하며 휘둘리니까. (…) 병원에 가기 위해 비누질을 여러 번 해 세수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나도 모르게 책상 쪽을 돌아다보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p.26)
‘김수영 님. 꿈을 이루세요.’ 그녀가 사인을 할 때마다 적는다는 문구. 2002년 이후, 꿈을 이루라는 말을 인사말처럼 듣고 있지만, 한 자 한 자 느릿느릿 적어준 그 글귀는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자신의 ‘언젠가’를 하나씩 이뤄가고 있는 그녀에게 나눠 받은 ‘언젠가’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 의지하고 있는 나의 ‘언젠가’의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나중에 지나고 보니 괜찮아졌다’라는 말은 좀체 나를 달래주지 못했지만, “소설 쓰는 일, 한두 해 하고 말 것도 아닌데, 잘 안 됐다고 뭐……. 언젠가는!”이라던 말. 청춘, 그 혼란의 한가운데서 그녀가 읊조렸다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누군가는 소설 속의 크리스토프 이야기이거나 제노비스 사건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고요한 방 한가운데서 불현듯 전화벨이 정적을 깨고 나를 두드리는 것처럼, 소설 속 어느 문장이, 어느 이야기가 그렇게 당신에게 가 닿지 않을까. 네 사람의 마음이, 윤 교수의 말들이, 작가의 진심이 그렇게 당신을 노크하지 않을까. 슬퍼하지 말라고.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라고.
신경숙 작가는 자주 웃었다. 조금 의외였다. 이제껏 사진으로만 봐온 신경숙 작가는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시선을 빼앗긴 듯, 그늘이 드리운 얼굴은 ‘작가의 말’보다 더 앞서 어떤 말을 전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런 표정을 짓고 있겠구나 싶게끔 말이다. “그랬나? 아마 소설의 분위기나 이미지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그녀는 또 한번 웃었다. 눈이 크고 예쁜 얼굴이었다. 하긴, 『엄마를 부탁해』 『리진』 『깊은 슬픔』 같은 책 표지에 이런 환한 미소가 담겨 있어도 어색하겠지. 그녀의 눈빛, 얼굴, 표정을 찬찬히 살펴보며 이런 감상을 주섬주섬 곱씹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윤, 명서, 미루, 단…… 네 젊은이의 청춘 노트다. 청춘이라는 한 시기를 통과해 나가는 네 개의 마음이 흔들리고 부딪치며 그려 놓은 포물선이다. 신경숙 작가는 이 소설이 네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주인공인 소설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 소설을 통해서 독자에게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엄마를 부탁해』의 엄청난 성공 이후, 사람들은 그녀의 다음 소설을, 다음 이야기를 주목했다. 혹자는 ‘이번 작품이 얼마나 좋은 소설일까’보다 ‘이번에는 얼마나 잘 팔릴까’에 주목하고 있는 듯도 보였다. 그래서 더욱 그녀의 마음을 두드려보고 싶었다. 언제나 그녀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왔지만, 이 소설을 읽을 때만큼은 묻고 싶은 말, 나누고 싶은 말을 적어두었다. 다 적고 나니 이제 이렇게 물어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그.쪽.으.로.갈.까?
언젠가…… 청춘, 괜찮아질 거야
지금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젊은 영혼들의 노트를 들여다보듯 그들 마음 가까이 가보려고 합니다. 더 늦기 전에요. 청춘에만 갇혀서는 또 안 되겠지요. 누구에게든 인생의 어느 시기를 통과하는 도중에 찾아오는 존재의 충만과 부재, 달랠 길 없는 불안과 고독의 순간들을 어루만지는, 잡고 싶은 손 같은 작품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p.374, ‘작가의 말’ 중)
‘이야기 여러 개를 장독대에 묻어둔 듯 갖고 있다’고 이전에 말씀하셨어요. 『엄마를 부탁해』 이후, 여러 개의 장독대 중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신 까닭이 궁금합니다.
