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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와 심리학을 좋아한다면? 뮤지컬 <후, WHO?>

<후, WHO?>는 미스터리라는 장르는 물론이고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큰 재미를 맛볼 수 있는 뮤지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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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를 걷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즐비한 술집, 노래방, 음식점들 사이로 그보다 더 촘촘히 들어찬 공연장들 때문이다. 현란한 간판들에 가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그렇지, 아마도 두 건물 건너 하나쯤에는 주로 지하나 꼭대기 층에 생각지도 못한 공연장이 떡 하니 자리하고 있다. 제대로 모습을 갖춘 공연장이든, 불나면 큰일 나겠다 싶은 영세한 소극장이든, 결국은 그 극장만큼 다양한 공연들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는 얘기. 이렇게 작품이 많다 보니 독특한 작품을 놓치는 일도 많아졌다.

뮤지컬 <후, WHO?> 역시 오며 가며 포스터는 수차례 봤건만 미처 챙기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그러다 다른 작품을 취재하는 길에 이 작품에 배우 최재웅 씨가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최재웅이라면 뮤지컬 <쓰릴미>에서 김무열과 열연했던, <샤인>에서 1인 20역의 멀티 연기를 선사했던 그 배우 아닌가. 게다가 장르는 미스터리 스릴러란다. 오, 바로 다음 날 공연장을 찾았다.

프로이트를 생각하게 하는 독특한 무대

운 좋게도 공연 시작 전에 무대를 구경할 수 있었다. 청회색의 나무로 짜여진 무대에는 책상과 의자, 여러 개의 문과 창문이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닥과 천장, 벽면에 새겨진 커다란 퍼즐 조각들. 공연 홍보담당자는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 재우가 기억의 단서를 하나하나 맞춰가는 모습을 상징화한 무대라고 설명했다.

‘조각 맞추기’를 상징화한 무대

그러고 보니 ‘정신분석을 조각그림 맞추기’에 비유한 프로이트가 떠올랐다. 프로이트는 욕구나 충동들이 자아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 본체를 조각내거나 변형해 무의식에 가두는데, 정신분석을 통해 작은 조각들을 맞춰가다 보면 비로소 무의식의 갈등을 볼 수 있다고 했다(이무석의 『정신분석에로의 초대』). 조명까지 꺼져 다소 음산하고 침울한 무대가 왜 이렇게 친숙하게 느껴지나 했더니 바로 이 조각들 때문이었나 보다. 개인적으로 심리학에 관심이 생긴 터라, 작품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졌다.

<쓰릴미>를 떠오르게 하는 뮤지컬 <후, WHO?>

<후, WHO?> 관계자들이 들으면 섭섭하거나 화를 내겠지만, 뮤지컬 <쓰릴미>를 봤던 관객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무대에는 3명의 남자 배우(<쓰릴미>는 2명의 남자)만 등장한다. <쓰릴미>와 마찬가지로 무대 전환은 전혀 없고, 섬세한 조명이 다양한 분위기와 상황을 연출한다. 무엇보다 <쓰릴미>를 떠오르게 했던 것은 음악을 이끌어가는 악기가 피아노 단 한 대라는 점. <쓰릴미>와 같은 장르의 작품이 흔치 않아 비교가 되는 점도 있겠지만, 기본 연출 포맷이 유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기억의 조각을 맞춰가는 재우와 준서

뮤지컬 <후, WHO?>의 재우는 살인사건을 저지른 뒤 기억을 잃었다. 오직 떠오르는 것은 여동생 진희. 그러나 현실에서는 진희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무대에는 진희의 존재를 밝혀 그의 기억을 찾아주려는 심리학자와 재우를 따르는 동생 준서가 등장하지만, 어쩐지 세 사람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석연치 않다. 심리학자에게는 자신의 연구를 위한 무서운 욕심이 있고, 준서에게는 착하고 여린 모습 뒤로 포악한, 또는 그 이상의 모습이 있다. 무대는 그렇게 긴박함 속에 점점 조각을 맞춰가며 뜻밖의 큰 형상을 드러낸다.

뮤지컬 <후, WHO?>에 나오는 심리학 용어들

<후, WHO?>는 미스터리라는 장르는 물론이고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큰 재미를 맛볼 수 있는 뮤지컬이다. 그럼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후, WHO?>에 나오는 심리학 용어들을 몇 가지 살펴본다. 물론 비전문가의 귀동냥 지식이다.

먼저 재우는 ‘심인성기억상실’을 겪는다. 살인을 저지른 뒤 그에 따른 공포와 극도의 거부반응이 심리적으로 작용해 기억마저 사라진 경우다. 심리학자는 재우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그에게 ‘최면술’을 시도하는데, 최면은 긴장완화를 통해 평소 의식에 눌려 있었던 잠재의식을 일깨우는 것이다.

심리학자가 재우에게 최면을 걸고 있다

또한 심리학자가 재우와 준서에게 시행해온 ‘행동치료’는 그들의 이상행동을 정신이상 때문이 아니라 과거에 겪은 부적절한 경험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부적절한 행동습관을 제거하면서 적절한 습관을 학습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준서가 겪고 있는 ‘해리장애’는 마음을 편치 않게 하는 성격의 일부가 그 사람의 지배를 벗어나 하나의 독립된 성격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몽유병, 이중인격 등이 해당한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좋은 예다.

뮤지컬 <후, WHO?>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기대

그림조각 맞추기를 할 때 일정 수준까지는 큰 재미가 없지만, 지루하게 나열되던 작은 윤곽들이 더해지면서 큰 윤곽을 드러내면 도저히 손을 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경우도 중반 이후까지 계속 흩어져만 가던 단서들이 어느 순간 엮이고 뭉쳐 실타래가 풀릴 때 속 시원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뮤지컬 <후, WHO?>의 경우는 통쾌한 한 방을 위한 연결고리가 다소 헐거웠다. ‘아아!’가 아니라 ‘왜 그러지?’라는 의문이 남게 된다면 그 작품의 치밀성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객들의 구미에 맞는,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물 일색인 대학로 공연장에서 색다른 장르의 뮤지컬을 접할 수 있었다는 신선함, 또 피아노와 조명만으로 무대 분위기와 상황을 이끌어가는 독특함은 손색이 없었다. 무엇보다 3명의 배우가 보이는 정돈된 연기와 뛰어난 가창력, 특히 묘한 울림과 격정이 있는 3중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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