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비행기에서 과연 비상탈출이 가능할까?

나부터 먼저 산소 마스크를 쓰자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비행기를 매우 빈번하게 이용했다. 실제로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땅에서 너무 높이 떠 있는 인생의 슬픈 증거인...

 
37일 동안: 행복을 부르는 37가지 변화
패티 다이 저/박유정 역 | 이숲
당신의 삶이 37일 남았다면, 지금처럼 살겠습니까?
저자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정확하게 37일 후에 세상을 떠나는 사건을 경험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돌아보는 계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37일만이 아니라,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그 뼈아픈 통찰을 통해 『37일 동안』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은 37일 동안 우리가 하루하루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그리고 이후로도 어떻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인지, 늘 미래로 미루는 행복을 어떻게 지금 느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제시한다.

나만의 삶이 없다면, 나는 살아갈 수 없다. - 에밀리 브론테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비행기를 매우 빈번하게 이용했다.
실제로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땅에서 너무 높이 떠 있는 인생의 슬픈 증거인 델타 마일리지 플래티넘 카드는 매년 나의 긴 여정을 기록했다. 나는 거의 매주 델타 항공 홈페이지에 들어가 비즈니스 좌석이 배정되기를 바라는 헛된 꿈을 꾸며 업그레이드의 신에게 기도하곤 했다.

그것은 거의 도박중독과 같은 증세였는데, 뉴질랜드 친구 리처드와 함께 1995년 어느 저녁 멜버른에 있는 카지노에서의 달콤했던 순간을 빼고 나는 도박에서도 재미를 본 적이 없다. 그때는 철없던 젊은 시절이었다.

3만 7천 피트 상공에서 죽음의 나선형 추락이 시작될 때 어떻게 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승무원의 단조로운 설명을 나는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솔직히 승무원의 설명은 비행기가 추락하는 동안 승객이 무언가 바쁘게 할 일을 만들어주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비행기가 시속 800킬로미터로 수면에 내리박힌다면, 그까짓 튜브 따위가 과연 도움이 될까? 엉성한 호루라기가 달린 작은 구명조끼와 플래시 라이트로 상어가 득실거리는 바다에서 정말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까?

9?11 사태 이후 처음 비행기를 타게 되었을 때, 나는 반드시 비행기를 타야 하는지 진지하게 회의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전부터 비행기 여행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구를 떠나 허공으로 올라가서 전자레인지와 미니 술병, 강력한 진공소제기처럼 배설물을 빨아들이는 화장실을 갖춘 불 켜진 금속 튜브를 타고 뉴욕에서 뭄바이로 여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에 대한 반론은 언제나 거짓말처럼 들린다.

“부인께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조종사가 다 알아서 하니까요!”
승무원들은 이 말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리라 믿는지, 쾌활한 목소리로 말한다.

“물론, 그렇겠죠.” 나는 맞장구친다.
그러나 내게는 ‘조종사가 다 알아서 한다’는 것이 문제다. 구름과 땅 사이 까마득한 허공에 앉아 있어야 한다면, 나는 상황을 내가 통제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남편은 최근에 내게 생일 선물로 비행교습 교재를 사주었다.

이 기발한 선물 이야기를 들은 친구 로즈마리는 내게 보낸 이메일에 이렇게 썼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비행공포증이 가장 심한 네가 비행교습을 받는다고? 네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3만 피트 상공에서 기체 밖으로 빨려 나가는 거잖아. 너는 심지어 불타는 비행기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경우에 질식하지 않으려고 가방에 코카콜라 캔처럼 생긴 산소통을 가지고 다니는 애잖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비행공포증과 맞장이라도 떠볼 생각이니? 이번 기회에 비행공포증을 완전히 날려버리려는 거야?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조종간을 잡은 네 모습이 보이는 것 같구나.”

친구의 짐작이 맞았다. 친구는 내 비행교습의 목적이 조종사가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나 땅콩 알레르기 발작으로 의식을 잃고 계기판 위에 쓰러졌을 때 빙글빙글 돌며 추락하는 보잉 777기를 구하는 능력을 갖추려는 데 있음을 즉각 알아차렸던 것이다.

아니야. 나는 조종에 대해 말하려던 게 아니지만, 물어봐 주니 고마워.
나는 9?11 사건 때 펜타곤에 충돌한 바로 그 비행기를 자주 타고 다녔다. 그것은 내가 친구들을 만나러 LA에 갈 때 늘 타는 비행기였다. 9?11 이후에도 그 운명의 노선을 자주 이용했고, 그때마다 나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보았다.

순식간에 패닉 상태에서 허무하게 종말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는 그 초현실적인 자각… 속수무책으로 나의 운명과 행복한 삶이 여기서 끝났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 죽는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자각은 정말 충격적일 것이다.

사고를 당하는 순간의 경악, 가슴을 치는 회한, 죽은 뒤에 남겨질 것들에 대한 공포가 -가족의 슬픔, 엄마를 잃은 딸들의 상실감, 치유될 수 없는 비통함- 한순간에 나를 엄습했다.


어느 늦은 밤 애틀랜타에서 애쉬빌로 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정도는 덜 하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맹렬한 난기류의 공포를 경험했다. 기체가 순식간에 1천 피트를 하강하여 승객들은 말조차 할 수 없었고, 의자에 매달리려고 필사적으로 팔걸이를 움켜쥐어야 했다.