“『엄마를 부탁해』의 반응이 예상 범위를 뛰어넘었어요. 그러면서 갑자기 제가 엄마나 가족 이야기를 쓰는 작가로 굳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내 생각은 그래요. 작가는 굳이 어느 층에 갇힐 필요는 없지만, 그 시대의 젊은 친구들과 함께 가는 게 가장 좋다고 봐요. 그런데 거기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 그게 이 작품을 선택하게 했던 하나의 이유였어요. 또 하나는, 우리나라의 ‘청춘 소설’이라고 했을 때, 선뜻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저는 앙드레 지드, 헤세의 소설을 읽으며 20, 30대를 통과했어요. 작가가 된 후에 보니, 젊은 친구들은 일본 소설을 많이 읽는 것 같더라고요. 한국어로 글 쓰는 작가로서, 젊은 친구들이 언제든지 손에 들고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면 좋겠다는 꿈이 있었죠.”
‘이십 년 후에도 계속 이 작품을 쓰고 있을 것만 같다’고 작가의 말에 밝히셨어요. 쉽게 놓지 못할 것 같은 작품이라는 의미일까요? 모든 소설이 특별한 의미가 있겠지만, 이 작품은 작가 개인에게는 어떤 작품인가요?
“내가 20대를 통과해 나왔을 때 가졌던 바람들. 그 말들이 이 작품 안에 많이 들어 있어요. 힘들었고……. 그땐 다 그랬죠. 나만 그랬겠어요. 그런데 누군가가 ‘언젠가…… 지금 이 시기를 통과해나가면, 지금 느끼고 있는 것들이, 지금의 슬픔이나 고민들이 누그러지고 괜찮아진다’ 이렇게 말해주길 바랬던 것 같아. 그래서 책도 많이 읽었고, 존경하는 사람들의 말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귀를 기울이기도 했죠. 그 시기에 듣고 싶었던 말들, 그때 가지고 싶었던 감정이 많이 담겨 있는 작품이에요.”
“맞아요. 그런데 내가 ‘언젠가’를 『외딴 방』에도 썼나?(웃음) 그러고 보니, 그 말 좋아하는 말 같아요. ‘언젠가’ ‘오늘’이라는 말도 좋아해요. 오늘은 현재고, 언젠가는 미래죠. 두 말을 다 좋아한다고 하니 이상하게 들리지만, 결국 같은 시간대겠죠. 오늘을 잘 살아나가기 위한 담보 같은 말이랄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들로 어려웠던 순간에, 기댈 수 있는 말이었어요. ‘나는 언젠가 작가가 될 거니까. 거기에만 자존심을 걸자’ 주문을 외우듯이……. 그리고 어떤 작품 쓰고 나서 아쉬운 마음에 자책이 들 때도, ‘한두 해 할 거 아니니까, 언젠가는. 뭐……’ 이런 생각.(웃음)”
요즘 품고 있는, ‘언젠가……’는 어떤 일인가요?(웃음)
“이런 말 하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평범한 말이기도 한데, 벌써 발설하기엔 어려운 말이에요. 인간적으로, 그리고 작가로서 늘, 현재형의 작가로 나이 들고 싶어요. 그게 나의 ‘언젠가’라는 말에 담겨 있어요.(웃음) 어떤 항아리에 담겨 있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첫 문장에서 끝 문장까지…… 한 문장도 버릴 게 없는 그런 책을 쓰고 싶어요. 그게 제 ‘언젠가’에요.”
짐작해보기로는, 작가의 말에 쓰시는 ‘언젠가’를 하나씩 이뤄 가시는 것 같아요. 굉장히 성실하신 편인 것 같아요.(웃음) ‘이런 걸 쓰고 싶다’ 하면 이내 써내시고 하니까.
