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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금융위기 이후』

위기가 삶을 직격하는 사회, 위기에도 삶이 회복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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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세계금융위기 이후』는 소중한 의미로 다가온다. 세계 금융 위기가 가져온 충격과 그 극복의 방향을 ‘수치’가 아닌 ‘삶’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저 | 한스미디어
이 책은 세계 경제의 주류였던 신자유주의 현상을 진단하고 대안을 찾아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10여 개월 동안 세계 곳곳을 누빈 취재의 결과이다. 금융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월가, 그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북유럽 아이슬란드, 그리고, 한국, 일본 등지에서부터 북유럽식 사민주의로 신자유주의 대안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까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1997년 11월. IMF 구제 금융을 받기로 정부가 선언하던 날. 나는 고3을 앞두고 있었다. 여기저기 쏟아지던 명예 퇴직자들에 놀란 어머니는 내게 대학에 가는 대신 9급 공무원 시험을 보길 권하셨다. 부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안정된 직장을 갖는 게 제일이며, 9급 시험은 고등학교 졸업 직후가 가장 확률이 높다는 얘기였다. 자식을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려는 세상에서 ‘고졸’을 권유하게 된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것이 내게 다가온 ‘위기’의 모습이었다.

나라가 국민에게 바라던 것도 어머니의 바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졸’에서 ‘고졸’로 기대를 낮추듯이, 나라는 정년 보장과 정규직에 대한 기대를 낮추라고 했다.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대량의 해고자가 발생했고,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에겐 이기적이라 몰아세웠다. 바야흐로 참고 견뎌야 할 때였고, 서울역은 붐벼만 갔다. 그리고 2001년. 대통령은 ‘IMF 졸업’을 선언했다. 위기는 극복된 것이었다. 그런데 ‘위기 극복’은 ‘위기 이전으로의 복귀’를 의미하지 않았다. 해고는 더욱 자유로워졌으며, 비정규직은 더욱 늘어났다. 오늘날 비정규직은 8백만에 육박한다. 위기는 우리 삶을 직격하되, 위기 극복은 우리 삶을 복구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내가 알게 된 진실이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공무원에 대한 미련을 드러낸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볼 때 처방이 옳다면 회복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위기’에 대한 우리의 처방은 옳았을까. 정부가 ‘위기 극복’을 선언했으니 처방은 옳았던 것이고 회복이 되어야 했다. 분명 수치로 표시되는 경제는 회복이 되었다. 그러나 서민들의 삶은 회복되지 않았다. 회복이 된 것이 결국 ‘수치’였다면, 우리의 처방은 딱 그만큼만 옳을 뿐이었다.

그리고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시작된 세계 금융 위기. 세계적으로는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 국내적으로는 제2의 IMF라며 떠들썩했다. 하지만 실제로 위기에 대한 처방은 특별하지 않았다. ‘기업에는 자유를, 파업에는 진압을!’이라는 구호는 익숙했고, 금리를 낮추고 외화 보유고를 확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10년 전의 그 처방과 유사했고, 역시나 정부는 수치의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서민의 삶은 회복되지 않는다. ‘위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너무 예상대로여서, 위기 극복 후의 삶에 희망을 걸진 않는다.

그래서 이 책 『세계금융위기 이후』는 소중한 의미로 다가온다. 세계 금융 위기가 가져온 충격과 그 극복의 방향을 ‘수치’가 아닌 ‘삶’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일이었고, 높은 수치의 경제에서 이익을 보는 이들은 관심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입바른 소리 하다가 더욱 가난해진 경향신문 기자들이 나섰고, 이들이 거의 1년 동안 전 세계로 발품을 팔았다. 이 책은 바로 그 기획 연재물을 모은 책이다.(당시에는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라는 제목으로 연재)

기자들은 금융 자유화로 1인당 GDP가 6만 달러에 이르렀으나 세계 금융 위기로 폭삭 무너진 아이슬란드를 방문하고, 세계 금융 위기의 진앙지 미국을 방문한다. 또 이 위기의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튼튼하게 버티고 있는 북유럽권 나라들도 찾았다. 금융 세계화로 하나로 묶인 세계에서 어느 한 곳 금융 위기의 파장은 비켜가지 않지만 나라에 따라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상당히 달랐다. 장기 실업자가 넘쳐 나는 아이슬란드와 집을 뺏긴 사람들로 넘치는 미국과 달리, 지방 정부가 끊임없이 고용을 보장하고 보육-의료 서비스는 물론 노년 연금까지 ‘소득과 무관하게’ 보장되는 북유럽은 위기 속에서도 ‘안정된 삶’을 보장하고 있었다. 이 양쪽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밀착 취재한 부분은 ‘위기가 삶을 직격한 사회’와 ‘위기 속에서도 삶이 회복되는 사회’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더욱 눈여겨볼 것은 아이슬란드와 미국의 경우 금융 및 제반 경제 활동에 규제를 최소화하고 감세를 통해 사회 안전망을 축소한 공통점을 보인 반면, 북유럽의 경우는 국가와 지방 사회가 고용 및 공공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세금을 많이 부과해 사회 안전망을 탄탄히 마련한 공통점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탄탄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이 시스템의 해체 시도를 봉쇄하는 ‘정치적 억제력’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북유럽의 특징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답은 명확하다. 위기가 삶을 직격한 우리 사회도 미국, 아이슬란드와 동일한 길을 택해 왔다.

수치를 회복하려는 이들은 오늘도 나름의 진단을 하고 처방을 내리지만, 여전히 가던 길을 가려고 한다. 세련되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말하고, 선진화를 외치지만 ‘삶의 질’ 선진국들을 배울 생각은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을 꿈꾸는 우리들 자신이 우리 사회를 개선할 힘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사실 북유럽도 강력한 노조의 힘을 통해 오늘날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진단을 할 지위도, 처방을 할 힘도 없었지만, 이제는 분명 목소리를 모아야 할 때다. 이 책은 그 작은 시작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오늘의 어려움은 어디서 왔는지, 더 나은 내일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 튼튼한 미래, 삶이 회복되는 사회를 설계하고 싶다면 눈여겨봐야 할 책이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조찬제: 금융위기 발화점과 성격, 전망 등을 다뤘다. 1991년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를 거쳐 국제부 차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7년 8월부터 1년간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연수했다.

서의동: 국내 금융시장 전반의 현황과 문제점을 검토하고 키코, LBO 등 각종 금융기법의 도입과정, 문제점 등에 대한 기사를 작성했다. 2008년 입사해 경제부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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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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