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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간이 아닌 것은 헛간이 아니에요”

조금 전에 집에서 출발했는데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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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번 도로를 달리다가 20분이 채 안 되어 우리는 흙먼지 날리는 오래된 도로로 접어들었다.

 
37일 동안: 행복을 부르는 37가지 변화
패티 다이 저/박유정 역 | 이숲
당신의 삶이 37일 남았다면, 지금처럼 살겠습니까?
저자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정확하게 37일 후에 세상을 떠나는 사건을 경험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돌아보는 계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37일만이 아니라,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그 뼈아픈 통찰을 통해 『37일 동안』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은 37일 동안 우리가 하루하루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그리고 이후로도 어떻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인지, 늘 미래로 미루는 행복을 어떻게 지금 느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제시한다.

산을 오르는 길은 수백 갈래지만,
모든 길이 결국 한곳으로 모이기에
어떤 길을 택하든 상관없다.
산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떠드는 자만이
유일하게 시간을 낭비한다.

- 힌두의 가르침




조금 전에 집에서 출발했는데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19-23번 도로를 달리다가 20분이 채 안 되어 우리는 흙먼지 날리는 오래된 도로로 접어들었다.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모르타르 지붕 아래 햇빛과 비와 세월에 말라비틀어진 목제 구조물이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 헛간이었다.

“저기 보세요!”

늘 지니고 다니는 말하는 조니 뎁 인형을 손에 들고 차의 뒷좌석 유아용 시트에 앉아 있던 테스가 외쳤다.

“보세요! 건물이 무너지고 있어요!”

“아가야, 저것은 헛간이란다.” 존이 말했다.

“아주 오래된 건물이구나. 사람들이 저런 건물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느냐면…”

“잠깐만요!”

딸아이가 농경시대에 관한 강의를 시작하려던 남편의 말을 가로막았다.

“보세요! 저기 또 있어요! 빨간색이에요!”

우리는 시골길을 달리면서 열댓 채의 헛간을 지났는데, 테스는 그때마다 흥분해서 차 안이 떠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현실적인 십대 소녀인 테스의 언니는 점점 더 화가 치미는지 뒷좌석 끄트머리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창밖을 노려보다가, 시끄럽게 떠드는 여동생을 야단치라는 듯이 앞좌석에 앉은 우리 부부를 노려보았다.


“저기 또 있어요! 헛간! 헛간이에요!”

손수레와 농기구를 보관하는 조그만 창고를 가리키며 테스가 소리쳤다.

“헛간이 아니야!”

바짝 심술이 나 있던 엠마가 투덜거렸다. “헛간이 아니라니까. 테스!”

“헛간 맞아!” 테스가 소리쳤다.

“헛간이야! 아주, 아주, 작은 헛간! 아주 작은 꼬마 헛간이란 말이야!” 테스가 우겼다.

“아니야.” 엠마가 말했다. “헛간이 아니야. 헛간이 아니라 창고야!”

“헛간이라니까! 그것도 헛간이야! 헛간이야! 헛간이야!” 테스가 외쳤다.

아이들의 말다툼이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엠마는 까칠한 열다섯 살 소녀다. 매일 밤 나는 엠마에게 자러 가야 할 때를 일러준다. “엠마, 이제 늦었으니 자러 가야지?”

“지금 몇 시예요?” 엠마가 묻는다.

“9시 반이야.”

딸이 반박한다. “엄마, 지금 9시 27분밖에 안 되었어요.”

차창 밖으로 멍하니 헛간을 바라보면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겨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되뇌었다. 시간은 새로운 시야와 새로운 발전, 새로운 이론, 새로운 발견을 가져온다. 또한 판단의 오류, 불완전한 관찰 혹은 잘못된 측정에 의한 오류, 불충분한 경험에서 비롯된 오류를 바로잡는다. 시간의 흐름은 시의 운율처럼 우리 이해의 리듬을 빠르게 하거나 느리게 할 수 있다. 어떤 사물, 예를 들어 헛간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베노이트 만델브로의 프랙탈 이론은 ‘영국의 해안선 길이는 얼마인가?’라는, 어찌 보면 단순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그 해답은 수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그 길이가 얼마나 되기를 바라는가?’라는 그다음 질문은 무엇이 헛간이며 혹은 헛간이 아닌가를 다루는 문제로 발전했다. 이미 증명된 바와 같이, 영국 해안선의 길이는 정확하게 측량할 수도 있고, 무한대가 될 수도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 혹은 기준이나 척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싫어했던 양자역학처럼 동시에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답이 가능하고, 자각의 신빙성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헛간이 헛간이거나, 창고거나, 헛간 비슷한 어떤 것인들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뒷좌석의 반란은 계속되었고,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헛간이라고!”

“아니야!” 나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남편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뭐라고?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그냥 헛간이라고 해요.”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냥 헛간이라고 하자.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린다 블레어가 그러듯이 나는 천천히 고개만 뒤로 돌려 엠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엠마, 그냥 헛간이라고 하는 게 좋지 않겠니?”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는 거예요?” 엠마가 물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딸애의 총명함과 편협한 싸움을 포기할 줄 아는 아량에 흡족해서 내가 대답했다.

“아주 시적이에요. 아주 의식적이고, 포용력 있고, 흥미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군요!”

나는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바라보며 짓는 예의 그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엠마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엠마가 마지막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헛간이 아닌 것은 헛간이 아니에요.”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관한 힌두교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달리는 차에서 아무도 모르게 뛰어내릴 수 있을지 골몰히 생각하는 데 뇌세포를 혹사하지 않았더라면, 헛간 소동이 일어났을 때 엠마에게 그 가르침을 들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각자가 느끼는 현실은 서로 다르다. 내가 차별적인 행동으로 보는 것을 어떤 사람은 과민반응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내가 위험하다고 보는 것을 어떤 사람은 과감하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어떤 사람은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은 헛간인가, 창고인가? 나의 현실이 다른 사람의 현실보다 더 사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국 해안선의 길이는 얼마인가?

어느 날 기차에서 어떤 사람이 피카소에게 사실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따지듯 물었다. 피카소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그 남자는 지갑에서 부인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이렇게 생긴 모습을 사실대로 그려야 하지 않느냐’며 자기 생각을 설명하려 했다. “부인께서는 키도 작고, 몸매도 퍼졌군요. 그렇죠?” 피카소가 대답했다.

● 진리는 없다. 단지 견해가 있을 뿐이다. - 에디스 스트웰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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