“다른 일을 생각할 수가 없네. 쓰지 않는 나를 생각하면……. 쓰는 일에만 성실해요. 다른 일은 무척 게을러요. 집에선 신기하다고도 해요. 저 게으른 성격으로 어떻게 계속 쓰고 있는지.(웃음)”
모든 일에 성실할 수는 없으니까요.(웃음)
“소설은 특히, 쓰는 일 외에 성실하면 아무것도 못 해요. 이건 집중과 몰입이 필요한 일이라서, 시간과 마음을 투사해야 하니까. 다른 일에 성실하려고 하면 못쓰죠. 그래서 쓰는 일에만 성실하고요. 나머지는 다 엉터리죠.(웃음)”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3시부터 9시까지 매일 소설을 쓰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제가 원래 일찍 일어나요. 다시 자더라도 4시쯤 꼭 깨어나요. 이 작품 쓸 때는 아예 3시로 시간을 정해놓고, 9시까지 이 작품 쓰는 일에 온전하게 시간을 내 주고, 나머지는 다른 일을 하려고 했죠. 나중에 보니까, 그 시간이 나에겐 땅에 씨앗을 뿌리는 시간이었어요. 휘둘리지 않고 균형 잃지 않게끔. 이 작품 쓸 때는 『엄마를 부탁해』가 회자되던 때고, 상상을 뛰어넘은 일들이 많았어요. 만약 이 작품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안 해도 될 일들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싶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많이 휘둘렸을 거예요.”
결국 우리가 원하는 일, 마음을 전하는 일
그날 채플시간에 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학생은 나의 이십대 시절에 비추어 지금 이십대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 나도 모르게, 함께 있을 때면 매순간 오.늘.을.잊.지.말.자,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갖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학생들이 와아, 하고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난 줄 알았다가 다시 이어지자 학생들이 다시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은 언제든 내.가.그.쪽.으.로.갈.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p.365)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많이 걸어요. 작가님이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서 많이 걸었다는 얘기가 생각났어요. 작가님의 대학 시절을 상상해보니, 소설 인물 중 누군가의 얼굴에서 작가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실제로는 어떠셨나요?
“저도 대학 때 학교를 걸어 다녔어요. 소설 속에서 걷는 게 중요하게 나오죠. 풍속이 달라지고 많은 것들이 변화하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들을 생각해봤어요. 저는 그게 걷는 것, 읽는 것, 쓰는 것이라고 봐요. 작가가 작품을 읽고 쓰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써서 전하고, 네가 읽는다는 의미에서 읽고 쓰기죠. 그래서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네 명의 인물보다도,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청춘이라는 시간은 그렇잖아요. 어떤 것에 자기 존재를 다 걸잖아요. 그래서 아름다운 것 같아요. 우정, 사랑, 심지어 시대가 가져다주는 불화에도 자기를 다 투사해서 존재를 거는 열정. 늘 열려 있어서, 누군가를 늘 만나려고 하고, 사랑하려고 하는 마음. 청춘을 통과하는 시간에 이런 것들이 가장 강렬하게 투영된다고 봐요. 아무리 광속의 시대가 되어도, 마음을 전하는 일은 의미가 깊어지고, 사람들이 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소설 속에서는 문명 기기가 전혀 등장하지 않죠. 제목처럼 전화벨만 울려요. 내가 너를 찾는다는 소통의 의미인 거죠.”
그때, 학생 시절에 걸으면서 무슨 생각 하셨는지 기억나세요?(웃음)
“뭐랄까. 대학을 들어와서 나는 다른 환경 속에 그저 던져진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어려서는 마당이 넓은 시골에서 낙천적으로 성장했고, 자연을 경험했는데, 사춘기 때 나온 도시는 너무나 다른 거예요. 난 시골에서 한번도 내가 가난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너무 가난한 거야. 내가 있는 공간도 협소하고. 문을 열면 너른 마당 대신 뿌옇고 매캐한……. 대학에 와보니 거긴 내가 살던 서울과 또 다른 세계였죠. 적응할 때 곤란을 많이 겪었어요. 여기서 어떻게 발을 딛고 서야 할지. 굉장히 고독했고, 심지어 내 목소리가 어떤지도 몰랐어요. 말을 안 했으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미 시집을 가진 시인도 있었고, 독특한 친구들이 모인 예술 대학에서, 나는 어떻게 지내야 할지…….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고독했죠. 그래서 책도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특이한 친구들 사이에서, 작가님도 곧 특이한 사람이 된 셈이네요. 22살에 작가가 되셨으니까요. 그때부터 학교 생활이 좀 나아졌나요?
