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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 졸업 30년 후 펑퍼진 엉덩이… 이게 바로 나야!

자신없는 것은 포트폴리오에서 빼버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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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고교시절 두 친구가 우리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중 한 명은 29년 만에 만나는 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20년 만이다.

 
37일 동안: 행복을 부르는 37가지 변화
패티 다이 저/박유정 역 | 이숲
당신의 삶이 37일 남았다면, 지금처럼 살겠습니까?
저자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정확하게 37일 후에 세상을 떠나는 사건을 경험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돌아보는 계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37일만이 아니라,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그 뼈아픈 통찰을 통해 『37일 동안』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은 37일 동안 우리가 하루하루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그리고 이후로도 어떻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인지, 늘 미래로 미루는 행복을 어떻게 지금 느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제시한다.

많은 사람이 업적보다 변명을 선호한다. 업적은 아무리 위대해도 장래에 다시 입증해야 할 여지가 남지만, 변명은 평생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에릭 호퍼


몇 달 전, 고교시절 두 친구가 우리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중 한 명은 29년 만에 만나는 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20년 만이다.그 둘을 각각 톰과 스티브라 부르자. 한 사람 더 오기로 되어 있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했다. 그를 에드워드라 부르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는 사실에 대한 나의 경악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에드워드는 유명한 미용사이며 이미지 컨설턴트이다. 이제는 목화송이처럼 되어버린 내 백발을 보고 그가 뭐라고 할지 두려웠다. 자라는 대로 내버려둬서 봉두난발이 되어버린 내 머리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에게조차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모양새가 엉망이다.

톰은 성공한 실내디자이너이다. 그러니 한심한 우리 집 꼬락서니를 보고 뭐라고 하겠는가? 그가 오기 전에 모두 뜯어고쳐야 하지 않을까? 칠도 새로 하고, 새 가구도 들여놓고, 양탄자도 소파와 더 잘 어울리는 것으로 새로 샀으면! 소파는 고양이들이 뜯어놓아서 집 안이 마치 길고양이 보호소처럼 되어버렸다. 그나마 이럴 때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게이 친구가 날아와서 가구 배치라도 다시 해주면 좋겠는데…. 그 친구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더라도 객실의 가구 위치를 완전히 바꿔놓는 기벽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옛날에 디스코 춤을 같이 췄던 스티브는 놀랍게도 외과의사가 되었다. 그때가 70년대였던가. 그가 도착하기 전에 서둘러 살을 빼고, 머리 염색도 하고, 댄스 스텝도 다시 밟아봐야 할 텐데!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수세미처럼 되어버린 머리, 낡고 평범한 가구만 있는 집, 아이들을 낳아서 펑퍼짐해진 엉덩이 그대로 나는 친구들과 흐뭇한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은 모두 고교시절의 불확실했던 세계를 저 멀리 남겨둔 채 그들만의 길을 떠나 성공의 문턱을 넘었다. 이런 말이 내 입가에 맴돌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학교를 졸업하고 나도 한때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지. 세련되고, 총명하고, 육체적으로도 매력 있던 시절,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세탁한 내복을 착착 접어 작은 상자에 넣어주는 홍콩 페닌슐라 호텔과 오리엔탈 방콕 호텔에 자주 드나든 적도 있었지. 대사들, 정치인들과 함께 식사했고, 몇 권의 책도 펴냈고, 잘생기고 유능한 카를로스 푸엔테스(멕시코 소설가. 역주)와 점심도 하고, 파자마를 입은 채 스티비 원더와 인터뷰도 했어. 그런데 마침 요즘은 조금 한가해서 너희가 운 좋게 나를 만날 수 있었던 거야.”

그러나 나는 변명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어수선한 집, 까치 머리, 펑퍼짐한 엉덩이, 이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의 나다. 이것이 내 인생이다. 이게 바로 나다!


얼마 전 우리 가족은 요즘 들어 부쩍 일러스트 화가가 되고 싶어 하고, 일본 만화에 열을 올리는 엠마를 위해 만화 박람회에 갔다. 우리가 여러 만화가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동안 엠마는 꽤 무거운 습작 포트폴리오를 어깨에 둘러메고 다녔다. 우리 가족은 전시자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그들의 작품도 감상했으며, 관련 상품도 구경하고, 예술가들이 직접 작업하는 모습도 구경했다. 내가 엠마에게 포트폴리오를 만화가들에게 보여주라고 할 때마다 딸아이는 머뭇거렸다.

마침내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엄마, 내 포트폴리오를 보여줘야 할까?” 출구 쪽으로 걸어가던 엠마가 내게 물었다.

“그러고 싶니?”

“모르겠어. 그런 건지, 안 그런 건지… 그래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나는 아이 내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쉽사리 눈치챌 수 있었다. 너무 수줍어 용기는 나지 않고, 꼭 하기는 해야겠고… 엠마는 조금 전 사반나 예술디자인 대학의 젊은 삽화가들이 나와 있는 부스에 들렀을 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있는 부스에 다시 가서 네 그림을 봐달라고 하면 어떻겠니?” 내가 제안했다.

“그럴까?” 엠마가 말했다.

부스에 있던 한 젊은 예술가가 엠마에게 말했다. “이런 전시장에 오면 네 작품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줘야 해. 쉽지 않겠지만, 아주 중요한 일이야.” 그는 흔히 어른들이 아이를 대할 때 ‘아이 취급’하는 것과는 달리, 어른을 대하듯 엠마와 눈을 맞추며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엠마 스스로 그와 대화하도록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젊은 삽화가들이 엠마에게 보여준 자상함과 관심은 진정한 선물이었다. 그들은 아이의 그림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그간의 노력을 칭찬했고, 더 많이 배우고, 더 잘 그려야겠다는 열정을 불태우게 하는 솔직하고, 긍정적인 의견을 들려주었다. 삽화가 한 명이 엠마의 포트폴리오를 들춰보는 중에 갑자기 엠마가 말했다. “아, 그건 잘못 그린 거예요.”

“엠마.” 삽화가가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포트폴리오에서 빼버려. 여기서 변명해야 할 그림을 가지고 다닐 필요는 없잖아? 너는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을 보여주고 싶지? 그런데 네 포트폴리오를 보는 사람은 부실한 작품이 있다면 그것에만 집중하게 마련이야. 그러니 부실한 것은 빼버려야 해.”

“알겠어요.”
엠마가 말했다. 그리고 불현듯 나도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출구 쪽으로 걸어가는 엠마의 눈이 생생하게 빛났다. “여기 앉아서 지금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정말 멋진 만남이었어요!” 딸아이가 말했다.

그 젊은 예술가들은 엠마에게 짬을 내준 것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아마 모를 것이?. 어떤 사람과의 교류는 선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젊은 예술가들의 메시지, 변명해야 할 것이 있다면 포트폴리오에 넣지 말라는 충고 역시 큰 선물이었다.

나의 포트폴리오에서 무엇을 간직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까? 내가 결사적으로 숨기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집이든, 머리 모양이든, 무너진 몸매든, 한미한 직업이든, 나는 무엇에 대해 계속 변명을 늘어놓고 있을까?

● 나는 ‘하지만’을 답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 랭스턴 휴즈



사진출처: www.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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