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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어린 개가 왔다] 바둑이는 누구인가?

정이현의 어린 개가 왔다 -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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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의 토사물을 뒤집어쓴 채 우리는 겨우 동물병원 대기실에 들어섰다. 병원은 작고 소박한 곳으로, 대기실 풍경은 어쩐지 동네 소아과를 떠올리게 했다. (2023.03.27)


소설가가 얼룩 개를 기른다고요?
정이현 소설가에게 어느 날 찾아온 강아지, 그 작은 돌봄과 애쓰는 마음을 연재합니다.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
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서로 적응해가는 이야기,
<채널예스> 격주 월요일을 기대해주세요.



직장에 있던 E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어울리는 부사는 '헐레벌떡'.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평일 오전이었다. 그를 아는 누구도 쉽게 믿지 못할 일이었다. 그는 매우 바쁜 직업에 종사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십수 년 동안 애가 아프다는 이유로 이렇게 일과 중에 정신없이 뛰어 들어온 것은, 음, 내 기억에는 없었다.(물론 이런 일이 대개 그렇듯 당사자의 기억은 다를지도 모른다)

우리는 바둑이를 들쳐 안고 차에 올랐다. 근처 동물병원 간판에 '24시'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곳을 향해 출발했다. 무의식 속에서 이것을 응급상황이라고 판단한다는 증거였다. 병원까지는 차로 5분은 넘고 10분은 넘지 않는 거리였다. 시내의 작은 도로인 만큼 과속할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도착 지점을 몇백 미터 남기고서, 바둑이는 갑자기 꿀렁꿀렁 소리를 내더니 속엣것을 게워냈다. 말로만 듣던, 개 멀미였다.

바둑이의 토사물을 뒤집어쓴 채 우리는 겨우 동물병원 대기실에 들어섰다. 병원은 작고 소박한 곳으로, 대기실 풍경은 어쩐지 동네 소아과를 떠올리게 했다.

"아이 이름은요?"

간호사의 첫 질문도, 진료 전에 먼저 체중을 측정하는 것도 소아과와 똑같았다. 간호사가 바둑이를 받아 안아 체중계 위에 살며시 올렸다. 화면에 ‘5.385’라는 숫자가 찍혔다. 나와 E는 동시에 짧은 탄식을 뱉었다. 보호소에서 나올 때 분명히 ‘몸무게 3킬로그램(추정)’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5.385가 맞았다. 우리가 당황해하는 모습이 이상했는지 간호사가 무심하게 툭 말했다.

"딱 봐도 이 정도 몸무게 되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보세요. 얘 발이 크잖아요."

발이 크다! 기시감이 드는 말이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강아지를 데려오기로 했지만 그 강아지가 바둑이라고는 확정되지 않았을 시기에 시댁 가족들과 식사 자리가 있었다. E가 당시 유력한 후보인 바둑이 사진을 가족들에게 보여주자 누님이 말했다.

"발이 큰 거 보니까 나중에 몸도 엄청 클 것 같은데."

E는 극구 부정했다. 물론 그가 부정하고 싶은 건, 앞의 말이 아니라 뒤쪽의 말이었을 것이다. 사진 촬영 각도상 그렇게 보일 뿐이며, 어미견이 6킬로그램 정도밖에 되지 않고, 동배 형제들도 다 작은 편이라고 그는 열심히 주장했다. 특기할 만한 점은 그가 누님이 아니라 계속 내 쪽을 바라보고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개의 크기와 상관없이 ‘견’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였으니 이 모든 대화를 절반은 남의 일인 듯 듣고 있었다. 그때 불판에 불고기를 볶아주시던 식당의 여사장님이 슬며시 우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디서 강아지 데려오시나 봐요?"

"네, 보호소에서요."

"어머 좋은 일 하시네!"

사장님은 집에서 유기견을 여러 마리 키우고 있다고 했다.

"어디 사진 좀 봐봐요. 아니, 발 하나도 안 큰데요, 뭘. 내가 개라면 많이 봐서 알아요."

그녀는 갑자기 카운터의 남편을 호출했다.

"참 이런 건 우리 아저씨가 전문이야. 개에 대해서는 저 사람이 박사거든요. 아주 확실해요."

아까부터 우리 쪽으로 귀를 세우고 계셨을 것 같은 남자 사장님이 헛기침과 함께 다가왔다. 바둑이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는 그분의 눈빛에선 뭐라고 설명할 길은 없지만, 과연 프로페셔널의 기운이 느껴졌다.

"안 커요!"

그는 단언했다. 바둑이는 발도 작은 편이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설명했다.

"제 어미보다 조금 더 클까 말까 그 정도일 거예요."

E가 와하하 크게 웃었다.

"정말 그렇죠? 여기 되게 맛있네. 자주 와야겠어요."

지나고 보니 바둑이에겐 순간순간 은인이 많았다.

진료실의 수의사는 동그란 안경이 잘 어울리는 선량한 인상의 남자분이었다. 가운을 입은 의료진 앞에, 작은 생명체를 안고 나란히 앉아 있자니 아주 오래전 첫 아이를 낳고 초보 보호자가 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사이 우리에게는 여러 일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수의사는 익숙하게 바둑이를 받아 안았다. 처음 보는 이의 품에 안긴 바둑이는 꽤 편안해 보였다. 적어도 우리한테 안긴 것보다는. 강아지가 혈변을 봤다는 말에 그는 대번 심각한 표정이 되어 사진은 찍어 오셨느냐고 물었다. 다음에는 꼭 사진을 찍어두라고 당부했다.

"3개월이라고 하셨죠? 큰 편이네요. 어디 이빨 한번 보겠습니다."

그는 바둑이의 입을 벌렸다. 바둑이의 이빨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아이, 정말 3개월이 확실한가요?"

더 놀랄 것도 없었다. 이빨 상태로 보아 3개월은 지난 것이 확실하며 그 이상, 아마도 4개월에 가까운 월령으로 추정된다고 그는 소견을 말했다. 나와 E는 서로 빠르게 눈을 맞추었다.

3개월에 3킬로그램인 강아지와 4개월에 5.385킬로그램인 강아지는 어떻게 다른가. 무엇이 다른가. 바둑이는 여전히, 여기 내 눈앞에서 무구하고 까만 눈망울을 껌뻑이고 있을 뿐인데.

수의사는 바둑이가 말 그대로 '시고르 자브종'이며, 강아지 때 발과 코가 크면 나중에 몸집이 커진다는 속설이 있지만 언제나 변수는 있기에 지금은 확실하게 말할 수 없고, 다만 자신의 임상 경험으로는 11~13킬로그램으로 성장하리라 추정된다고 조곤조곤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아주 건강해 보이는 강아지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증세로는 파보바이러스 장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 눈앞이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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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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