“사촌 언니가 있었는데, 언니는 대학에 못 가고 일을 했어요. 한두 달쯤 방황을 할 때, 언니가 일하는 곳 근처 다방에서 언니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주변을 빙빙 돌곤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언니가 늦게 일을 마치고, 나에게 앉아보라고 하더군요. 왜 학교를 안 가냐고. 나는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타이르더라고요. 굉장히 미안했어요. 정신이 반짝 났어요. 학교에 갔어요. 갔더니……. 재미있던데?(웃음) 시를 읽고 소설을 읽고 세미나를 하는 식의 수업이었고, 최인훈, 오규원, 정현종, 홍신선 선생님 등등 책 속에서 봤던 선생님들이 계셨어요. 꼭 나에게 뭘 가르쳐줘서가 아니라 그분들이 거기 존재하는 것 자체로 좋았어요. 선생님이 풍기는 문학적 분위기…… ‘포스’라고 하죠(웃음) 그걸 겪지 않았다면, 사촌 언니가 나에게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마치 소설 속 정윤을 보는 듯한데요.
“아무래도 투영되어 있겠죠. 그래서 나중에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그 옆을 못 떠났지. 계속 학교에 갔지.(웃음)”
소설 중에 가장 좋았던 부분 중 하나는 명서가 윤에게 고백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때 윤이 고백을 듣고 이렇게 말하잖아요. “윤미루만큼?”(웃음) 여자 마음을 너무 잘 알아, 하면서 웃었죠. 그런 고백을 받고 사랑에 빠지지 않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웃음)
“그렇게 고백하는 사람은 또 어디 있겠어요!(웃음)”
이런 고백을 받아보신 건지, 해보신 건지(웃음) 누가 이 대목을 읽어만 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고백은 받아본 적이 없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그렇다 싶은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어요. 너무 슬프다.(웃음) 그래서 마음이 언제나 울적했던 것 같아. 아유. 참……. 나중에 그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인생이라는 게, 또 어느 시간에 만나지기도 하잖아요. 어긋났던 둘의 마음이 마주치는 때도 있다고. 막상 그런 시간이 왔을 때는 그 마음을 믿지 않게 되는 거지. 오래 좋아했던 사람이 내게 왔어도, 마음 한편에는, 이 사람, 이전에 많이 좋아했던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게 이렇게 투영된 거지. ‘윤미루만큼?’ 이렇게.(웃음) 쓰면서도, ‘사랑 고백을 이렇게 하는 사람은 없어!’ 생각했어요. 하지만 있음직한, 누구나 다 하는 흔한 고백을 하려면 굳이 내가 쓸 필요가 뭐 있어. 나도 여기 열심히 빠져들어서 쓴 거예요. 나중에 탈고할 때, 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뺄까 하기도 했고.(웃음)”
설사 꿈이 없더라도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나도 깜짝 놀랐어요.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고, 그렇게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놓는 과정에서 물론 기쁨도 있지만, 잃어버리고 상실할 때 느끼는 울적함도 함께 있다는 생각을 했고요. 특히 젊은 날에 가장 깊이 생각하는 게 죽음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죽음이란 무엇일까. 왜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특히 납득할 수 없는 죽음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바로 직전까지 안녕,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던 사람을 영영 볼 수 없게 된 충격. 그런 것이 청춘의 우리들을 굉장히 강타한다고 생각했어요.”
글 쓸 때 환경적 영향을 받는다고 하셨는데요. 2009년 연재하던 당시, 우리 주변에 납득하기 어려운 죽음이 여느 때보다 많았던 것 같아요. 혹시 그런 것도 소설에 영향을 끼쳤나요?
