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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을 지키며 살 수 있을까 - 『도가니』

거짓과 폭력 앞에서 분노하기는 쉽지만, 그에 맞서 싸우고, 죽어 가는 진실을 구해 내는 일은 어렵다. 작가 공지영이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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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공지영 저 | 창비
거짓과 폭력 앞에서 분노하기는 쉽지만, 그에 맞서 싸우고, 죽어가는 진실을 구해 내는 일은 어렵다. 작가 공지영이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광주의 모 장애인 학교에서 자행된 성폭력 사건 실화를 다룬 이 소설은, 귀먹은 세상이 차갑게 외면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이자 거짓과 폭력의 도가니 속에서 한줄기 빛처럼 쏘아 올린 용기와 희망에 대한 감동적 기록이다.
한 편의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본 것 같다. 작가의 말에도 나와 있지만 광주의 모 장애인 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다룬다. 죄를 짓고도 뻔뻔한 힘 있는 사람들과 그 주변에 얽혀 있는 또 다른 힘 있는 사람들. 죄지은 사람의 죄를 물었단 이유로 고통받아야 하는 사람들. 소설 속에 나타난 갈등은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갈등 구조를 그대로 보여 준다.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 용산 참사, 쌍용차 파업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수많은 일들이 이 단순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결과도 늘 비슷하다. 소설에서 장애아를 성폭행한 교장과 행정 실장, 선생이 아주 가벼운 처벌을 받은 반면, 그 죄를 물으려 했던 이들은 힘없는 자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고통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빼앗기는 일이다.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자애 학원의 기간제 선생으로 부임하게 된 강인호는 처음부터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다. 학교 발전 기금이라는 명목으로 5천만 원을 내고 자애 학원의 선생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권력자들에게 저항할 수 없는 약점이 된다. 그랬던 그가 교장과 행정 실장의 성추행 사실을 고발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저항할 수 있는 아무런 힘도 수단도 없는 가여운 농아들에 대한 사랑과 의리였다. 그리고 그것이 돈 때문에 빼앗겼던 자기의 자존심을 되찾아 올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족이라는 현실이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 수애. 농아들에게도 강인호가 필요했지만 아내와 딸에게도 강인호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아내는 소설 속에서 강인호가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순간마다 궂은일을 자처한다. 친구에게 기간제 교사 자리를 청탁한 것도 아내고, 학교 발전 기금을 마련해 준 것도 아내다. 그리고 농성장이 철거되는 새벽 강인호가 현장으로 갈 수 없었던 이유도 아내가 마침 그날 서울에서 강인호를 데리러 왔기 때문이다. 그는 선택해야 했다. 결국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고 강인호는 아내와 함께 서울로 올라간다.

강인호는 농아들과 끝까지 함께 하면서 돈의 노예가 되는 길을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가족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가 투사가 되어 농아들의 인권을 지키고, 사회의 부조리를 끝까지 용서하지 않았다면 소설을 통해 또 다른 대리 만족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빌딩이라는 나무가 가득한 서울이라는 숲으로 몸을 숨긴 강인호를 욕할 수는 없다. 그게 현실이고 세상의 이치다. 세상은 그렇게 우리를 길들인다. 세상을 바꾸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강인호와 달리 농아들과 끝까지 남아 싸우는 서유진은 말한다.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내가 바뀌지 않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일을 아주 조금은 늦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이다. 자존심을 지키며 산다는 거,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거 말처럼 쉽지가 않다.

공지영

예리한 통찰력과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현실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작가, 불합리와 모순에 맞서는 당당한 정직성,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뛰어난 감수성으로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은 작품들을 발표해온 작가 공지영.

『봉순이 언니』 『착한 여자』를 쓰고, 착한 여자로 살면 결국 이렇게 비참해진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그녀는 7년 간의 공백기를 가지면서 선한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확신을 갖고 계속 글을 쓰고 있다는 그녀는 공백기 이후 『별들의 들판』을 내고 나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즐거운 나의 집』 등 정력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여준호 (수험서/자격증, 대학교재(전문서적) 담당)

YES24 수험서/자격증, 대학교재(전문서적) 담당. 고양시 주민. 2005년 생일에 도로주행 낙방의 충격으로 운전면허는 따지 않기로 했다. 덕분에 시원한 지구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다. 2009년 12월 듀엣곡 「행복한 바보」(준수& 준호, 디지털싱글)를 발표. 친구 결혼 선물이었으나 친구 부부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합격과 성공까지 드릴 수 없지만 제게 남은 모든 행운을 드리겠습니다. 팍! 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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