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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 나는 나일 뿐이다.

나를 끊임없이 무릎 꿇게 한 암은 결국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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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 19일, 암과 내가 만난 그날, 외과적 생검(수술로 생체 조직을 떼어내 검사하는 것)에서 깨어난 나는 새로운 삶을 맞이했다. 그날 이전의 모든 것은 내 인생의 한 시기로 분류되었다. 암 이전 시기로.

1998년 2월 19일, 암과 내가 만난 그날, 외과적 생검(수술로 생체 조직을 떼어내 검사하는 것)에서 깨어난 나는 새로운 삶을 맞이했다. 그날 이전의 모든 것은 내 인생의 한 시기로 분류되었다. 암 이전 시기로.

나는 암으로 죽고 싶지 않았다. 살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첫 해는 그냥 멍했다. 수술에서 회복되고 나자 네 차례의 약물 치료가 시작되었다. 머리가 다시 자라날 즈음부터는 6주에 걸쳐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나서야 다시 기운을 되찾았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젠장, 내가 암에 걸렸구나.

암이나 이혼, 질병이나 실직, 또는 연인과의 이별 같은 고난과 시련은 사람을 죽이거나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 나를 끊임없이 무릎 꿇게 한 암은 결국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온갖 치료에 시달린 몇 달 동안 나는 삶을 포기하고픈 참담한 절망의 순간들과 마주치곤 했다.


결국 암을 이겨내면서 더욱 강해졌다. 지금 내 마음가짐은 이렇다. 축농증? 감기? 근육통? 대수롭지 않다. 고통? 오라지 뭐. 두려움? 까짓것, 상관없어. 과거에는 칼럼을 쓸 때마다 겁이 났다. 남들은 단순히 글이 막혀서 답답하다고 할 때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 모든 불신과 불안이 나를 괴롭혔다. 이제는 안절부절못하거나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자신 있게 내 목소리를 낸다. 후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미루는 법도 없다. 하고 싶은 말을 지금 안 하면 언제 하겠는가?

내 딸은 종종 생존을 이야기하는 것이 왜 중요하냐고 묻곤 한다. 그것은 미국에서 암을 이겨낸 1,000만 생존자 모두의 의무이다. 지금도 매일 누군가는 암 판정을 받는다. 그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우는 것이다. 그런 다음 차마 대답을 듣기 싫은 질문을 하게 된다. 고칠 수 있을까? 치료가 가능할까? 이미 온몸에 퍼졌을까?

하지만 정말로 궁금한 건 이것이다.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나는 암 극복에 내 모든 것을 쏟았다. 수술. 약물 치료. 방사선 치료. 그리고 몇 번의 재수술. 내가 지닌 유방암 민감 유전자 때문에 평생 유방암이 재발할 가능성이 87퍼센트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양쪽 가슴을 모두 절제했다.

어떻게 가슴 없이 사냐고?
오드리 헵번은 내 우상이다. 새삼 체조 선수와 발레리나가 존경스러워 보인다. 나는 이불에 엎드려 누워도 가슴이 거치적거리지 않는다. 가슴 없이, 브래지어 없이 나다닐 수도 있다. 하루 동안 번갈아 B컵, C컵, D컵이 될 수 있다. 가슴을 조이는 스포츠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운동을 하거나, 조깅을 하거나, 줄넘기를 할 수도 있다. 중력 때문에 출렁거릴 가슴이 없으니까.

가슴 없이 사는 것이 이렇게 쉬울 줄 알았다면, 양쪽 가슴을 모두 절제하는 수술을 받을까 말까 그토록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 잘라낸 가슴을 도로 붙일 수는 없다. 그 어떤 가정도, 거래도, 협상도 없으며, 이제는 미룰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고, 평생 그 결과를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도 나뿐이다. 한번 결정하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너무나 두렵고 무섭다.

하지만 어느 날 모든 것이 바뀐다. 그냥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게 된다.
처음 1년 동안 나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엉망이었다. 내 일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슴에 집착하는 문화 속에 산다. 유명한 여자들은 죄다 유방 확대 수술을 받는 것 같다. 동네 편의점에서조차 젖가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온갖 잡지 표지가 가슴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다. 처음 1년 동안 나는 여성 속옷 가게에 들어가지 못했다. 더 이상 착용할 수 없는 브래지어들과 가슴 형상들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수술 직후에는 가슴이 아무는 동안 인조 유방을 착용할 수가 없었다. 판판한 가슴의 느낌이 너무나 이상했다. 내 통통한 쿠션, 내 심장을 지켜주던 방어물이 사라진 것이다. 완전히 노출되어 무방비 상태가 된 기분이었다. 내 유방이 그리웠다. 이따금 거품 목욕을 할 때면 비누거품을 그러모아 밋밋한 가슴 위에 쌓아놓고 내 유방의 모양과 느낌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느낌을 잊었다. 좋은 의미로의 망각이다. 나는 더 이상 옛날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 나는 나일 뿐이니까.
사라진 두 가슴은 종종 내가 기억해주길 원한다. 환각통이 밀려들었다가 사라지곤 한다. 이따금 갑자기 가슴이 돌아온 기분이 든다. 그 무게가 느껴진다. 확인해보려고 브래지어 밑으로 손을 넣는다. 물론 여전히 가슴은 없다.