“굉장히 영향을 끼쳐요. 사회적 내상이죠. 작품을 탈고할 때, 많이 수정되었던 부분 중 하나가 단이의 군 생활이었어요. 천안함……과 맞물렸어요. 계속 뉴스를 보고 있는데, 어쩌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모든 게 충격적이었지만, 작가인 나로서는 할 일이 많은…… 아직 많은 시간을 살아야 하는 젊은 일병이…… 뜻하지 않게 죽음을 맞았고, 구조되지도 못한 채 20일도 넘도록 물 속에…… 이런 일들이 충격을 많이 주죠. 이 작품 속에서 윤 교수가 마지막에 남기는 말들이라든지, 제자들에게 쓴 편지에는 그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많이 썼어요. 비극적인 욕구에 시달리지 않을 정도로 사는 환경이 좋으면 다행이지만, 설사 꿈이 없더라도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 난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 모두는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여행자일세. 그러나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그냥 건너갈 수는 없어. 우리는 무엇엔가에 의지해서 이 강물을 건너야 해. 그 무엇이 바로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이기도 할 테지. 지금 여러분은 당장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배나 뗏목이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할 거야.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 실어나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여러분이 그것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이 역설을 잘 음미하는 학생만이 무사히 저쪽 언덕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p.62)
소설 속 인물들은, 사회적, 개인적인 슬픔을 붙잡고서 온몸을 던지고 있어요. 사실 요즘에는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고, 변해서 슬픔도 금방 잊히곤 하는데, 이 친구들은 요즘 친구들 같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일상의 힘은 엄청나게 세요. 그런 말 하잖아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밥을 먹고 있더라.’ 가장 강한 것이 일상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없으면 또 안 되죠. 살아가면서 체화한 일들은 그저 가라앉아 있을 뿐이라고 봐요. 일상에 덮여 숨죽이고 있을 뿐이지, 그것과 단둘이 대적하게 되는 순간에는 아주 강렬하게 작용을 하죠. 문학이란 것도 그래요. 그런 것과 대적하게 만들어요. 이 소설 속에 20년 후에도 느낄 수 있는 감정, 20년 전에도 느꼈던 마음, 그런 존재론적인 것들이 스며있기를 바라요.”
아무 정보 없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소설의 배경이 80년대라고 짐작했어요. 이후에 기사를 찾아보니, 선생님은 80년대 소설이 아니라, 마음의 얘기로 읽혔으면 좋겠다고 하셨더라고요. 그런데 80년대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들, 상처들이 등장합니다.
“소설 속의 사건들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일어나고 있잖아요. 태국을 봐요. 만약 이 소설이 일본어로 번역이 되었다면? 이스라엘어로 번역이 되었다면? 그랬을 때 우리는 그 어떤 시대를 떠올리지 않아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내 식으로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만약 ‘배수관을 타고 올라간다’고 하면, 그 장면을 함께 겪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때 일인가, 하겠지만요. 한 시대의 이야기로 그치려고 했다면, 더 분명하게 드러냈을 거예요. 청춘이라는 시기는 개인으로만 통과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에요. 사회에 가장 희망을 갖고 있고, 가장 절망하는 세대이기도 하죠. 그렇다고 트렌디하게 지금의 취직 문제를 다루기에는 너무나 현실의 풍경이지 않나. 이것만을 그려낸다면, 20년 후의 청춘들은 똑같은 말을 할 거예요. 옛날 소설이라고. 사회에서 겪는 불멸의 풍경을 가져오고자 했어요. 가져왔다는 말이, 너무 아프다…….”
개인적으로는 미래 언니의 죽음이 시대적으로 느껴졌어요. 왜 하필 그렇게 극단적인 사건이어야 했을까. 이것을 지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이 됐어요.
“젊은 날에는 그래요. 죽음밖에 내놓을 것이 없는 절통한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한 것이라고 죽음을 내놓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것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또 그런 사건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가. 따라가 보는 일이기도 하죠. 미래의 사건으로 미루의 손에는 낙인이 찍히죠. 그게 단지 미루의 낙인이 아니라, 우리의 낙인이라고 생각했어요. 미래의 죽음이라는 건 개인의 죽음이 아니니까요. 그런 것들이 남겨놓은 내상이 사라졌을까? 늘 우리 심리 안에 공존하고 있는 것 같아요. 미래의 사건은 연재할 때는 쓰지 못했던 부분이에요. 정말 소설을 좋아해서 인터넷 공간까지 찾아온 사람들에게 아침부터 이런 이야기를 읽게 할 수 없어서.”
