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교양은 진정 사라졌을까요?

몇 개월 전 《USA투데이》는 ‘최근 25년간 사라진 25가지’를 정리해 보도했는데, 그중 15위가 교양이었습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몇 개월 전 《USA투데이》는 ‘최근 25년간 사라진 25가지’를 정리해 보도했는데, 그중 15위가 교양이었습니다.

동감하시나요? 여기에 대한 답은 입장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전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믿지 않습니다. 거의 매일 같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있기 때문이죠.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교육 수준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전의 교양 있는 사람들이 당연히 알고 있었던 지식을 요새 사람들이 모르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예를 들어, 요새 사람들의 한문 실력은 백 년 전 교양인들에 비하면 형편없죠. 하지만 그들은 기본 지식이 사서삼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옛 사람들이 몰랐던 걸 압니다. 백 년 전 이 땅엔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극히 제한되어 있지만, 요샌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세월이 흐르면 교양의 내용도 달라지는 겁니다.

‘교양’에 관한 여러 가지 책

하지만 ‘교양의 죽음’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D모 영화의 토론자 중 한 명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몇 백 년 전 사람입니다!”라고 외쳤을 때, 전 그냥 지식의 결여가 아니라 ‘반교양’의 시꺼먼 실체를 봤습니다. 정치 기사 댓글란에 툭하면 등장하는 ‘좌파’라는 단어 사용의 과격한 자유로움을 볼 때도 비슷한 걸 느끼죠. 최근 차별금지법안과 관련된 많은 토론자들이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가 쌓은 지식을 뻔뻔스럽게 밟아 뭉개고 있을 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낍니다. 여기서 우리가 접하는 건 단순한 무지가 아닙니다. 원론만 따진다면 무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여기서 보이는 건 그냥 무지가 아니라, 토론에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초적인 지식과 교양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토론이라는 것에서 공통된 지식이라는 것은 공통된 언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거든요.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가장 편한 해답은 입이 달린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들은 꼭대기의 몇 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인터넷에서는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요. 거기에 대해 어떤 책임감도 느끼지 않으면서요. 질적 하락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보다 더 거대한 해답은 교양이라는 것이 원래부터 그렇게까지 힘이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교양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세상에 대해 거의 모든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21세기 초의 세계는 보편적인 교양이 커버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넓죠. 세상이 바뀌어 지식을 더욱 편하게 보존하고 전수하는 기술이 발명되지 않는 한, 우린 일반교양을 이전처럼 믿고 의지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우린 슬슬 그에 대처할 만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그 단계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아직 일반교양은 쓸만해요. 이전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대안품들도 나와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전 맨 위에 예로 든 “몇 백 년 전 사람 아리스토텔레스”의 발언을 비교적 편하게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건 단순히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에 대한 중·고등학교 수준의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토론을 한다고 나왔으면서 그전에 컴퓨터 앞에서 자판 몇 개를 두드리면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지식에 대해 전혀 대비하지 않은 나태함에 대한 비난입니다. 편견과 나태를 통제할 수 있는 있는 약간의 예절과 부지런함만 갖추어도 무의미한 충돌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세상은 꽤 좋아졌거든요.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법정 스님의 죽비 같은 말씀 모음집

입적 후 14년 만에 공개되는 법정 스님의 강연록. 스님이 그간 전국을 돌며 전한 말씀들을 묶어내었다. 책에 담아낸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가르침의 목소리는 고된 삶 속에서도 성찰과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전한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길로 인도하는 등불과도 같은 책.

3년 만에 찾아온 김호연 문학의 결정판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소설가의 신작. 2003년 대전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에서 중학생 시절을 보냈던 아이들. 15년이 흐른 뒤, 어른이 되어 각자의 사정으로 비디오 가게를 찾는다.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모험을 행했던 돈키호테 아저씨를 찾으면서, 우정과 꿈을 되찾게 되는 힐링 소설.

투자의 본질에 집중하세요!

독립 리서치 회사 <광수네,복덕방> 이광수 대표의 신간. 어떻게 내 집을 잘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다. 무엇이든 쉽게 성취하려는 시대. 투자의 본질에 집중한 현명한 투자법을 알려준다. 끊임없이 질문하며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행동하도록 이끄는 투자 이야기.

건강히 살다 편하게 맞는 죽음

인류의 꿈은 무병장수다. 현대 의학이 발전하며 그 꿈이 실현될지도 모른다.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세계적인 장수 의학 권위자 피터 아티아가 쓴 이 책을 집집마다 소장하자. 암과 당뇨, 혈관질환에 맞설 생활 습관을 알려준다.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에 필요한 책.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