너무나 놀라 위생봉투에 유서를 휘갈겨 쓸 겨를도 없었고,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세탁비와 보육비까지 꼼꼼히 챙기는 처지라면 목숨을 걸고 받는 시급이 얼마나 적은 금액인지 속으로 계산하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엠마와 비행기를 같이 타고 가면서, 아이에게 안전 지침이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정보임을(중요하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인식하게 해야 한다는 부모로서의 의무감이 들었다. 나는 시트 포켓에서 비닐 코팅된 비상탈출 안내서를 꺼내는 딸의 동작을 따라 하고 승무원의 설명을 끝까지 경청했다.

엠마는 비행기에서 비상탈출용 미끄럼대로 뛰어내리는 승객들의 그림을 보자,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식으로는 미끄럼대에 닿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승객이 비상시에 어떻게 그림처럼 탈출할 수 있는지 내심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그런 말을 하지?” 나는 오디오 채널에서 내가 좋아하는 곡을 찾으면서 건성으로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는데, 아무도 미끄럼대에 닿지 않았어요.”

실제로 그림에는 신발을 벗은 사람들이 모두 비행기 비상구와 연결된 밝은 오렌지색 미끄럼대 위에 정좌한 자세로 떠 있었다. 어떻게 비행기에서 비상탈출한 사람들이 3피트는 족히 되는 높이에서 공중부양하고 있을까? 라텍스 제품에 알레르기라도 있다는 건가? 또 신발이며 비행기에 가지고 탄 소지품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17D 좌석에 앉았던 목소리 큰 사업가가 회사 기밀자료가 들어 있는 노트북을 자리에 놓고 나왔을 리 만무하다.

코팅된 안내서에는 모든 것이 질서정연해 보였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이 미끄럼대에서 과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프로그레시브 록그룹 제스로 툴의 콘서트 장에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아비규환을 이루던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엠마와 함께 탔던 그 비행기에서 내게 명확하게 전달된 승무원의 메시지는 이런 것이었다.

“머리 위에 있는 선반에서 산소마스크가 떨어지면 먼저 쓰시고 주위의 다른 승객들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나부터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자!
전에는 결코 들어 본적이 없는 메시지였다.
내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지 않는다면,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전혀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기내에서 산소공급이 끊기면 17초 안에 의식을 잃는다. 17초가 지나면, 누구에게도 쓸모가 없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런 지혜를 망각하는가? 부모, 자녀, 동업자, 교사로서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며 행복을 느끼는 삶에 익숙해서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돌보지 않는다. 이기적이라고 불리는 것이 두려워서 자신을 먼저 내세우지 않는다.

물론, 면전에서 이기적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 대해 지극히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는 그렇게 한다. 예들 들어 ‘그 사람은 이기적이야’, ‘그 여자는 자기중심적이야’라는 식으로 자신의 내면에 비추어 타인의 외면을 판단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욕구, 불안, 부적합성, 결점과 공포에 대한 자각 등으로 물든 평가를 남에게 내리는 것이다.

남을 보살피는 것, 남을 구해주는 것이 단순히 자신을 구하는 행동의 변형된 모습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타인에게만 집중한다면, 자신에게 집중할 필요가 사라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구하는 행동은 그들로부터 자구의 수단을 빼앗는 처사일 수도 있다.



음주운전으로 체포된 친구를 경찰서에서 여러 차례 꺼내주는 행동이 진정으로 친구를 구하는 일일까? 혹시 구원자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행동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앤 라모트의 책 『글쓰기 수업』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번번이 술에 취해 앞마당에 널브러진 남편을 이웃 몰래 들쳐 업고 들어가는 아내를 보고, 한 부인이 말했다.

“예수님이 던져버린 곳에 그냥 놔두지 그러세요?”


다른 사람을 더 잘 도울 수 있도록 나 자신부터 보살피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을 튜바 레슨과 생일파티에 데려갈 일정을 정하듯이 나 자신의 운동시간을 정하는 것은 어떨까? 나의 산소마스크는 호젓한 도서관 방문, 어른들과의 점심, 제멋대로 뛰어다니는 동물과 애들이 없는 나만의 거품목욕 같은 것이 아닐까 상상한다.

● 모든 사람은 달과 같아서 누구에게도 절대 보여주지 않는 어두운 면이 있다. - 마크 트웨인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3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저/<최재경> 역

    10,800원(10% + 5%)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 37일 동안 <패티 다이> 저/<박유정> 역

    15,300원(10% + 5%)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김기태라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장르

2024년 가장 주목받는 신예 김기태 소설가의 첫 소설집. 젊은작가상, 이상문학상 등 작품성을 입증받은 그가 비관과 희망의 느슨한 사이에서 2020년대 세태의 윤리와 사랑, 개인과 사회를 세심하게 풀어냈다. 오늘날의 한국소설을 말할 때, 항상 거론될 이름과 작품들을 만나보시길.

제 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제 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율의 시선』은 주인공 안율의 시선을 따라간다. 인간 관계는 수단이자 전략이라며 늘 땅만 보고 걷던 율이 '진짜 친구'의 눈을 바라보기까지. 율의 성장은 외로웠던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진심으로 안아주는 데서 시작한다.

돈 없는 대한민국의 초상

GDP 10위권, 1인당 GDP는 3만 달러가 넘는 대한민국에 돈이 없다고? 사실이다. 돈이 없어 안정된 주거를 누리지 못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 누구 탓일까? 우리가 만들어온 구조다. 수도권 집중, 낮은 노동 생산성, 능력주의를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잘 되는 장사의 모든 것

선진국에 비해 유독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왜 대한민국 식당의 절반은 3년 안에 폐업할까? 잘 되는 가게에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 장사 콘텐츠 조회수 1위 유튜버 장사 권프로가 알려주는 잘 되는 장사의 모든 것. 장사의 기본부터 실천법까지 저자만의 장사 노하우를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