참! 이 얘기 꼭 해드리고 싶었는데, 전 소설 속 유머, 되게 재미있었어요.(웃음)
“와, 이런 말 처음이다. 재밌대.(웃음) 그래요. 풍부하게 했습니다.(웃음) 언어와 관련된 유머들이에요. ‘때’라든지 ‘가슴’과 ‘어깨’라든지, 말이 바뀌었을 때 불러일으키는 웃음들이죠. (반응은 좀?) 글쎄, 뭐 아직은 별말이 없던데?(웃음)”
한 존재, 한 존재가 신화라고 생각해요
“어디까지나 문학 텍스트인데, 문학 밖의 것으로 얘기돼서 좀 속상했어요.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데까지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야 좀 편안해졌고요. 나는 내 작품이 나중에 다시 읽었을 때, 다르게 해석되는 텍스트이길 바라요. <화양연화>라는 영화를 내가 몇 번 봤어요. 볼 때마다 다른 게 보여요. 내 작품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시대와 시간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 모르겠어요. 답답하죠. 눈 밝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다시 읽히고 얘기되는 그런 시간도 오지 않을까……. 만만한 작품은 아니거든요.(웃음) 헌데 조금 서운했죠. 평범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느냐, 거기에 주제가 있는데 그런 것을 싹 무시하는 얘기를 들을 때 좀…….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곳까지 갔구나 싶어 체념했죠. 대신 이 작품을 썼죠.(웃음)”
문체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작가님이 많은 습작을 통해 문장 공부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습작하면서, 나만의 문체에 대한 욕구도 컸을 것 같아요. 그때 어떤 문장, 혹은 어떤 느낌을 갖고 싶었나요? 지금 독자들이 ‘신경숙 문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가요?
“강당 같은 곳에 책이 떨어져 있다고 쳐요. 표지도 없고 저자 이름도 없고, 출판사 이름도 없는 책이 있는데 누군가가 그걸 펼쳐보고 ‘아, 이것은 신경숙의 소설인데’ 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구별이 되고 알아볼 수 있는 그런 문체를 갖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런 마음이 계속 있죠. 새로운 건 이미 영상 매체가 거의 다 보여줬어요. 언어로써 새로울 수 있는 것은, 치밀하고 밀도 있는 언어의 본질을 전하는 데에 있죠. 이미 알고 있는 얘기라도 내가 그 이야기를 내가 했을 때 새로운 환기력을 갖기를 바랐어요. 내 작품은 그래요. 얼핏 봐서는 금방 그림이 떠오르고, 영상으로 뭔가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져요. 하지만 정말 다른 매체로 옮기려고 살펴보면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는 하소연이 많다고 해요. 그런 지점들, 언어만이 갈 수 있는 그런 지점이 있어요.
그리고 징후적이길 바랐죠. 어떤 하나가 다양한 것을 포함할 수 있게. 한번은 내 단편소설의 제목을 서로 바꿔봤어요. 제목을 바꿔도 무리가 없는 소설이 꽤 있더라고.(웃음) 뭔가를 뚜렷하게 지시하고 목적을 향해 가기보다는, 도달할 때까지의 감상이 그늘처럼 퍼지길 바라요. 같은 행동이라도 독특하게 느껴지기를 바라고요. 이 작품 안에서도, 묘지를 굳이 밤에 헤드랜턴을 끼고 가는 행위들. 거기서 퍼져 나오는 색깔들, 냄새들, 느낌들 이런 것들로 인해서 개개인의 심상이 신화적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나는 한 존재, 한 존재가 다 신화라고 생각해요.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평범한 사람들이 내 언어를 통해 후광을 얻길 바랐어요……. 그런 문체를 말하는 거였어요.”
“맞아요. 제가 생각한 것과 똑같아요.(웃음) 「풍금이 있던 자리」를 쓸 때, 소설이라고 기존에 배어왔던 걸 깨고 싶었어요. 도전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때 내가 젊은 열기로 가득 차 있을 때였죠. 아무도 쓰지 않는 식으로 시인지 소설인지 모르게 해보자. 전부 리듬과 운율을 주자고 생각했죠.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작품 쓸 때는 문장을 다 외웠어요.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실제로 외워 보이셨다!) 시 쓰는 허수경 씨와 가깝게 지냈어요. 찾아가고 만나고, 만날 밤마다 소설을 읽어줬어요. ‘오늘 여기까지 썼어. 근데 수경아. 이거 소설 맞아?’ 물었더니 그 친구 하는 얘기가 이랬어요. ‘소설가가 썼으니까 소설 맞을 거야.(웃음)’ 아무리 표현을 해도 안 되는 말이 있는 거예요. 부족해. 왜 거기까지 안 가지? 다른 말을 해봐도 부족해. 그렇게 다 하지 못한 말들이 말줄임표가 됐죠. 쉼표, 부호를 언어로 받아들인 거죠. 이번처럼 문장 사이에 점을 넣은 것은 내가 처음 쓴 건 아니지만, 말 사이사이에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어가길 바랐어요. 찾아오고 찾아가고. 알아주니 반갑네요.(웃음)”
26년의 소설가로서의 삶을 말하자면 어떻습니까? 기복이 많은 시간이었나요? 차근차근 단단해지는 시간이었나요?