나는 평소에 모조 유방을 착용한다. 유방 성형 수술 대신 보형물을 끼고 다니는 것이다. 2년마다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새 유방을 받아올 때는 기분이 묘하다. 매번 300달러씩 들지만 대부분 보험으로 처리된다. 모조 유방에는 실리콘이 채워져 있다. 진짜 유방처럼 흔들리고 유방 절제 환자용 브래지어 안에 쏙 들어간다. 모조 유방을 착용하는 여자들을 수술 전에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모조 유방을 내 일부로 받아들이라고 충고해주었다. 처음에는 그러기가 어려웠다. 뜨겁고, 무겁고, 가짜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층계를 뛰어 내려갈 때 모조 유방이 진짜 유방처럼 출렁이는 것을 느꼈다. 나의 옛 젖가슴들처럼. 그날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내 모조 유방에 ‘델마와 루이스’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 모조 유방은 내가 사람들을 껴안을 때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축 처지는 법이 없고, 누워도 납작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고양이와 놀아줄 때, 브로치나 코사지를 달 때는 늘 조심한다. 모조 유방이 찢어져서 실리콘이 새어나오면 낭패니까.
모조 유방을 착용하면 몸매의 곡선이 살고, 옷도 더 잘 맞는다. 나에게도 브루스에게도 만족스럽다. 그걸 착용하지 않으면 너무 홀쭉해 보여서 사람들이 내게 다이어트 중이냐고 묻는다.

수술 전에 어떤 기사를 읽어보니, 암에 걸렸었다는 사실이 계속 떠오를까 봐 가슴 성형 수술을 받는 여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의 심정은 십분 이해하지만, 나는 내 판판한 가슴이나 모조 유방이 암으로 인한 상실의 고통을 떠올리게 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젖가슴 한 쌍이 있어야만 여자인 것은 아니다. 나를 여자이게 하는 것은 내 마음의 크기와 영혼의 형상이다. 젖가슴이 없어도 여자이고, 엄마이고, 아내이고, 누이이고, 딸이고, 조카이고, 이모이고, 할머니이고, 대모이고, 작가이고, 친구이고, 연인이다. 이 모든 것이 되려고 얼마나 열심히 사느냐가 중요하다.

지금 나는 전보다 덜 여성스럽지 않다. 오히려 거의 모든 면에서 그 어느 때보다 여성스럽다. 나 자신의 정수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껍질을 뚫고 핵심에 이른 것이다. 지금 나는 내 중심에 더 가까이 있다. 더 이상 내 마음이 유방이라는 쿠션 밑에 감춰져 있지 않고 세상에 가까워졌으니까. 나는 진정으로 나다운 나에게 더 가까워졌다.

나 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내 몫이다. 내가 얼마나 섹시하고, 여성스럽고, 예뻐 보이는지는 내 마음에 달려 있다. 남이 뭐라고 하건 힘차고,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 판판한 가슴은 나의 빈 캔버스, 나의 빈 종이이다. 거기에 무엇이든 쓰고 그릴 수 있다.
이제 나는 샤워를 하면서 울지 않고, 남편이 내 밋밋한 가슴을 만질 때 움츠러들지 않으며, 남들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내 텅 빈 가슴을 볼 때면 삶이 보인다. 이 판판한 가슴은 날마다 내가 삶을 택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나는 내가 전보다 덜 여성스럽다고 느끼지 않는다. ‘원더우먼’이 되었다고 느낀다.
질병이나 이혼, 슬픔이나 절망으로부터 살아남은 우리가 할 일은 증언하는 것이다. 어두운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 다시 눈부신 세상으로 나오려는 모든 이들을 위해 희망의 횃불을 치켜드는 것이다. 그 골짜기 너머의 풍경을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생존자의 눈으로 본 삶은 하루하루가 지극히 아름답다.

내 병이 재발할까? 아무도 모른다. 나는 잠에서 깨라는 신호를 받았고, 다시 잠들 마음은 없다. 만약 다시 병마와 싸워야 한다면 얼마든지 싸우겠다. 내 몸이 더 오래 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 삶은 그렇게 싸울 가치가 있다.

내 병이 치유됐을까?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날마다 집행유예의 삶을 산다. 그 소중한 삶을 단 1분도 낭비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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