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인색하지 않은 사람을 좋아해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누군가 내게 인색하게 굴면 ‘아, 내가 그에겐 이 정도구나’ 생각한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기 전에는, 지갑을 열기 전에는 결코 ‘먼저’가 없는 사람. 또 보고 싶진 않다.

eb1e9d7dd68e1b6c4a5151d6de4cf9de.jpg

 

“인색하지 않은 사람을 좋아해요. 그리고 인색한 사람을 싫어해요. 비단 금전적인 문제를 떠나서요, 인간사의 도리가 필요한 순간에 그 타이밍에 상대가 어떻게 구는가를 봐요. 그리고 내 사람이다, 내 사람 아니다 빠른 판단을 하는 것 같아요.”

 

-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인터뷰에서

 

인간적으로 궁금한 사람에게 종종 묻는 질문이 있다. 그러니까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시인 김민정을 만났을 때, 유독 그런 질문이 쏟아졌다. 궁금했던 시인이기 전에 궁금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나요?” 이 식상한 질문에 시인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 기다리던 찰나, 시인은 답했다. “인색하지 않은 사람을 좋아해요. 그리고 인색한 사람을 싫어해요.”

 

‘인색하다’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재물을 아끼는 태도가 몹시 지나치다’, ‘어떤 일을 하는 데 대하여 지나치게 박하다’이다. 아마 짠돌이, 짠순이로 표현될 수 있겠다. 시인의 대답이 지금까지 생각나는 건, 나 역시 ‘인색한’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주머니를 너무 안 여는 인색함, 더하기 지나치게 감정 표현을 안 하는 인색함. 입과 주머니를 꾹 닫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기란 영 마뜩잖다.

 

아직도 기억이 남는 후배가 한 명 있다. 7년 전쯤인가. 후배는 임용고시를 준비 중에 있었다. 특별히 가까운 관계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내게 상담을 요청해서 퇴근 후 만났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헤어지려던 순간, 나에게 불쑥 문화상품권을 하나 건넸다. “엥? 이게 뭐야?” “선배가 밥도 사주고 차도 사줄 것 같아서요. 제가 드릴 건 없고 그냥 받으세요.” 아, 이런 센스는 어디에서 배웠을까? 나이 차이도 꽤 나고 사는 곳이 멀어져서 지금은 연락을 안 하지만, 아직도 문화상품권을 받았던 광화문 사거리가 기억난다. 2주 전에는 싹수 후배가 메모를 하나 건넸다. “차 한 잔, 하실 수 있어요? 고민 좀 들어주세요.” 지갑을 들고 나갔는데 자기가 차를 사겠단다. 한 두 살 차이도 아닌데 어찌 내가 얻어 마셔? 끄응! 그러나 나는 어느새 후배가 사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 한 잔 얻어 마셔서 좋았던 건 아니다. 당연히 자신이 받아야 하는 위치라고 생각하지 않는 그 마음이 예뻤다.

 

누군가 내게 인색하게 굴면 ‘아, 내가 그에겐 이 정도구나’ 생각한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기 전에는, 지갑을 열기 전에는 결코 ‘먼저’가 없는 사람. 또 보고 싶진 않다. 가끔 생각한다. 돈이 너무 중요하면 말이다. 그 중요한 걸, 중요한 사람에게는 조금 나눌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갑도 마음도 가끔은 먼저 열자고 다짐하는 봄이다.

 

▶ 김민정 인터뷰 다시 보기

 

▶ ‘다시 읽는 인터뷰’ 한눈에 보기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저10,800원(10% + 5%)

자유분방함에 더해진 깊이, 삶의 굽이굽이를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활력 문학동네 시인선 84권, 김민정 시인의 세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솔직한 발성과 역동적인 감각으로 ‘시(詩)’라는 것의 남근주의와 허세를 짜릿하고 통쾌하게 발라버린 첫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2005), 더럽고 치사한 세상을 우회..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법정 스님의 죽비 같은 말씀 모음집

입적 후 14년 만에 공개되는 법정 스님의 강연록. 스님이 그간 전국을 돌며 전한 말씀들을 묶어내었다. 책에 담아낸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가르침의 목소리는 고된 삶 속에서도 성찰과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전한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길로 인도하는 등불과도 같은 책.

3년 만에 찾아온 김호연 문학의 결정판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소설가의 신작. 2003년 대전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에서 중학생 시절을 보냈던 아이들. 15년이 흐른 뒤, 어른이 되어 각자의 사정으로 비디오 가게를 찾는다.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모험을 행했던 돈키호테 아저씨를 찾으면서, 우정과 꿈을 되찾게 되는 힐링 소설.

투자의 본질에 집중하세요!

독립 리서치 회사 <광수네,복덕방> 이광수 대표의 신간. 어떻게 내 집을 잘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다. 무엇이든 쉽게 성취하려는 시대. 투자의 본질에 집중한 현명한 투자법을 알려준다. 끊임없이 질문하며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행동하도록 이끄는 투자 이야기.

건강히 살다 편하게 맞는 죽음

인류의 꿈은 무병장수다. 현대 의학이 발전하며 그 꿈이 실현될지도 모른다.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세계적인 장수 의학 권위자 피터 아티아가 쓴 이 책을 집집마다 소장하자. 암과 당뇨, 혈관질환에 맞설 생활 습관을 알려준다.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에 필요한 책.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