“나는 스물두 살에 등단을 했고, 첫 책을 서른 가까이에 냈어요. 그때는 책 낼 기회가 없어서, 등단을 해도 일 년쯤 후에 등단한 잡지에서 첫 청탁이 오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인지 첫 책을 가졌을 때 느낌이 고대로 있어요. 첫 책은 서른 되기 직전 한 해 동안 다 썼던 작품이에요. 내가 서른이 되는데, 이렇게 좋아하는 글쓰기, 온 시간을 내줘보지 못하면 너무 많이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하던 일을 접고 글을 썼죠. 책으로 나왔을 때, 직장을 알아보던 중이었는데, 책이 나오고 일주일 후에 재판을 찍고, 또 일주일 후에 중쇄를 찍게 됐어요. 그래서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넓은 책상과 작업실을 마련할 수 있었죠. 그때부터 늘 쓰는 것에 집중해 있어서, 언제나 어떤 일이 있고 5년쯤 후에야 ‘아, 그때 내게 중요한 일이 있었구나’ 돌아보며 보냈던 것 같아요. 나는 그렇게 말해요. 아무도 내 작품을 읽어주지 않았어도 나는 계속 작품을 쓰고 있었을 거라고. 정말 그랬을 것 같아요. 좋으면 계속 하게 되잖아요.(웃음) 문학의 은혜를 많이 입었죠.”
“새 작품을 쓸 때면 매번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겁이 나죠. 어떻게 시작을 하지?(웃음) 아주 낯설어요. 더 편해지고 수월해진 것이 없어요. 그래서 글쓰기는 일단 자기가 좋아해서 해야 한다고 말을 하죠. 그래야 행여 소통이 실패했을 때라도 버틸 힘이 생겨 나아가게 해주지, 만약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안 해도 되는 일 중 하나로 글쓰기를 시작하면 견뎌내지 못하겠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이나 죽음의 의미를 알게 되는 일이 나이 먹는 일과 비례하는 건 아니다. 내게는 오히려 청춘 시절보다 지금이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에 더 서툴고, 느닷없이 찾아 드는 죽음의 소식에 매번 당황하며 휘둘리니까. (…) 병원에 가기 위해 비누질을 여러 번 해 세수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나도 모르게 책상 쪽을 돌아다보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p.26)
‘김수영 님. 꿈을 이루세요.’ 그녀가 사인을 할 때마다 적는다는 문구. 2002년 이후, 꿈을 이루라는 말을 인사말처럼 듣고 있지만, 한 자 한 자 느릿느릿 적어준 그 글귀는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자신의 ‘언젠가’를 하나씩 이뤄가고 있는 그녀에게 나눠 받은 ‘언젠가’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 의지하고 있는 나의 ‘언젠가’의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나중에 지나고 보니 괜찮아졌다’라는 말은 좀체 나를 달래주지 못했지만, “소설 쓰는 일, 한두 해 하고 말 것도 아닌데, 잘 안 됐다고 뭐……. 언젠가는!”이라던 말. 청춘, 그 혼란의 한가운데서 그녀가 읊조렸다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누군가는 소설 속의 크리스토프 이야기이거나 제노비스 사건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고요한 방 한가운데서 불현듯 전화벨이 정적을 깨고 나를 두드리는 것처럼, 소설 속 어느 문장이, 어느 이야기가 그렇게 당신에게 가 닿지 않을까. 네 사람의 마음이, 윤 교수의 말들이, 작가의 진심이 그렇게 당신을 노크하지 않을까. 슬퍼하지 말라고.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라고.
18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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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팡팡
2012.12.17
책읽는 낭만푸우
2012.03.22
천사
201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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